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시 85

통로가 되고 싶은 외 4편

통로가 되고 싶은  남과 북 사이에 가로 놓인 나반도를 가로지르며 한 가운데 서 있다.훈민정음은 쭈뼛쭈뼛한 철조망의 등뼈를 오르내리고심장 깊숙한 곳에는 같은 피가 흐르는데가슴과 가슴 사이에는 내가 있어 오가야 할 언어의 날갯짓은 죽지를 접은 지 오래다.그리움과 보고 싶음의 틈바구니에멋쩍은 듯 녹슨 자세로 서 있는 나는 누구일까서로의 오감이 끊겨버린 사이에 선 두꺼운 벽그렇게 가로막은 호적의 뿌리를 뽑아버리고흔적마저 지우고 무너뜨려서 이어주고 싶어장애물이 아닌 통로가 되고 싶은 거야뜨거운 심장으로 더불어 살아야 할 너희들이 모질고 모진 세태의 틈새에 나를 세워놓은 거야마음에서 마음으로 이어지는 세상은 없는 걸까장애물의 벽이 아닌 희망의 통로가 될 수 없는 걸까나를 무너뜨릴 수 있는 건 오직 너희들뿐이야.더..

나의 시 2024.10.25

동사강목東史綱目*

책장 속, 한 문장에서 역사 한 톨 꺼낸다.조심스럽게 눈으로 듣고 귀로 바라본다.얼마나 긴 간난과 고난 속 역사관을 일깨워야이십여 년 붓끝에서 완전체의 세계관이 잉태될 수 있을까.그리고 단군조선에서 고려 말까지 내 달려올 수 있을까.역경과 가난을 옆구리에 꿰차고서몇십 권의 실사구시로 영글기까지 한 장 한 글자에는이익과 친구들의 손길 발길이 돋을새김 흔적으로 남아 있다.강綱과 목目에는 충절과 실학의 정신이 실려있고보이지 않는 동사강목의 시원에는 반계가 어른거린다.가만히 책의 낱장을 톺아본다.붓끝이 일필휘지로 순암의 정신을 그려 낼 때묵향은 책 속에 스미어 성리학의 꽃을 피운다.‘안(按)’의 자세로 옹이진 붓을 휘어잡고찬탈자들의 빗나간 역사관 속에서도 올곧은 얼혼은 국가와 왕과 신하의 몸에 박혀서문 속 시대..

나의 시 2024.10.09

당신의 빈자리/홍영수

https://m.kyilbo.com/336799 당신의 빈자리" data-og-description="냉기를 머금은 침대 하나 하얀 시트 위에 적막함이 누워있다 깊게 파인 육순의 자국 위에 귀를 기울이니 떠나지 못한 당신의 심장 소리 여전히 들려오는 듯 창문 틈새로, 바람을 안고 들어온 차" data-og-host="m.kyilbo.com" data-og-source-url="https://m.kyilbo.com/336799" data-og-url="https://m.kyilbo.com/336799" data-og-image="https://scrap.kakaocdn.net/dn/citToP/hyWG0IDcws/RtUIyWuoIHEwvWRBfqfKmK/img.png?width=500&height=678..

나의 시 2024.07.29

그렇게,

살아간다는 것이 끝자락을 향해 가는 것이고그 길의 마지막엔 돌아올 수 없는 절벽이 있다면,밤낮없는 걱정과 고뇌에 찬 한탄만 할 수 있겠는가하늘을 날며 날갯짓하는 새들, 그들이 멈추는 곳이죽지를 접고 누워야 할 땅 위라면,흔들리는 우듬지 끝자락에서 노래를 부를 수 있겠는가.슬픔에 울지 말고 비탄에 젖지 말고비록, 더 이상 갈 수 없고 날 수 없을지라도함께 어울려 노래하는 삶이 좋지 않겠는가.그렇게 노래하자고활짝 귀를 열고 들어주는 이 없더라도.그렇게 걸어가 볼까요.함께 걸으며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이 없더라도.그렇게 웃어봐요커다란 입 벌리고 웃는 이 없더라도.그렇게 어울리자구요손에 손을 잡고 춤추는 동무가 없더라도.살아감은 영원하지 않고 오직,바쁘디바쁜 발걸음만 있을 뿐이기에.-----------------..

나의 시 2024.05.21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 홍영수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부르튼 피부의 대들보를 안고 누웠다가아흔 굽잇길을 돌아 검은 그림자가 되었다는 것을,누구의 관심과 눈길 없이이승의 삶을 해체하고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난오두막 같은 한 여인이 그녀였다는 것을, 늘그막의 모습을 감추기 위해 이목구비를 지우고헐거운 짐이 무거운 짐이 될까, 걱정하다가 생의 앞편으로 이어갈 끈을 놓아버렸다는 것을,베갯잇 적시는 몇 방울의 고독을 삼키면서사립문 여는 소리는 차마 닫지 못하고검은 천사에 둘러싸인 주검이 그녀였다는 것을,이젠, 휑한 방 안의 공기마저 납작 엎드린 곳에그동안 방치된 자투리의 삶이 압류된 채다문 입에 못다 한 말들이 시체처럼 붙어있는초점 잃은 눈동자의 여체가 그녀였다는 것을,그녀가 켜 놓은 촛불에는 빛이 있었으나꺼진 뒤의 촛농 속에는 그녀가 있었다..

