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타고 문지방을 넘는다. 행여 들키면 안 되는 듯 잠든 문고리를 잡고 정지문을 연다. 부뚜막 곁 흰 고무신 한 켤레가 어둑새벽의 이슬을 밟고 우물가에서 물을 긷는다. 고요한 뒤란의 장독대 위에 신줏단지 모시듯 흰 대접 하나 올려놓는다. 새벽길 떠난 남편보다 먼저 길 열고 부정을 털어버리려는 듯 옷매무새 다잡으며 두 손 모은다. 버리고 비워서 헐렁해진 몸 허리 굽혀 천지신명께 빌고 허리 펴며 하늘과 소통하며 목젖에 걸린 자식들 위해 여자라는 것조차 잊는다. 아니, 처음부터 어머니였을까. 소리 없는 큰 울림의 기도 한 그릇 성역이고 종교다. --------------------------------- 홍영수 시인. 문학평론가 제7회 보령해변시인학교 금상 수상 제7회 매일신문 시니어 문학상 수상 제3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