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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을 타고 문지방을 넘는다.
행여 들키면 안 되는 듯
잠든 문고리를 잡고 정지문을 연다.
부뚜막 곁 흰 고무신 한 켤레가
어둑새벽의 이슬을 밟고
우물가에서 물을 긷는다.
고요한 뒤란의 장독대 위에
신줏단지 모시듯
흰 대접 하나 올려놓는다.
새벽길 떠난 남편보다 먼저 길 열고
부정을 털어버리려는 듯
옷매무새 다잡으며
두 손 모은다.
버리고 비워서 헐렁해진 몸
허리 굽혀 천지신명께 빌고
허리 펴며 하늘과 소통하며
목젖에 걸린 자식들 위해
여자라는 것조차 잊는다.
아니, 처음부터 어머니였을까.
소리 없는 큰 울림의 기도 한 그릇
성역이고 종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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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영수
시인. 문학평론가
제7회 보령해변시인학교 금상 수상
제7회 매일신문 시니어 문학상 수상
제3회 코스미안상 대상(대상)
제1회 황토현 문학상 수상
제5회 순암 안정복 문학상 수상
제6회 아산문학상 금상 수상
시집 『흔적의 꽃』, 시산맥사, 2017.
이메일 jisrak@hanmail.net
장독위의 정화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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