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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솔암에 와서는
묵언의 수행자가 아니면
한 걸음도 나아 갈 수 없다.
암자를 둘러싼 바위는 말이 없다. 말이 없으니,
고요가 귀를 씻는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바위 틈새를 메운 돌멩이에 귀 기울여본다.
울력했던 보살들 땀방울 흘러내린 소리와
한 칸의 절간, 스님의 염불 소리를
풍경風磬이 주워 모아 소리 꽃을 피운다.
처마와 닿을 듯한 늠연한 고목 한 그루가
낡삭은 절집을 안고
소리 없이 툭 던지는 이파리 하나
의상대사의 화두가 되어
불전 앞에 툭 떨어져 앉는다.
말 없는 달마산의 바위너설에서
오묘한 진리 한 자락 휘감지 못했지만
암자를 에워싼 바위 결에 흐르는
노승의 목탁 소리에 몽매한 귀가 확 뜨이며
맥맥한 속내를 확 트이게 한다.
침묵이 숨죽이며 침묵하는 도솔암
미망의 중생에게 내리친 무언의 죽비 소리에
죄업 한 알, 또 한 알 꺼내 놓고
보리심으로 도솔천을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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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영수
시인. 문학평론가
제7회 보령해변시인학교 금상 수상
제7회 매일신문 시니어 문학상 수상
제3회 코스미안상 대상(칼럼)
제1회 황토현 문학상 수상
제5회 순암 안정복 문학상 수상
제6회 아산문학상 금상 수상
제6회 최충 문학상 수상
시집 『흔적의 꽃』, 시산맥사, 2017.
이메일 jisra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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