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 실학자인 이덕무는 책을 읽다가 눈병을 얻고서도 수많은 독서를 했기에 그를 일러 책만 읽는 바보라는 의미의 ‘간서치看書痴’라 했다. 또한, 나비 그림을 많이 그렸던 화가 남계우는 지극한 나비 사랑으로 그를 ‘남나비’, 혹은 ‘남호접南胡蝶’이라 불리는 벽치였다. 한마디로 그들은 불광불급不狂不及이었다. 젊은 시절 필자는 데카르트, 칸트, 쇼펜하우어의 이니셜을 가져와 ‘데칸쇼’와‘광졸치狂拙痴’등의 닉네임으로 만용을 부리며 스스로 독서 예찬론자가 되었다. 지금도 집에 있는 시간엔 어느 책이든 손이 가지 않으면 불안감이 든다. 정서적 불안이다. 관심 분야의 책뿐만 아니라, 잠시 또는 오래전부터 눈길, 손길 닿지 않는 책장 한구석에 먼지 쌓인 책들을 일으켜 세운다. 단어 하나, 문장 하나, 그리고 아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