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영수 시 7

폐지 줍는 할머니/홍영수

등 굽은 할머니 손에 끌려가는 손수레 갈지자로 뒤뚱거린다. 구르는 바큇살에 헐렁한 허리춤도 덩달아 허름하게 함께 굴러간다. 짐칸에 실린 종이상자와 페트병 몇 개 고물상을 다녀온 뒤 손에 쥔 몇 닢 저녁 밥상의 물 한 모금에 얹혀 마른 목구멍으로 겨우 넘어간다. 걸어왔던 길이 굽은 길이었듯 구불구불한 차량 사이를 줄타기하며 아슬아슬한 경계를 넘나든 生, 한 끼의 밥 톨 앞에 위험한 곡예는 삶의 저당일 뿐이다. ------------------------------------- 홍영수 시인. 문학평론가 제7회 보령해변시인학교 금상 수상 제7회 매일신문 시니어 문학상 수상 제3회 코스미안상 대상(칼럼) 제1회 황토현 문학상 수상 제5회 순암 안정복 문학상 수상 제6회 아산문학상 금상 수상 시집 『흔적의 꽃』,..

홍영수 시 2023.03.07

무릉도원武陵桃源 수목원*/홍영수

이내가 자오록한 저녁답의 숲 복숭아 향 사르르 코를 짼다. 태양은 너울너울한 도섭지에 움츠러들었고 노을보다 짙은 산 그리메에 하루를 건너온 지친 몸이 젖어 든다. 나뭇잎 하나 툭 떨어진다. 정적에 든 산의 호흡이 깜짝 놀라고 자드락길, 바람결이 토해낸 꽃 향은 발뒤꿈치에서 피어오르며 뒤척이는 숲의 몸맨두리를 헹궈준다 폭포와 절리석의 어름 현실과 이상의 살핏점에서 시간을 잊고 나를 잊을 때 별 같은 별천지가 기포처럼 날아든다. 감실감실한 산색이 마음자리에 물들고 넘실넘실한 바람이 옷깃에 스미는 진종일 바라봐도 안 물리는 무릉 산들거린 능선 노루막이에서 솟쳐 오른 고뇌 한 짐 벗어놓고 등걸잠에 빠져든 도원의 적요. *경기도 부천시 소재 수목원 ------------------------------------..

홍영수 시 2023.02.22

심곡천(深谷川)/홍영수

어둠의 벽을 걷어내고 별빛 한 모금으로 목을 헹군 심곡천 활짝 핀 꽃술이 등(燈)을 밝히고 여울목 물꽃은 환히 웃는다. 달의 모서리가 물고기 지느러미에 잘리는 저녁 은빛 물비늘은 상처 입은 기억의 파편들을 지우고 나울나울한 잔물결이 돌 틈에서 갓 핀 꽃향기에 멀미할 때 냇가를 걷는 길벗들은 피라미 눈망울에서 달빛을 건져 올린다. 시름에 겨워 지새는 샛별 그림자 아래 냇가의 이슬방울은 무젖은 풀잎을 입에 물고 영롱한 순결로 아롱진다. The Symgok Stream Hong Young-soo As the wall of darkness has been torn down, the stream gargles its throat with a mouthfulof srarlight. The sramens of bro..

홍영수 시 2022.11.15

긴 이별/홍영수

울컥 치솟는 보고픔에 끊어지는 애간장 멍울진 아린 마음 어찌할까나 이 설움을 노을빛에 젖어 낙엽은 지는데 글썽이는 두 눈에서 숙명처럼 짓는 눈물 꿇은 무릎 위에 모은 손등에 떨어지는데 옷깃 여민 그리움을 바짝 당겨 다잡아도 파고드는 애달픔 차갑게 느껴오는 너의 삭신 어찌할까나 시린 이 가슴을 너무 이른 긴 이별을 단념하듯 가누어도 흐트러진 나의 영혼

홍영수 시 2022.11.06

한복의 선線/홍영수

선線이 소리가 된다. 동정은 메기고 깃이 받을 때 앞도련은 겨드랑이 밑으로 숨어들어 진양조장단이 되고 배래선은 너름새를 하며 곡조가 되어 선으로 창을 한다. 하늘을 나는 듯 신명 난 저고리 곁마기와 끝동은 춤을 추고 삼회장의 사뿐사뿐한 소리에 두 옷고름은 빗장고름의 엇박자로 음표를 드레드레 매달고 앞섶과 치마 사이에서 아니리를 하니 삼작노리개가 얼쑤 하며 한바탕 추임새를 한다. 쪽빛에 살짝 피어오른 외씨버선 상큼하게 들린 버선코와 신코가 마음 자락 비집고 들어와 선의 무리로 만나서 병창을 할 때 한 가락 선의 언어는 소리가 되어 흐른다 있는 듯 없는 듯 꿰비치는 주머니 얼비친 분홍빛 속치마가 수줍어하는 사이 선의 얼개로 짠 치마저고리의 시김새 선들이 눈대목이 되어가면서 선線은 명창이 된다.

홍영수 시 2022.1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