나의 시 2024.04.30

엄마! 보고 싶다-세월호 사건을 추모하며

엄마! 세상에는 많은 길이 있잖아. 길 중에도 가야 할 길이 있고 가지 말아야 할 길이 있어. 그런데 왜 그들은 가지 말아야 할 길을 갔을까? 그토록 물을 싫어하는 나를 맹골수도(孟骨水道)의 빠른 물속에 차가운 영혼으로 멈춰 있게 하는 거야. 알잖아, 엄마는 물속보다 엄마의 품속이 그립고 물길보다 아빠의 손길이 필요하고 펼쳐야 할 꿈이 망망대해인 나를. 아직 더 높이 올라가야 할 욕망의 하늘이 있고 더 멀리 달려야 할 희망의 지평이 있고 더 크게 울려야 할 가슴의 종이 있다는 것을. 멋진 추억을 쌓기 위해 떠났던 새벽길에 도란도란 모여 얘기꽃 피워야 할 친구들이 아직도 환상 속에 꿈을 꾸는 듯 내 곁을 둥둥 떠다니고 있어요. 눈동자는 움직임이 없고요. 세상의 모든 신에게 마지막 기도를 했던 친구들 그들의..

나의 시 2024.04.05

시인의 시視 / 홍영수

23.5도 기울어야 밝고 어두운 길이 놓이듯 꽉 쥐어짠 빨래같이 시視의 초점도 비틀어져야 전복된 은유가 바로 선다. 누구 하나 일으켜 세워 주지 않아도 하루에 한 바퀴 비켜선 중심의 자전으로 밤낮의 길이 열리듯 휘어진 눈동자로 정신의 세포를 찾고 기울어진 시각으로 상징의 숲속을 헤매어야 찾을 수 있는 한 잎의 詩. 물음표를 찾다 물음표조차 묻게 하는 뒤틀린 視. -----------------------------

나의 시 2024.03.06

더하기 빼기/홍영수

몇 번을 빚어야 어둠의 낯빛이 밝아질 수 있을까 얼마를 다듬어야 타인의 시선을 동냥할 수 있을까 몸뚱어리 이곳저곳을 허물고 메워서 교정부호로 피어오른 외모의 흔적들은 볼거리의 장식이요 영혼 없는 굴종의 상처다 깎아내고 덧붙이며 차이를 가르지 말고 네 안의 자신으로 돌아가자 넌, 너만의 심혼을 네 안에 가지고 있다. 도려내고 부풀려서 개성 또한 지우지 말자 비스름한 형상의 공주이고 왕자가 되어 시선들을 구걸하는 윈도우속 마네킹이 되지 말자 넌 이미 곱게 피어난 한 떨기 꽃잎이고 너의 정원엔 너만의 향기로 가득하다. 자의식을 속인 우월감으로 우쭐대지 말자 과장된 오류의 겉모습일 뿐이다. 외양이 주목받고 내면이 소외된 시대 그 자리엔 네가 없고 가식이 자리한다. 가식의 자리에는 본래의 내가 없다. 영혼을 잃은..

나의 시 2024.01.08

새금*다정자(塞琴茶亭子) / 홍영수

굼깊은 한듬절**의 독경 소리였을까 다향에 얼큰해진 무선舞仙들의 옷자락 여미는 소리였을까 흰 달빛이 고봉으로 내릴 무렵 자국걸음으로 마실 나온 일지암 초의 동다송을 꼴마리에 쑤셔 넣고 기스락 가녘으로 슬금슬금 내려오고 만덕산 자락, 초당의 다산은 차부뚝막에서 달인 약천의 찻물을 안고 깔끄막 우슬재를 싸목싸목 넘어와 다정자에 올라서는데 누군가 새팍 여는 소리 탐라의 세한도 소낭구 아래 홀로 외로운 추사가 아슴찮케 명선차 한 잔 가져온다. 멜겁시 원림에 앉아있던 고산이 뜽금없이 일어나 살금살금 다가올 때 눈엽을 솎은 람원藍園***, 첫물차를 짓는디 웨메! 차향에 취해분께 신선도 춤을 춰부네잉. *새금(塞琴) : 해남의 옛 지명 **한듬절 : 대흥사의 옛 명칭 ***람원藍園 : 새금다정자 주인의 호 시작 노트..

나의 시 2023.12.15

둘이 아닌, / 홍영수

너와 내가 없다면 네 것과 내 것도 없으니 이 세상은 미움도 사랑도 없을 것이고 너와 내가 둘이 아니면 어떤 누구와 어느 神과도 하나이니 살아감에 시기도 질투도 없을 것이다. 가는 마음 멈추고 가진 생각 버리면 눈앞의 모든 것들이 사라질 것이고 삶과 죽음은 호흡 한 번 하는 순간일 뿐이니 욕망에 집착할 이유도 없을 것이다. 생은 하나의 그림자에 불과하니 내가 있다는 아상我相을 버리고 공空의 세계에서 내가 없음을 찾아 스스로 깨어나야 할 것이다. -------------------------------------- 홍영수 시인. 문학평론가 제7회 보령해변시인학교 금상 수상 제7회 매일신문 시니어 문학상 수상 제3회 코스미안상 대상(칼럼) 제1회 황토현 문학상 수상 제5회 순암 안정복 문학상 수상 제6회 아..

나의 시 2023.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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