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죽 최경창 2

꽃이 몸을 벗는다 -홍랑묘를 찾아서/김양숙

젖은 마당이 길을 막는다 발이 빠지고 땅이 깊이 패이고 마침내 왔구나 청석골* 좁은 골목 안 창백한 도라지꽃 사람이 사는 마을에서 펄럭인다 “묏버들 갈혀 것거 보내노라 님의 손대”** 단 한 번으로 건너버린 이승 함관령***과 詩 사이에서 시간이 명료해지고 왈칵 쥐었다 풀어지는 빗줄기가 잔가시를 쏟아낸다 순도 높은 눈물이 몸 밖으로 흐른다 손톱 끝 발바닥까지 뜨겁게 지져대던 그 여름 내 몸 어디쯤으로 건너오는지 혀 아래 삼키지 못한 말이 펄펄 끓는다 몸 안에 칼금 긋고 제단 위로 눕거나 용암으로 넘쳐나거나 펄펄 끓어오르는 꽃이 몸을 벗는다. *파주 교하면 다율리 소재 **“묏버들 갈려 것거 보내노라 님의 손대“ 홍랑의 시 ***홍랑이 최경창과 헤어진 곳 시집 『지금 뼈를 세우는 중이다』, 시와산문사, 2..

나의 시 평론 2023.05.12

홍랑(洪娘), 해어화(解語花)의 그 지독한 사랑

몸은 천민이요, 눈은 양반’이라는 말처럼 이중적 신분 구조에 처했던 그들(妓生), 조선 시대 여성문화의 중심에 서 있었으나 시대의 변화에 따라 쇠락의 길을 걷게 되면서 예능적인 면은 평가 절하되고 娼妓(창기)와 동일 개념으로 취급받게 되었다. 시서화에 능한 예술인으로서 사회적 자리매김을 받아야 마땅한 그들은 역사의 흐름 속에서 그 본연의 의미를 상실한 채 왜곡된 성(性) 상품으로 이 시대의 기억 속에 살아있다. 조선의 로는 송도의 황진이, 부안의 이매창, 그리고 성천의 김부용을 꼽고 있으나 ‘홍랑(洪娘)’ 또한 이들에 비해 詩妓로서는 빠질 수 없는 기녀가 아닌가 한다. 그녀들의 예술적 행위는 지금도 무형 문화재로서 자리하고 있으며, 당시 전문 예인인 만능 엔터네이너로서의 그들을 일반적 호칭인‘기생妓生’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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