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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영수 칼럼] 그림에 미친 노인(畵狂老人), 지금 있는 것에 물들지 말자 - 코스미안뉴스
몇 년 전 작은딸이 일본 여행을 다녀와서 티셔츠를 선물로 건네주었다. 받아서 보니 빙 둘러서 그림이 그려져 있는데 가쓰시카 호쿠사이의 <가나가와 파도>의 그림이었다. 호쿠사이는 19세기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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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작은딸이 일본 여행을 다녀와서 티셔츠를 선물로 건네주었다. 받아서 보니 빙 둘러서 그림이 그려져 있는데 가쓰시카 호쿠사이의 <가나가와 파도>의 그림이었다.
호쿠사이는 19세기 중후반 반 고흐를 비롯한 많은 인상파 화가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친 화가가 바로 그이다. 특히 자포니즘(Japonism)의 열풍을 유럽에서 일으킨 에도막부 시대의 대표적인 화가이기도 하다. 그는 주로 채색 판화 형태로 찍어냈기 때문에 많은 분량의 작품을 제작할 수 있었는데 그의 대표적인 작품 중에서도 대표적인 작품이 바로 <가나가와 파도>(원제: 가나가와 바다의 높은 파도 아래)가 아닌가 한다.
이 작품 역시 채색 판화이기에 대량으로 찍어낼 수 있어서 값이 쌌다. 바다에 태풍이 부는 높은 파도의 격랑 속에 두 척의 배가 보이고, 후지산의 모습도 저 멀리 보인다. 특히 이 그림에서 볼 수 있는 파도 아래의 푸른색은 그 유명한 프러시안 블루이다. 이는 그가 활동했던, 에도 막부시대에의 쇄국정책에도 유일하게 열린 항구인 나가사키를 통해 유입되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때 외국에서 도자기류 등을 사려고 배들이 들어오는데 이때 도자기류 등을 포장해 다시 해외로 나가게 되는데 <가나가와 파도>와 같은 유키요에의 작품들이 수출되고, 유럽의 수집가들에 의해 우연히 발견되어 인상파 화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친다.
특히 19세기 일본에서 수입한 도자기 포장용지로 사용한 호쿠사이의 판화에 인상주의 화가들은 경탄했고, 이것이 인상파가 탄생한 계기가 된 것이다. 무엇보다 에도 시대의 시민적인 오락물에 불과한 우키요에를 지금도 기억하는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업적의 대표적 인물이 바로 호쿠사이다.
인상주의는 마네와 모네에서 시작되었다. 인상주의 화가들은 어둠침침하게 갇힌 자신의 아틀리에를 박차고 나와 야외에서 시시각각 변하는 구름과 바다 나무와 꽃 등의 움직임을 그렸다. 그들은 빛의 연금술사였기에 ‘빛의 예술’이라고도 한다. 이때 19세기 인상파 화가들은 일본 열병을 앓고 있었다. 그것은 우키요에 신드롬이다. 우키요에는 에도시대부터 메이지 시대 초기까지 약 200년에 걸쳐 에도라는 도시에서 유행했던 풍속화이다. 빼어난 소묘력과 과감한 시점 처리, 현대적인 화면 구성 등, 우키요에의 매력에 흠뻑 빠진 이들이 고흐, 모네, 드가, 로트트렉과 같은 인상파 화가들이다. 이러한 열풍은 19세기 말 자포니즘(Japoism)이라고 하는 문화적 현상을 유럽에 널리 퍼뜨렸다.
환상적인 빛의 세계를 화폭에 담은 그림뿐만 아니라 음악에서도 드뷔시나 라벨 같은 음악가가 있다. 예술 사조를 얘기할 때 일반적으로 어느 시기 사람들의 집단주의 등을 얘기하는데 인상주의 음악은 드뷔시에서 시작되고 드뷔시에서 완성된다.
<가나가와 파도>의 그림을 보면 엄청난 높이의 파도가 배를 삼킬 듯하다. 그 격랑 속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안간힘으로 엎드려 노를 젓는 뱃사람들, 폭풍우 앞에서도 결코, 포기하지 않고 좌절하지 않을 듯한 모습으로 거친 파도와 물보라 등에 맞서 노를 힘차게 젓고 있다. 그들이 돌아가야 할 항구를 향한 모습에서 도전 의식이 느껴지기도 한다. 아마도 어선의 어부들일 것 같은, 일본인이기에 혹시 참치잡이 어선은 아닌가 생각해 본다. 일본인의 참치사랑을 생각할 때. 그리고 특히 주목할 점은 파도가 아니라 저 멀리 보이는 그들이 영산으로 믿는 후지산이다.
호쿠사이는 <가나가와 파도>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자연을 관찰하고 묘사를 중요시했다. 그것은 실제 육안으로 파도를 보면서 찰나의 움직임을 포착하고, 파도의 역동적인 움직임에 중점을 두고 있다. 그리고 지속적인 파도 묘사의 표현 등은 실제적 관찰을 통해 화폭에 담았을 것으로 본다. 그 결과 다소 과장적 표현의 물갈퀴 형태의 파도가 형성되었을 것이다.
며칠 전, 강남지역 모임 뒤풀이로 어느 음식점에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일식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림, 벽에 그려진 호쿠사이의 <가나가와 파도>였다. 다시 한번 미친 노인(畵狂老人)의 미친 붓놀림을 떠올리며 딸이 선물한 티셔츠를 한겨울에 꺼내본다. 그리고 로뎅의 애인이었고, 한때 드뷔시의 연인이었던 까미유 끌로델의 <파도>를 책에서 뒤적여 보며 드뷔시의 <바다>를 듣는다.
그렇다면, 호쿠사이는 어떻게 변화무쌍한 자연을 이처럼 드라마틱하게 묘사할 수 있었을까, 물론 타고난 기질도 있었겠지만, 그는 단 한순간도 현실에 머물지도 안주하지도 않았다. 행여 나태해질까 봐 화명(畫名)을 서른 번 이상 바꾸었고 아흔세 번이나 집을 옮겨 다녔다. 그러면서 3만여 점의 판화를 제작했다. 이와 같은 멈추지 않는 치열한 도전정신과 변화를 추구했기에 <가나가와 파도> 같은 걸작을 창작했을 것이다. 그의 좌우명에서 알 수 있을 것 같다.
‘지금 있는 것에 물들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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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영수
시인. 문학평론가
제7회 매일신문 시니어 문학상
제3회 코스미안상 대상(칼럼)
제4회 한탄강문학상 대상
제7회 보령해변시인학교 금상
제6회 아산문학상 금상
제5회 순암 안정복 문학상
제6회 최충 문학상
시집 『흔적의 꽃』, 시산맥사, 2017.
이메일 jisra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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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쓰시카 호쿠사이 <가나가와 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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