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영수 시인 58

사랑하는 이여!/ 홍영수. - 낭송 이호봉 님

https://www.youtube.com/watch?v=AFmj_o66-Ng&t=111s  이호봉 낭송가님.  사랑하는 이여! / 홍영수 사랑하는 이여!오늘도 당신의 생각 속에서 따스한 영혼을 느낍니다.내 삶은 늘 보고 싶음이요 기다림입니다.당신이 곁에 없어도 당신으로 흘러넘치고내 안에서 당신을, 당신 안에서 나를 발견합니다.한 잔의 사랑을 마시고 싶어서 빈 잔의 가슴이 되고그리움에 흘린 눈물자리는 보금자리가 됩니다. 사랑하는 이여!불타오르는 나의 기쁨은당신과의 눈맞춤에서 시작되었습니다.이름 석 자는 지문으로 남아 지워지지 않고그림자마저도 심장을 뛰게 합니다.당신의 모든 것은 눈동자에 담겨 있고눈망울에 맺힌 사랑은 별빛처럼 반짝입니다. 사랑하는 이여!눈빛으로 당기면 고즈넉이 다가와 맞잡아 준 두 손부디..

달마산 도솔암 / 홍영수

도솔암에 와서는 묵언의 수행자가 아니면 한 걸음도 나아 갈 수 없다. 암자를 둘러싼 바위는 말이 없다. 말이 없으니, 고요가 귀를 씻는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바위 틈새를 메운 돌멩이에 귀 기울여본다. 울력했던 보살들 땀방울 흘러내린 소리와 한 칸의 절간, 스님의 염불 소리를 풍경風磬이 주워 모아 소리 꽃을 피운다. 처마와 닿을 듯한 늠연한 고목 한 그루가 낡삭은 절집을 안고 소리 없이 툭 던지는 이파리 하나 의상대사의 화두가 되어 불전 앞에 툭 떨어져 앉는다. 말 없는 달마산의 바위너설에서 오묘한 진리 한 자락 휘감지 못했지만 암자를 에워싼 바위 결에 흐르는 노승의 목탁 소리에 몽매한 귀가 확 뜨이며 맥맥한 속내를 확 트이게 한다. 침묵이 숨죽이며 침묵하는 도솔암 미망의 중생에게 내리친 무언의 죽..

나의 시 2023.11.10

내가 없다/홍영수

그 어떤 형상에도 집착하지 않으니 생각이 생각 속으로 숨어들고 풍경이 풍경 속으로 사라진다. 아집이 떠난 자리에 환한 빛이 번뜩이고 무엇 하나 걸치지 않고 티끌의 욕심마저 날려 버리니 텅 비었다, 하늘이 티 없이 맑다, 마음이 언어마저도 언어 밖으로 내 던지면서 가름을 가르고 치우침을 치우니 중심이 사라지고 주변도 자취를 감춘다. 몸과 마음에 걸친 헛껍데기의 상(像)과 눈에 비치는 현상들은 자신의 마음이 빚는 것이다. 그 무엇에도 집착하지 않으니 스스로 깨어나고 먹구름 사이로 비추는 한 줄기 빛처럼 구속되고 얽매이지 않은 자유로운 햇빛이 된다. 욕망이 욕망하는 것을 멈추고 분별지를 제거하니 눈앞의 모든 것들이 사라지며 꽹한 시냇물처럼 맑고 맑다, 깨어난 마음이 ------------------------..

나의 시 2023.07.02

비움, 그 장엄한 희열

장자 철학의 핵심은 ‘비움(虛)’이라 할 수 있다. ‘심재心齋’란 실재처럼 존재하는 자기 자신을 심재를 통해 더 이상 자신이 존재하지 않게 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장자가 말한 ‘비움’이다. 심재를 실천하게 되면 일상적인 의식 속의 작은 나(self), 즉 小我는 사라지고 새로운 커다란 나(self) 즉, 大我로 새롭게 거듭난다는 것이다. 그러나 쉽지 않다. 왜냐면, 가족과 더 나아가 직장, 그리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자신을 온통 비우고 살아간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더라도 심재를 하게 되면 텅 빈 방에 빛이 뿜어진다는 것이다(虛室生白). 마음을 비우고 세상을 바라보자. 그러면 왜곡된 세계가 보이지 않고, 자기만의 관점으로 보는 세계관도 없어질 것이다. 장자의 수양법인 심재좌망(心齋坐忘), 가만..

사랑하는 이여!/ 홍영수/ 낭송 상선영

사랑하는 이여 / 홍영수 사랑하는 이여! 오늘도 당신의 생각 속에서 따스한 영혼을 느낍니다. 내 삶은 늘 보고 싶음이요 기다림입니다. 당신이 곁에 없어도 당신으로 흘러넘치고 내 안에서 당신을, 당신 안에서 나를 발견합니다. 한 잔의 사랑을 마시고 싶어서 빈 잔의 가슴이 되고 그리움에 흘린 눈물자리는 보금자리가 됩니다. 사랑하는 이여! 불타오르는 나의 기쁨은 당신과의 눈맞춤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이름 석 자는 지문으로 남아 지워지지 않고 그림자마저도 심장을 뛰게 합니다. 당신의 모든 것은 눈동자에 담겨 있고 눈망울에 맺힌 사랑은 별빛처럼 반짝입니다. 사랑하는 이여! 눈빛으로 당기면 고즈넉이 다가와 맞잡아 준 두 손 부디 붙잡은 손길 거두지 마시고 당신의 품 안에 고이고이 머물게 해주세요. 슬픈 그림자는 내가..

