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이 짙어지자 날기 시작한다.”는 철학자 헤겔의 저서 서문에 나온 말이다. 진리탐구나 철학은 어떤 사건에 선행하는 게 아니라 시행착오와 수많은 지혜를 갈고 닦음 끝에 비로소 늦게 등장한다는 것이다. 부엉이는 밤에 활동하는 야행성이다. 서양에서는 지혜의 상징이기도 하다. 즉 지혜의 상징인 부엉이는 해 질 녘에 활동하듯 지혜도 모든 일이 끝날 무렵에 활동한다는 것이다. 인간 또한 황혼이 깃들 무렵에 비로소 지혜로워진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11월의 여행이 좋다. 왜냐면 풍성한 나뭇잎들의 웅성거림도 좋지만, 잎새를 떨궈버린 앙상한 나뭇가지의 기하학적 문양과 빈 가지 끝의 진양조장단의 홀로된 읊조림이 좋아서이다. 어느 해 늦가을, 지리산 둘레길을 아내와 함께 걸었다. 남원의 매봉마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