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영수의 시 평론

쉰이 넘어서야 강을 보았습니다/금미자

홍영수 시인(jisrak) 2022. 11. 17. 22:40

 

대책 없이 밀려 밀려온 여기

세상이 잠시 숨을 죽입니다

세찬 바람이 가슴을 휘몰아 간 오후

지금은 맑고 조용합니다

 

노송 한 그루 내려다보이는 이곳에서

장작을 패고 따뜻하게 쌓는 일

구수한 밥 냄새에 뭉근한 기다림을 배웁니다

황망히 떠나버린 시간속의 사람들

그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이정표를 잃은 내가 서있고

또 다시 바람이 일렁입니다.

 

이제 내 마음에도 성근 볕이 들고

분주했던 시간들이 차례차례 줄을 섭니다

쉰 고개 넘어, 이제야 나는 강을 보았습니다

넉넉함으로 나를 푸근히 안고

느릿느릿 바다로 함께 갈 강을 만났습니다.

 

            _금미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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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란 익숙한 것에서 낯선 곳으로 떠남이다. 삶의 여정 또한 이렇다고 할 때 태어난 순간부터 수없이 많은 마주침 속에 살며 사랑하며 살아간다. 그러면서 만남과 이별, 사랑과 증오, 탄생과 죽음을 겪게 된다. 이렇게 반복되는 일상에서 느끼지 못하고 자동기술 되듯 살아온 어느 날 갑자기 닫힌 마음에 문을 여는 그 무엇을 만나게 된다. 연륜이라는 생각의 노크다.

 

마르틴 부버는 <나와 너>에서 “‘는 너로 인해 가 된다.”고 했다. 이렇듯 삶 속에서 늘 부딪침과 만남의 관계를 맺고 살아간다. 그 과정에서 한결같음을 지향하나 동일하지 않은 차이를 느끼고, 아무리 가까워지려 해도 너와 나 사이에 존재하는 엷은 막을 인정할 수밖에 없을 때 우린 존재의 고독을 느낀다.

 

그 장벽에 막혀 이정표를 잃고 서 있는 시인은 적나라한 통찰 속에 허무와 고독을 곧바로 인지하고 있다. 거칠고 세찬 바람의 세월을 보내고 난 뒤, 삶의 오후가 고요에 잠기는 때. 산 자와 산 자 사이, 산 자와 죽은 자의 사이에 서서 시인은 지난 과거를 해체하고 한 그루의 노송이 되어 장작불에 가마솥 이밥이 뜸 들일 때까지 기다림을 배우고 있다. 어찌하랴! 관계의 미학이라는 익숙함에 젖은 시인은 곁을 떠나고 또는 저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나버린 이별과 마주치게 된다. 영원할 것 같은 너와 나그 사이에 놓인 보일락말락 한 섬에 또다시 일렁이는 바람. 그러나 곧바로 추스르는 마음 한편엔 성근 볕이 비추고 지내온 시간도 차분히 줄지어 서 있다.

 

1인 부모와 자식, 2간의 형제 사이에도 이라는 좁은 틈새가 자리하고 하물며 無寸인 부부 사이, 그리고 연인, 친구 사이에서도 어떤 막에 가로막혀 있다는 것을 느낄 때가 있다. 어쩜 공기와 천사 사이에도 엷디엷은 막이 존재하지 않을까. 타자가 나일 수 없고 내가 타자일 수 없는, 우린 그 막을 잊고 하나가 되길 원한다. 하지만 슬픔의 근원인 엷은 막은 늘 그 자리에 있다. 마르셀 뒤샹의 표현을 빌리자면 앵프라맹스(inframince)’.

 

쉰이라는 세월 앞에 겸허히 옷깃을 여미고 고개 숙이며 자기를 낮춘 시인의 모습을 본다. 知天命이라는 경전은 익숙함에 젖어 잠든 시인의 눈을 부릅뜨게 하는 자명종이다. 이때 눈에 비쳐 만난 강물은 예전의 강물이 아니고 강물 너머의 강물이다. 사유의 시선은 지나온 경험에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듯 쉰이라는 체험을 통해 시인은 비본질적이 아닌 본질을 만났다. 관계망 속에 존재하는 사이’, ‘틈새를 쉰 살 경험의 축적으로 포착한 시인 특유의 감각과 내면 의식 속에 주체적 개인을 만난 것이다.

 

앵프라맹스(薄膜)를 만난 시인. 그 얇은 꺼풀의 강을 건너게 하는 힘은 무엇일까. 넉넉함과 푸근함을 안겨준 天命을 알게 하는 나이 듦일까 아님, 타자에 대한 지극한 사랑, 또는 신뢰일까. 혹은 종교의 궁극적 실제에 대한 비손이었을까. 어떠한 것이든 모든 것을 용해하는 바다를 가기 위해 시인은 강물을 보았고, 만났다. 그 강물에 흐르고 있는實存의 나를 건져 올리기 위해.

 

홍영수 시인, 문학평론가

 

쉰이 넘어서야 강을 보았습니다/금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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