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영수의 인문학 칼럼

벽치(癖痴), 미친 사람이 된다는 것

홍영수 시인(jisrak) 2025. 2. 10.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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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영수 칼럼] 벽치(癖痴), 미친 사람이 된다는 것 - 코스미안뉴스

벽치(癖痴), 광적으로 어떤 일에 집착하거나, 수집하는 등, 특히 문학과 예술적 가치를 지향하는 문인이나 예술인 중에 미쳐버린 사람들을 인간의 역사 이래로 지금까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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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치(癖痴), 광적으로 어떤 일에 집착하거나, 수집하는 등, 특히 문학과 예술적 가치를 지향하는 문인이나 예술인 중에 미쳐버린 사람들을 인간의 역사 이래로 지금까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다. 공자는 知之者不如好之者, 好之者不如樂之者(자왈, 지지자불여호지자, 호지자불여낙지자), “알고 있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고 했다. 어찌 보면, 즐기는 사람이 즐김을 넘어 지나치게 즐기면 벽()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과 비슷한 의미인 ()’도 있다. 사전적으로어리석다, 미치광이를 뜻한다. 이는 그 무엇에 대한 취향을 억제할 수 없어 병적으로 치닫는 상태를 말한다. 일반적이고 상식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고, 납득하기 힘든 벽()에 대한 반응이기도 하다. 이렇듯 ()’이니 ()’는 즐기고 좋아하는 것을 넘어, 스스로 억제할 수 없을 정도로 그 분야에 빠져든 것을 말한다. 한마디로 병적인 상태이다.

 

이렇게 일반론적인 사고로는 이해하기 힘든 벽치에 대해 예전부터 지금까지 그렇게 불리기를 좋아한 사람들이 많다. 특히 역사 이래로 문인들 사이에서 벽치 예찬론자들을 흔히 볼 수 있다. 필자도 한때 컴퓨터 도스 명령어를 사용할 시기에 천리안이라는 포털 사이트에서 고벽무(古癖無)’라는 닉네임을 사용하기도 했다. 이는 옛것, 광기, 그리고 무위를 별다른 뜻도 없이 객기 부려 좋아하는 단어를 조합해 사용했던 기억이 난다. 그렇다고 벽치는 아니었고 생각 한 편에 떠올려졌을 뿐이었다.

 

글자 자체를 놓고 보면 미칠 정도로 좋아하고, 병적인 상태에 놓인다는 것은, 특별히 지향하고 추구해야 할 만한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러함에도 왜 어리석은 듯, 바보스러운 듯, 미친 듯, 졸박한 듯한 광기 어린 인생살이를 바랄까? 결코, 그 어떤 평가도, 그 어떤 명예에도 구애됨이 없이 자신만의 길을 오롯이 갈 뿐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것은 부딪치는 현실 속에서도 자신이 걸어가야 할 길이라면 득실을 따지지 않고, 맹목적으로 몰입해야 하는 무언가가 있어서이다.

 

조선의 고흐로 불리던 화가 최북, 그를 당대 사람들은 미친 인생이라는 의미로 광생(狂生)’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 이유는 신분이 높은 분이 그림을 요청했는데 거절하자 곤장을 치겠다면서 협박했다고 한다. 순간, 그 사람 앞에서 송곳으로 눈을 찔러버렸다고 한다. 이처럼 최북의 기행과 광기에 찬 행동에서 의 의미를 다시 한번 음미하면서 되새겨볼 일이다.

 

문인이나 예술가들은 예나 지금이나 이해득실에 별반 얽매이지 않는다. 또한, 그 어떤 지위와 명예에도 구속되지 않는다. 그것은 곧 먹고사는 문제를 초월했기 때문이고, 오직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에 사로잡혀 일할 뿐이고 전심전력으로 몰입하고 몰두할 뿐이다.

 

불광불급(不狂不及)이다. 지식인의 내면을 사로잡았던 열정과 광기를 탐색했던 문인들, 절망 속에서도 구애됨이 없이 꾸준히 노력하고 오직 자신만의 세계를 세워가는 광기에 찬 그들, 그들의 삶 자체가 예술이고 예술 자체가 삶이었던 그들, 극한 상황으로까지 몰고 가서 그 시대의 앙가슴을 만났던 그들, 그들이야말로 진정한 광기 서린 미치광이가 아닐까.

 

프랑스 시인 앙토냉 아르토가 광인에 대해 했던 말, “전정한 광인은 사회적 의미에서 그는, 인간의 명예에 대한 어떤 월등한 생각을 어기기보다는 차라리 미친 사람이 되기를 원했던 사람일 뿐이다

 

'문벽(文癖)'서벽(書癖)'이든간에 벽의 품성을 버리지 않을 때라야 글을 쓸 수 있고 책을 모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우리가 보았을 때 광기와 방탕, 일탈 등은 비정상적인 인간의 행위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세상이 비정상적이기 때문에 그러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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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영수

시인. 문학평론가

7회 매일신문 시니어 문학상

3회 코스미안상 대상(칼럼)

4회 한탄강문학상 대상

7회 보령해변시인학교 금상

6회 아산문학상 금상

5회 순암 안정복 문학상

6회 최충 문학상

시집 흔적의 꽃, 시산맥사, 2017.

이메일 jisra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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