젖은 마당이 길을 막는다 발이 빠지고 땅이 깊이 패이고 마침내 왔구나 청석골* 좁은 골목 안 창백한 도라지꽃 사람이 사는 마을에서 펄럭인다 “묏버들 갈혀 것거 보내노라 님의 손대”** 단 한 번으로 건너버린 이승 함관령***과 詩 사이에서 시간이 명료해지고 왈칵 쥐었다 풀어지는 빗줄기가 잔가시를 쏟아낸다 순도 높은 눈물이 몸 밖으로 흐른다 손톱 끝 발바닥까지 뜨겁게 지져대던 그 여름 내 몸 어디쯤으로 건너오는지 혀 아래 삼키지 못한 말이 펄펄 끓는다 몸 안에 칼금 긋고 제단 위로 눕거나 용암으로 넘쳐나거나 펄펄 끓어오르는 꽃이 몸을 벗는다. *파주 교하면 다율리 소재 **“묏버들 갈려 것거 보내노라 님의 손대“ 홍랑의 시 ***홍랑이 최경창과 헤어진 곳 시집 『지금 뼈를 세우는 중이다』, 시와산문사,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