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추의 시학 2

박수호 시집 『꽃잎은 바람에 날리고 』

반추(反芻)의 시학, 깊은 사유로 되새김하다.                                                                                                                                                 (홍영수(시인 문학평론가)  어느 해, 땅끝 해남의 들녘을 걷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비를 머금은 짙은 먹구름이 몰려왔다. 발걸음을 재촉하면서 유심히 하늘을 쳐다보는 순간, 먹구름 틈새로 환한 한 줄기 은빛이 새어 나왔다. ‘한 줄기 은빛’과 같은 시적 근원을 체험하기 위해 시인의 눈엔 눈꺼풀이 없어야 한다. 시어를 찾고 발견하기 위해 세심한 관찰력과 열린 오감으로 사물과 대화하고 스며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인간관계론 / 박수호

반추(反芻)의 시학 필자는 농부의 아들이었다. 당시 소는 대학 등록금이었으며 농사 밑천이었다. 논밭 갈이 온종일 하고 돌아온 소에게 소죽을 끓여 주면 다 먹고 난 뒤 가만히 앉아 되새김한다. 그 모습은 평화로움 그 자체다. 소의 주식은 다양한 풀이다. 일과를 끝내고 난 뒤 위 속에 저장된 풀의 종류를 하나하나 되새김질하며 풀 맛, 즉 의미를 곱씹고 소화 시키는 모습이 선정에 든 큰 선승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박수호 시인의 연작시‘인간관계론’을 ‘반추(反芻)의 시학’이라 하고 싶다. 왜냐면 눈으로는 쉽게 읽히지만, 눈을 떼는 순간 눈을 감게 만들어 내가 뭘 봤지? 하며 사색에 잠기게 한다.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의문부호에도 물음표가 붙으며 시작이 있되 마침표가 없다. 그러므로 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