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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누굴 원망하지 않지.
꽉 닫힌 뚜껑이 열렸지. 첫 경험이었어.
너의 갈증을 위해 찢어지는 아픔은 참았지.
톡 쏘는 나의 언어에
탁한 너의 목이 확 트이더라.
손으로 매만지면서 힘껏 들이키더니
두말없이 팽개치더군.
누군가는 나를 찌그러뜨리며
가녀린 몸피에 쓰인 이력을 읽더군.
너 또한, 누군가 너의 입사의 지문을 읽을 거야
힘듦과 아픔에 덧실린
희망 같은 절망, 환한 어둠의 경력 말이야.
손, 발길에 차여 버려진 내 모습처럼
너 또한 알 수 없는 검은 손에 잘렸지
버려졌지만, 최선을 다했기에
우린, 함께 잘리고 뒹굴면서도 당당했지.
회사 정문 담벼락 틈새에
이름 모를 꽃 한 송이
지는 꽃잎이 널 기다리다 잊혀가듯이
떨구어진 꽃잎처럼 나 또한 밟히며 잊혀가겠지.
우린 그렇게
찌그러지고 잘리며 잊혀가는 거야
잊히면서 기억되고
기억되며 다시 살아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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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영수
시인. 문학평론가
제7회 보령해변시인학교 금상 수상
제7회 매일신문 시니어 문학상 수상
제3회 코스미안상 대상(칼럼)
제1회 황토현 문학상 수상
제5회 순암 안정복 문학상 수상
제6회 아산문학상 금상 수상
제6회 최충 문학상 수상
시집 『흔적의 꽃』, 시산맥사, 2017.
이메일 jisra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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