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영수 시인(jisrak) 2024. 12. 30.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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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영수 칼럼] 시인이여! - 코스미안뉴스

한 겨울이다. 계절적인 요인에서 오는 추위보다 온몸으로 느끼는 사회적 한파가 오히려 이 겨울을 더욱 춥게 느끼게 한다. 생의 추위를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사랑을 느끼지 못한 사람이듯, 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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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겨울이다. 계절적인 요인에서 오는 추위보다 온몸으로 느끼는 사회적 한파가 오히려 이 겨울을 더욱 춥게 느끼게 한다. 생의 추위를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사랑을 느끼지 못한 사람이듯, 평생 영혼과 육체의 추위를 느껴본 적이 없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이다. 마찬가지로 의도치 않은 상황이 마음의 깊은 상처 속으로 파고드는 추위를 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고열을 앓으면서 큰기침하는 독감의 겨울나기를 진정 모르는 사람일 것이다. 일상적인 생활의 낯빛들에 끼얹는 차갑디차가운 냉수와 겨울 외투 속에 집어넣은 꽁꽁 언 한 덩어리의 얼음에서 느끼는, 그래서 몸과 마음이 그들에 의해 동파되고 있는 현실이 더욱더 12월을 춥게 만들고 있다.

 

풍성했던 가을걷이가 끝난 들녘의 황량한 논밭에 햇볕이 떨어지게 될 때, 잎을 털어버린 가녀린 감나무 가지 끝에는 까치밥 한 개 홀로 외롭고, 사립문 드나드는 할머니의 입김은 안개처럼 하얗게 피어오른다. 춥디추운 겨울, 12월이 그렇게 한 걸음 한 걸음 엄동설한의 옷깃을 여미며 오가고 있다. 삭풍의 겨울은 이렇게 오고 그렇게 가는 것이다. 그러나 어찌하랴. 몸에 익숙한 그 겨울이 아닌, 저 먼 하늘의 바람을 타고 온 것도 아니고, 저 넓은 바다의 격랑도 아닌, 지금 내가 딛고 서 있는 이곳에서 폭풍과 한설의 무지막지한 칼바람이 휘몰아치고 있으니,

 

시인이여!

문풍지를 흔들며 불어오는 총구의 한풍에 누가 기침을 할 수 있겠는가? 우리가 오히려 크나큰 기침을 하자. 몇 날 며칠 고열로 앓으면서 친구들과 이웃들에게 따숩고 뜨끈한 구들장 같은 온기가 되어주자. 그래서 넘어지고 미끄러지는 한겨울의 빙판길 위에 한 줌의 연탄재 가루가 되어 뿌려 주자. 무지막지한 삭풍이 휘몰아치는 냉한의 방안, 그 윗목에 놓인 자리끼가 얼고 얼어가는 이때, 한 줌의 재가 되어 불타오르는 장작불이 되자. 그래서 부넘이를 넘어 아랫목의 장판이 시커멓도록 시어의 장작불로 활활 타오르자.

 

철 지나 폐쇄되고 낡삭은 감옥에 갇힌 언어도단의 맹폭 적 행위를 두 눈으로 바라보고 만났을 때, 과대망상에 사로잡힌 무모한 행태와 마주칠 때 우린, 응당함과 간절함으로 그곳을 뛰쳐나오려고 한다. 또한, 그러해야 한다. 그러려면 대문을 굳게 잠궈 놓은 저들의 자물쇠통 같고 쇳덩이 같은 의식의 문을 부숴줘야 한다. 그래서 비절한 마음으로 문을 부수고 탈출구를 찾아야 한다.

 

시인이여!

그렇게 굳게 닫힌 문고리를 붙잡고 열어젖혀 탈출구를 내주고, 울면서 두드리는 그들에게 가없는 시대의 공기를 불어 넣어 줘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그 시대의 공기를 갈망하는 이들에게 생명의 불꽃을 위해, 타오르는 촛불을 위해 스스로 투신해야 하지 않겠는가.

 

저들이 갈망하면서 높이 휘둘러 쳐 놓은 뾰쪽뾰쪽한 철조망의 사고와 무섭도록 닫힌 담벼락 같은 무지몽매한 현실 앞에 두터운 장벽과 철조망의 세계에 갇혀 있는 저들의 세계에서 벗어나게 큼, 생명의 횃불을 붙들고 치솟고, 뛰어오르려고 하는 이들에게 한 바구니의 산소를 담아 타오르는 불빛의 공간과 광장을 마련해 줘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가 사는 세상이 유토피아를 반드시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디스토피아의 세상에 머물고 싶지는 않지 않은가. 그런데 한편에서는 그들만의 리그와 그들만의 세계에 따로 머물면서 자기들만이 믿는 세계관에 갇혀 살고 있다. 그래서 디스토피아의 세계를 만들기에 여념이 없다. 헤테로토피아의 세계에 살면서 상대를 인정하지 않고 짓누르려고 하면서 상식에 벗어난 자가당착의 논리와 역설로 세상을 바라보는 그들에게,

 

시인이여!

비록 혼란스럽고 당황스럽더라도 저들이 사는 박제된 듯한 헤테로토피아의 세계와 디스토피아를 추구하는 저들의 사고방식을 무너뜨리고 보고 싶은 것만 보는 무주의 맹시처럼 믿고 싶은 것만 믿는 저들에게 인식과 발상의 전환을 꾀할 수 있는 언어의 칼날과 몽둥이를 휘둘러야 하지 않겠는가.

 

시인이여!

수십 년 전에 죽어 잠든 사막풍의 회오리바람이 되살아나 맑은 하늘을 어둠으로 가리고, 바다 건너 나라에서나 볼 수 있는 허리케인급의 폭풍과 폭우가 지금 발 딛고 서 있는 이곳에서 휘몰아치고 쏟아지고 있으니 제발, 사막풍과 허리케인이 엄동설한에 오랜 빙하로 결빙되어 우뚝 솟지 않도록 시어의 불쏘시개로 녹여야 하지 않겠는가. 그리하여 엄동설한의 맹추위에도 온돌방 아랫목에 편히 드러누울 수 있도록 장작개비에 불을 붙여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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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영수

시인. 문학평론가

7회 매일신문 시니어 문학상

3회 코스미안상 대상(칼럼)

4회 한탄강문학상 대상

7회 보령해변시인학교 금상

6회 아산문학상 금상

5회 순암 안정복 문학상

6회 최충 문학상

시집 흔적의 꽃, 시산맥사, 2017.

이메일 jisra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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