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인문학 칼럼

백치(白癡), 유로지비(holy fool)가 되어보자

홍영수 시인(jisrak) 2024. 5. 6.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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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오후, 도심 한 가운데 위치한 중앙공원, 그 공원의 그늘막 아래 놓인 벤치에 앉았다. 봄 햇살로 샴푸를 한 연초록 잎들이 무심코 바닥을 내려다보는 듯한 곳에 시선이 갔다. 그곳 보도블록 위에는 수십 마리의 비둘기들이 누군가 던져주고 간 먹잇감을 둘러싸고 고개를 바쁘게 주억거리며 먹이다툼하고 있었다. 그때 비둘기들 사이로 엄마 따라 산책 나온 아기가 신기한 듯한 표정으로 아장아장 걸어갔다. 비둘기들은 슬몃슬몃 달아나기 시작하더니 아기의 손짓에 모두 날아가고 말았다. 벤치에 앉아 멍때리고 있는 난, 순간 그 장면이 뺨을 때렸다. 우리가 볼 때는 아기는 한없이 귀엽고 예쁘지만, 비둘기 입장에서는 한낱 두려운 존재였을 뿐이다.

 

그토록 예쁘다는 양귀비나 초선이, 서시와 왕소군도 인간의 시선에는 천하의 절세미인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그들이 오리나 병아리 곁으로 다가가면 무서워 도망갈 것이고, 참새는 날아갈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 중 어느 누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것인가? 그토록 귀엽고 사랑스러운 아기도 중국의 전설적인 미인들도 모두 다 인간의 시선으로 바라보기 때문이 아닌가. 새와 오리와 병아리, 비둘기 등의 시선에는 두렵고 피해야 할 존재로 다가올 것이다.

 

요즘은 국외로 여행을 많이 다닌 것 같다. 여행의 코스 중에는 그 나라의 대표적 음식을 먹어보기도 한다. 중국은 중국의 맛, 베트남은 베트남의 맛이 있고 한국은 한국다운 맛이 있다. 그것은 각국, 각자의 미각에 의해 미감도 다 다르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느 음식이 가장 맛있다고 할 수 있을까?

 

이와 같은 모든 판단의 기준은 사리를 판단하는 지식의 모자람이 아닌 분별 의식 즉, 이것 아니면 저것, 미추와 선악 등의 가름에서 온 것이다. 우리의 가득 찬 지식으로 판단하고 재단하기 때문에 또 다른 새로운 앎이 들어설 수 없다. 채워져 있기에 또 다른 판단과 앎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그래서 우린 비워야 한다. 그 비움에는 도망갔던 비둘기와 병아리, 오리, 참새 그리고 또 다른 맛이 들어올 수 있다.

 

그렇기 위해서는 자신이 스스로 새가 되고 맛이 되어야 한다. 내가 나인 채로 있으면 내가 아닌 모든 것은 이해할 수 없고 이해될 수 없다. 그래서 때론, 바보나 백치가 되어야 할 이유가 있다. 사전적 의미의 지능이나 판단력이 떨어져서 머리가 텅 비었다는 의미가 아니라, 다르게 사유할 수 있고 낯선 생각들이 들어올 수 있는 여백을 갖는 머리를 얘기한다.

 

마르틴 부버의 <나와 너>라는 책의 내용이 생각난다. 철학적이면서 시적인 책, “나는 너로 인해 나가 된다이다. 그렇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나 자체로만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자기중심적이고 그래서 이기적인 인간 세계에서 서로 대화하고 이해하면서 진실한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길을 안내해 준 말이 아닌가 한다. 사람은 너로 인한 나가 되기 위해 수많은 생각들로 굳게 뭉쳐져 있는 마음과 몸을 떨어내고 비워야 한다. 그래서 새로운 시선과 사고가 가능하도록, 존 로크가 얘기했듯이 타블라 라싸(tabula rasa)의 백지상태가 되어야 한다.

 

세상에 존재하는 하나의 사물은 수백, 수천 개의 논리적 자질의 구성이 가능하다고 한다. 결국 인간이든 사물이든 그들의 정해진 이름 때문에 오히려 그들의 본성이 제한되고 가려진다는 것이다. 우리가 바라보는 모든 존재들을 나만의 생각과 판단과 시선으로 바라본다면 또 다른 의미, 본성을 놓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기 위해서 기존의 가치관을 비워버린 텅 빈 여백의 백치나 바보가 될 이유가 있다.

 

도스토옙스키가 얘기했던 유로지비(바보 성자)라는 말이 떠오른다. 일상에서는 좀 바보스러워 백치처럼 보이는 사람을 말한다. 그는 사물을 바라보는 시선과 그에 따른 감정의 표현은 일반인과는 다른 그 너머의 것을 얘기한다. 이처럼 유로지비 인 바보 성자는 모두가 야무지고, 똑똑하고, 그래서 서로 속고 속이고 하는 사람들과는 대칭적, 건너편에 서 있는 사람을 말한다. 남들이 보기에는왜 저렇게 바보처럼 당하기만 하면서 살지?’라고 느낌이 드는 사람이다.

 

그러나 유로지비들은 역량을 직접 드러내지 않는다. 세속적인 관점에서 보면 모순되고 역설적으로 보일 뿐이지만, 일반 사람들이 느끼지 못하는 것을 보고 듣고 겪을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는 사람들이다.

 

AI가 삶의 현실이 되고, 정보의 발달로 갈수록 이기적이고, 각박하고, 혼란스러운 현실에서 때로는 바보 아닌 바보, 백치 같은 유로지비가 되어보자. 어쩜 지금의 현실 속, 우리의 삶 자체가 유로지비를 필요로 한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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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영수

시인. 문학평론가

7회 보령해변시인학교 금상 수상

7회 매일신문 시니어 문학상 수상

3회 코스미안상 대상(칼럼)

1회 황토현 문학상 수상

5회 순암 안정복 문학상 수상

6회 아산문학상 금상 수상

6회 최충 문학상 수상

시집 흔적의 꽃, 시산맥사, 2017.

이메일 jisra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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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오후, 도심 한 가운데 위치한 중앙공원, 그 공원의 그늘막 아래 놓인 벤치에 앉았다. 봄 햇살로 샴푸를 한 연초록 잎들이 무심코 바닥을 내려다보는 듯한 곳에 시선이 갔다. 그곳 보도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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