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의 노를 저어요 2

독서 예찬

조선 후기 실학자인 이덕무는 책을 읽다가 눈병을 얻고서도 수많은 독서를 했기에 그를 일러 책만 읽는 바보라는 의미의 ‘간서치看書痴’라 했다. 또한, 나비 그림을 많이 그렸던 화가 남계우는 지극한 나비 사랑으로 그를 ‘남나비’, 혹은 ‘남호접南胡蝶’이라 불리는 벽치였다. 한마디로 그들은 불광불급不狂不及이었다. 젊은 시절 필자는 데카르트, 칸트, 쇼펜하우어의 이니셜을 가져와 ‘데칸쇼’와‘광졸치狂拙痴’등의 닉네임으로 만용을 부리며 스스로 독서 예찬론자가 되었다. ​지금도 집에 있는 시간엔 어느 책이든 손이 가지 않으면 불안감이 든다. 정서적 불안이다. 관심 분야의 책뿐만 아니라, 잠시 또는 오래전부터 눈길, 손길 닿지 않는 책장 한구석에 먼지 쌓인 책들을 일으켜 세운다. 단어 하나, 문장 하나, 그리고 아포리..

독서의 노를 저어요/홍영수

바다의 표면은 얕은 호흡으로 잔잔해요 내면의 수심엔 깨어나지 못한 의식이 고요하고요 활자를 실은 낯선 배가 다가와 어제와 다른 풍랑의 그물을 가슴팍에 던져요 언어의 작살은 그물망 속 어둠과 무지의 심장을 꿰뚫고요 단어의 삿대는 파도를 떼미는 상징이 되어 얄따란 생각의 조직망을 밧줄로 얽혀줘요 문장의 뉘누리에 휩쓸린 넋 잃은 생각과 행간의 의미는 물머리를 헤쳐가며 항해를 하고요 마룻줄에 매달린 글자의 닻을 내리면 사유의 파편들이 해저를 자맥질하다 떠올라요 지적 갈망이 이물과 고물에 해일처럼 밀려올 때는 망망대해로 독서의 노를 저어가요 돛을 높이 올리고 해적선의 수부가 되어 활자의 그물에 걸린 사유의 보물들을 노략질하고요 저자와 독자의 두 물굽이에서는 설익은 항해일지에 밑줄그으며 난반사로 비추는 물음표의 빛..

홍영수 시 2022.10.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