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영수의 시 평론

물거울/양정동

홍영수 시인(jisrak) 2022. 12. 27. 21:11

물거울/양정동

 

 

실바람이 간간히 스쳐가는 연못 위

푸른 하늘에는 흰 구름이 떠간다.

 

소나무 가지를 타고 참새가

연못 속에서 뛰어다니며 놀고 있다

 

내 얼굴을 호수가 보고 있어

내 마음도 보려고 손 컵으로

물을 뜨니

 

찡그린 표정으로

조용히 두고 보라 한다.

 

마음은

조용히 보는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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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연못을 스치는 실바람 소리에서도 작곡가는 시의 리듬을 들을 수 있고, 파란 하늘에 둥실 떠다니는 흰 구름을 보고 한 줄의 시를 띄울 수 있고, 또한 라흐마니노프의 세속적인 합창 교향곡의에서 종소리를 들으며 복음을 생각하고 기도를 올릴 수 있는 사람이 시인이다.

 

거울처럼 맑은 연못, 바로 옆 소나무 가지를 오락가락하며 뛰어노는 참새 떼가 물속에 투영된다. 참새는 자기들이 하고 있는 일에 몰두할 뿐 물속에 자신의 그림자를 담그려 하지 않고 물 또한 그들을 물속으로 잡아당길 생각이 없다. 그렇기에 있는 그대로의 실상이 보일뿐 허상은 자리하지 않는다. 이러한 광경을 보면서 화자는 외연을 확장시켜 좁고 얕은 연못에서 넓고 깊은 호수를 끌어드려 호수에 비치는 자신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이 시를 보면서 두 시인의 시가 떠 올려졌다. 20여 년 전, 강화 길상면에 있는 백운거사 이규보 묘소를 답사했던 기억이 난다. 삼혹호三酷好로 불리기도 했던 그의 절창 오언절구 우물에 비친 달을 읊다와 시인 이상의 거울이다.

 

詠井中月 우물에 비친 달을 읊다/이규보

 

山僧貪月色(산승탐월색) 산승이 달빛을 탐하여

幷汲一甁中(병급일병중) 병속에다 물과 함께 길어서 담았는데

到寺方應覺(도사방응각) 절에 이르면 응당 깨닫게 되리,

甁傾月亦空(병경월역공) 병을 기울이면 달도 없어진다는 것을.

 

만년에 불교에 귀의해서인지 불교의 사상이 담긴 절간의 달빛 풍경을 그리고 있다. 산속의 물에 비친 달, 마음에 담듯 병 속에 달빛을 담는다. 절간에 돌아와 병에 담아온 물을 따르니 달이 없다. 물에 비친 달은 하늘에 떠 있는 달(實像)의 그림자(虛像)에 불과할 뿐이다. 그걸 모를 바 없는 문장의 대가 이규보이다.

 

술과 거문고와 시를 좋아했던 이규보는 달빛을 병에 담아와 사상을 건진 반면 詩仙이라 일컫는 시인 이태백은 강에 비친 달그림자를 손에 움켜쥐려다가 빠져 죽었으니 시인은 자신의 총체적 삶과 시를 통해 실상과 허상의 경계를 띄우고 짓는다. 미소년 나르키소스는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도취되어 빠져 죽어 수선화로 피어올랐다. 있는 그대로의 실상과 실제를 보자. 허상과 허구에 속지 말고.

 

시인은 호수가 자기의 얼굴을 보고 있다고 한다. 호수에 잠긴 자신의 얼굴에서 본마음인 참나를 보려고 자그마한 컵에 담으려고 한다. 비록 담긴다 한들 담긴 얼굴이 참모습일까. 실상인 자신의 얼굴을 잊은 채 물거울 속에 비친 얼굴에서 마음을 건지려고 하니 찡그린 표정으로 그냥 두고 보란다. 본마음을 보지 않고 가짜의 마음을 건지려 하니 호수는 찡그릴 수밖에.

 

이 때 호수가 하는 말 마음은/조용히 보는 것이라고.” 그렇다 시인은 연못과 물거울 비친 허깨비인 그림자를 통해서 마음을 보는 이치를 터득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조용히 바라보는 것 즉, 티 없이 맑은 눈으로 응시하며 지긋이 보는 것이리라. 아흔 살 넘어 시를 쓰기 시작한 사바타 도요 약해지지 마의 시집을 꺼내본다. <>라는 시에 눈은 사람의 마음을 보고/귀는 바람의 속삭임 듣고 있다. “ 그렇다. 참나를 본다는 것은 눈으로 보고 무엇보다 마음으로 보는 것이다.

 

이상의 거울이라는 시도 잘 알려져 있듯이 거울을 소재로 삼아 현실적 자아인 거울 밖의 나와 내면적 자아인 거울 속의 나 사이의 갈등과 분열을 나타내고 있다. 살아가면서 만난 타인들은 거울처럼 나를 비춰주는 일부이고, 난 그들 속에 비친 모습에서 나를 찾고 발견한다. 시인이 호수라는 물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모습을 깨닫듯이 나를 바라보는 타인들 속에서 또 다른 나를 찾고 자아를 형성해 가야 하지 않을까.

 

구글의 엔지니어인 모 가댓의 말이 생각난다. 어느 날 거울 안에 있는 자신을 보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이건 내가 아냐, 더 이상 이렇게 살아선 안 돼.” 최고의 위치와 부족함 없는 그이지만 치열한 생존경쟁의 피할 수 없는 현실 앞에선 그도 역시 한 인간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물거울이든 어떤 거울이든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가끔 들여다보면서 반추해 볼 일이다.

 

 

_ 홍영수 시인, 문학평론가 jisra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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