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영수의 인문학 칼럼

양비론의 불공정성

홍영수 시인(jisrak) 2025. 1. 27.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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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영수 칼럼] 양비론의 불공정성 - 코스미안뉴스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의 곳곳에서 이쪽과 저쪽, 각자가 서 있는 위치에서 서로 헐뜯고 비판하고 눈을 흘기며 멸시하면서 혼동과 혼란스러운 실제 상황을 연출하고 있다. 한마디로 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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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의 곳곳에서 이쪽과 저쪽, 각자가 서 있는 위치에서 서로 헐뜯고 비판하고 눈을 흘기며 멸시하면서 혼동과 혼란스러운 실제 상황을 연출하고 있다. 한마디로 너도, 나도, 이것도, 저것도 모두 잘못되었단 생각에서 나온 양비론적 시각이 나온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러한 양비론적 생각과 입장에서 의견을 제시하고 글이나 그 어떤 표현 수단으로 표명한다는 것이 가능할까? ,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중간자적인 입장에서 글을 쓰든, 다른 방식으로 의사 표현을 하든 간에 특정한 입장에서 쓸 수밖에 없고, 또한 표현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글이나 말은 특정 지어진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말이나 글, 또는 의사 표현의 수단은 양비론적 시각과 관점에서 바라보기는 힘들다.

 

어느 누구든 사람은 자신이 서 있는 상황에 따라 말이나 글로 표현한다. 그렇기에 자신만이 가진 잣대와 저울의 눈금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한쪽으로 쉽게 치울 수밖에 없다. 그리고 어떤 사물을 재면서 눈금을 보는 것과 마음의 판단과 눈금은 달라야 한다. 사람들은 자신의 저울로 무게를 판단하고 자신의 저울대는 공정하다고 생각하기에 마음대로 저울의 접시 위에 말과 글과 다양한 표현의 수단들을 쌓아놓는다. 그렇기에 사회적인 이슈나 이념, 문화 등을 아주 쉽게 혼동하여 의견을 표명하는 경향이 있다. 이것이 대표적인 양비론적 시각이고 관점이다.

 

티브이를 시청할 때 가끔 볼 수 있는 상징물이 있다. 법의 정의를 상징하는 저울과 칼을 든 여신 디케(Dike). 풍요와 아름다움을 대표하는 신화의 여신들 중에서 꽃이 아닌 저울을 들고 있다. 이것은 죄의 무게를 공정하게 판단해서 칼로 응징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오늘날 법원의 재판 과정에서 가장 먼저 떠올리는 이미지가 아닌가 싶다. 이 이미지는 법원의 당연한 지향점이고 하나의 표상일지 몰라도 그 저울에 대한 특정한 판단과 이념을 올려놓는 것은 특정인의 사람들이다.

 

그 어떤 특정한 이슈나 흐름 등을 양비론이라는 관점으로 바라보는 논점 자체가 어찌 보면 자신이 추구하고 목적하고자 하는 색채를 교묘하게 가리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세상을 바라보는 생각의 틀을 제한하는지도 모른다. 경계를 모호하게 하고 색을 지우는 사이에 진짜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바로 세계를 바라보는 시선이 틀에 갇히지 않고 명료하게 이해하는 것이다. 그래서 눈앞에 보이는 진실을 놓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이다.

 

사회의 흐름은 일반적으로 두 축인 양 갈래로 흐르기 마련이다. 예를 들면 진보와 보수, 요즘 흔히 쓰는 좌파와 우파, 이렇게 양쪽 부류들의 부딪히는 의견들이 모두 틀렸다고, 그르다고 주장하는 것이 양비론의 이론이다. 이러한 주장은 특별한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자기 의견도 없고, 또한 절충점이나 타협점도 없이 그저 이쪽, 저쪽이 다 잘못되었다고 한다. 결국에 너와 나 둘 다 똑같다는 식의 피장파장 오류의 다름이 아니다.

 

이렇게 이것도 저것도 잘못이라고 비판하게 되면 그 사회를, 또는 공동체를 이루는 구성원들 사이에는 감정의 골이 생기게 마련이다. 그러해서 결국에는 메울 수 없는 깊은 골이 파이고, 그 골들의 깊이를 따라가거나 먼 거리감으로 인해 서로 멀어져 간다. 그래서 결국에는 구성체의 공동화현상이 발생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비상계엄도 잘못이지만, ‘탄핵도 잘못이다. 라는 사고방식이 바로 노골적인 양비론이다. 일종의 물타기 수법이다. 이쪽도 저쪽도 별반 다를 게 없이 둘 다 같다는 식의 양비론의 글이나 말들은 논리의 싸움에서는 유용할지 모르지만, 결코 심각한 오류에 빠질 수밖에 없는 논리이다.

 

얼마 전 모 방송국 뉴스 진행자의 말이 생각난다 "폭도들이 잘못했지만, 경찰도 잘못이 있다" 고 하는 멘트를 하면서 어느 쪽 문제가 더 중대한가를 평가하지 않는, 기계적 중립은 도리어 편향이라는 결과를 낳는다고 했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양비론의 논리라면 계엄도 잘못되었고 탄핵도 잘못되었다는 것인가?

누군가는 이렇게 말을 내뱉었다. “왼쪽, 니들 잘했나라고. 참으로 균형감각이 없는 무지성의 말이 아닌가 싶다. 이와 같은 피장파장의 오류는 그 순간을 모면하거나 잠시 피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단연코 그 앞에서는 사회나 공동체 구성원들이 쌓아온 경험칙과 지적 능력으로 무장한 지성인들에 의해 증명되면서 그러한 오류를 벗어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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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영수

시인. 문학평론가

7회 매일신문 시니어 문학상

3회 코스미안상 대상(칼럼)

4회 한탄강문학상 대상

7회 보령해변시인학교 금상

6회 아산문학상 금상

5회 순암 안정복 문학상

6회 최충 문학상

시집 흔적의 꽃, 시산맥사, 2017.

이메일 jisra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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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 이미지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