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영수의 雜論直說

홍영수의 동화/동그라미

홍영수 시인(jisrak) 2023. 4. 6. 18:28

난 시골에 살아요. 눈이 유난히 둥글어서 사람들은 날 동그라미라고 불러요. 천사의 눈도 둥글고 풀잎의 이슬방울도 나처럼 둥글어요. 바다 고래의 눈도, 풀밭을 뛰어노는 토끼 눈도 둥글지요. 동그랗고 둥글다는 것은 모나지 않아 부딪치지 않지요. 굴렁쇠처럼 잘 구를 수 있어 누구에게도 다가가 가지요. 각이 없어 쉽게 친구가 되어요. 그래서 학교와 동네의 세모, 네모 친구들과 함께 잘 어울려 놀아요.

 

오늘은 학교에서 청소하다 내 친구 초롱이와 말다툼을 했어요. 헤어지고 나오면서 학교 운동장의 펄럭이는 태극기를 쳐다보는데 그 안에 동그라미가 있었어요. 그런데 빨간색 파란색으로 나누어져 있어서 집에 돌아와 무심코 아빠에게 물어봤어요. 아빠! 왜 태극기 안의 동그라미는 두 개로 갈라져 있어요?’

 

그것은 깊은 뜻이 있지만 네가 아직 어려서 설명하기는 좀 그렇다고 하면서 친구들과 한마음이 아니고 헐뜯고 싸우면 갈라진다는 뜻이야라고 했어요. 아빠의 말을 듣고 오늘 학교에서 친구 초롱이와 한마음이 되지 못하고 싸웠던 것을 후회하게 되었어요. 그때 뒤돌아서는 초롱이 얼굴에 흘러내린 눈물이 둥글었어요.

 

지난주,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말 잘 듣는 어미 소를 끌고 가는 아빠를 만났어요. 동그란 어미 소의 눈망울이 촉촉하게 젖어있었지요. 외양간에 두고 온 어린 송아지가 보고 싶어서 그랬던가 봐요. 그때 아빠가동그라미야! 이리 와보렴다가가 보니 동그란 시계풀꽃을 내 손목에 채워주었어요. 아빠는 저 멀리서 오는 저를 보고 기다리셨던 거예요. 너무 예쁜 꽃시계를 차고 아빠의 볼에 뽀뽀 해주었더니 아빠의 입가에는 웃음꽃이 피었어요. 송아지를 보고 싶은 어미 소의 눈망울과 아빠의 함박웃음, 둘 다 둥글, 동글했지요.

 

집 가까이 오니 엄마가 보고 싶어 뛰어갔어요. 그러다 뾰쪽하게 튀어나온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지요. 무릎과 손가락이 쓰리고 피가 흘렀어요. 모난 것이 싫어졌어요. 넘어지며 악쓰는 소리에 엄마가 마당일을 하다 급히 달려왔어요. “동그라미야! 어디가 많이 다쳤어?” 하면서 벌떡 나를 안고 어루만지며 두 입술로 상처 부위를 호호 불어줬어요. 엄마의 둥근 표정과 근심 어린 눈망울에서 몇 방울의 눈물이 흐르는데 둥글었지요. 아픈 곳이 다 나은 것 같았어요. 은구슬 같은 엄마의 눈을 제가 닮았거든요. 나는 그래서 동그라미라는 별명이 좋아요.

 

밤이면 하늘의 마음을 닮은 넉넉한 둥근 보름달이 나를 안아주고, 낮에는 둥근 지구의 마음 같은 커다란 해님이 나를 보듬어주어서 좋아요. 모두 다 모서리가 없고 세모, 네모가 아닌, 둥글어서 좋아요. 엄마 아빠의 모서리 없는 둥근 사랑도 좋지만, 그렇다고 난 세모, 네모를 싫어하지 않아요. 아빠의 말처럼 한마음으로 싸우지 않고 함께 뛰어노니까요.

그리고 또 하나 나를 닮은 동그라미를 좋아해요. 집에서 숙제를 다 하고 엄마가 표시한 것을 보면 ×보다는 이 더 많아요. 제 별명이 동그라미여서 그런 거 같아요.

세상의 모든 동그라미야! 나를 쳐다보렴, 그리고 환히 웃어봐!“

 

”......“

 

네모야! 세모야! 한마음으로 싸우지 말고 같이 놀자

바로 그때 지구에서 하나둘 내려오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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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영수

시인. 문학평론가

제7회 보령해변시인학교 금상 수상

제7회 매일신문 시니어 문학상 수상

제3회 코스미안상 대상(칼럼)

제1회 황토현 문학상 수상

제5회 순암 안정복 문학상 수상

제6회 아산문학상 금상 수상

시집 『흔적의 꽃』, 시산맥사, 2017.

이메일 jisrak@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