우린 깡통이지 / 홍영수

난, 누굴 원망하지 않지. 꽉 닫힌 뚜껑이 열렸지. 첫 경험이었어. 너의 갈증을 위해 찢어지는 아픔은 참았지. 톡 쏘는 나의 언어에 탁한 너의 목이 확 트이더라. 손으로 매만지면서 힘껏 들이키더니 두말없이 팽개치더군. 누군가는 나를 찌그러뜨리며 가녀린 몸피에 쓰인 이력을 읽더군. 너 또한, 누군가 너의 입사의 지문을 읽을 거야 힘듦과 아픔에 덧실린 희망 같은 절망, 환한 어둠의 경력 말이야. 손, 발길에 차여 버려진 내 모습처럼 너 또한 알 수 없는 검은 손에 잘렸지 버려졌지만, 최선을 다했기에 우린, 함께 잘리고 뒹굴면서도 당당했지. 회사 정문 담벼락 틈새에 이름 모를 꽃 한 송이 지는 꽃잎이 널 기다리다 잊혀가듯이 떨구어진 꽃잎처럼 나 또한 밟히며 잊혀가겠지. 우린 그렇게 찌그러지고 잘리며 잊혀가는 ..

나의 시 2023.05.20

내가 머무는 세상/정현우

길을 걷다가 문득 돌아보니 누군가 따라 걷고 있습니다 고개를 숙여 발끝만 바라보며 상념 가득한 모습이 참으로 나를 닮아있습니다. 양지쪽 흰 눈은 파르라니 몸을 녹이고 애써 바라본 하늘은 삼킬 듯 나의 몸을 파랗게 물들여 갑니다 함께 걷던 그도 간데없고 나도 이제 돌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돌아가려니 어디로 얼마만큼 가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눈이 녹으면 새싹이 돋아나고 꽃이 피어나는 곳 파란 하늘과 또 다른 내가 있는, 내가 멈춰 서 있는 이곳이 내가 돌아갈 곳이고 또 나아갈 곳이라는 것을 못내 인정해야만 할 듯싶습니다. 가슴 가득 들이마셨던 맑은 공기는 가슴에서 입술로 입술에서 눈으로 전해져 맑고 따듯한 세상을 바라볼 수도, 말할 수도 있을 것만 같습니다 내가 머무는 세상이 가장 행복한 세상이니까요 시집 『..

나의 시 평론 2023.05.18

울림을 향해서 / 홍영수

그곳엔 울림이 있다 출발지점에 몇 갈래 길, 현미경 들여다보듯 익숙함에 젖은 길이다. 그 길을 벗어나 걷고 걸으면 이내 길은 끊기고 발길은 새로운 길을 내며 걸어야 한다. 그 길은 낯설고 두렵다. 일상의 시선과 후각은 허락되지 않는다. 길은 똑바로 걸을 수 없다. 한 고지 올라선다. 너덜지대의 돌은 날을 세우고 초목은 몸을 낮춘다. 새들은 죽지를 접고 고도를 낮추며 물은 흰 구름을 안고 굽이대로 흐른다. 암벽만큼 가파른 숨소리 앞에 얼핏 다가선 노루막이. 출발 때의 시야가 깜짝 놀란다. 천 만근 발걸음은 구름 위를 걷고 가까워진 하늘이 고개를 끄덕이며 방긋 웃는다. 뒤돌아 지나온 길을 뒤 돌아본다. 울림은 오르는 자의 발걸음 소리만큼 울릴 뿐 울림을 위해 울지는 않는다. ------------------..

나의 시 2023.05.06

망각의 풍경 / 홍영수

마실 다녀온 할머니 지팡이 뒤로 달그림자 딸랑딸랑 뒤따른다. 달빛 가루 분칠한 흰 고무신의 인기척에 반쯤 기운 사립문이 삐거덕 열리고 머리카락에 흩뿌린 별빛도 가만가만 들어선다. 종일 외로웠던 안방의 아랫목이 문지방을 엎드려 넘는 홀몸을 벌떡 일어나 반긴다. 창호에 비친 나풀나풀한 댓잎의 몸짓을 눈짓으로 잡아당겨 베개 삼아 누울 때 뒤뜰 된장독의 곰삭는 소리에 텃밭의 풋고추들이 놀란 듯 흔들거리고 깨물어 아픈 손가락을 떠올릴 때 벽에 걸린 액자 속 미소들이 뚜벅뚜벅 걸어 나온다. 허리 곧은 시절에 미처 듣지 못했던 바래고 숨죽였던 빛과 소리가 저물어 가는 생의 귀퉁이에 보이고 들리면서 은밀한 물보라를 일으켜 눈과 귀를 덮친다. 홀몸은 평상복인 고요를 고요롭게 벗으며 망각의 풍경 조각들을 다문다문 주워 모..

나의 시 2023.04.28

유치원 어린이/홍영수

봄바람에 하늘거리는 연초록 잎이다 이른 아침 풀잎에 맺혀 순수로 빛난 해울이다. 햇살 품어 반짝거리는 수정의 절정이다. 하늘도 간지럼 타는 해맑은 웃음이다. 깊은 산골에 갓 피어난 백도라지의 하얀 향이다. 내가 돌아가야 할 처음이자 마지막 고향이다. 그리고 저들은 무공해의 우주이다. ------------------------------------------------- 홍영수 시인. 문학평론가 제7회 보령해변시인학교 금상 수상 제7회 매일신문 시니어 문학상 수상 제3회 코스미안상 대상(칼럼) 제1회 황토현 문학상 수상 제5회 순암 안정복 문학상 수상 제6회 아산문학상 금상 수상 제6회 최충 문학상 수상 시집 『흔적의 꽃』, 시산맥사, 2017. 이메일 jisrak@hanmail.net ---------..

나의 시 2023.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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