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가락에 흐르는 恨과 멋
-심호(心湖) 이동주론
문학평론, 홍영수, 2021.
심호(心湖) 이동주(1920~1979)는 땅끝 해남(海南) 태생으로 해방 후 한국문학을 대표하는 서정시인이다. 혜화전문(惠化專門) 2년을 중퇴하고 1950년「문예(文藝)」지에 「새댁」과 「혼야(婚夜)」가 추천되어 문단에 데뷔한다. 첫 시집「혼야」을 1951년에, 1959년에 두 번째 시집「강강술래」을 출간한다. 그가 작고한 1979년까지 총 4권의 시집을 발간하였고 시력(詩歷) 30여 년에 150여 편을 썼으며, 시선집에 『산조(散調)』(1979), 유고 시집 『산조여록(散調余錄)』과 시선집『이동주 시집』(1987) 등이 있으며, 수필집『그 두려운 영원에서』등 1백여 편의 수필과『문인실명 소설집(文人實名小說集)』등 여러 편의 소설을 발표하였다.
그는 우리 고유의 가락과 운율을 시적으로 승화시켜 전통미를 계승하고 체험케 한 시인이다. 시어와 시의 기법이 변화하는 1950년대의 서구적 시 정신에 함몰되지 않고 전통의 율격과 민속 고유의 정신을 재발견하려는 시도가 이동주 시의 근저를 이루고 있다. 또한 현란한 기교나 수사보다는 전통 가락, 판소리나 민요의 리듬을 중요하게 여겨 恨을 바탕으로 한 시적 경향을 지향하고 있다.
이동주의 시에 판소리와 남도 민요의 율격이 어떻게 나타나고 또한 恨과 흥, 恨과 멋이 어떻게 시적으로 결합 되는지, 그러한 전통의 계승과 민속의 재발견이 그의 시에 끼친 영향은 과연 어떤 것일까.
현대 시에서 음악성은 근대 이전에 비해 다소 소홀한 경향이 있다. 특히 1950년대의 비극적인 민족상잔의 전쟁에서 오는 불안과 공포, 허무와 힘든 삶을 절감하면서 모더니즘의 시를 계승하며 현대 문명의 어둠을 형상화하는데 주력했던 그들의 시와는 다른 시선과 고전적인 정감으로 돌아가려는 시인 중에 이동주가 있다. 박재삼 시인 같은 경우는 행, 연의 구분 없이 쓰인 작품이 많다.
이러한 변화에도 이동주의 시학적 자세는 간결하고 함축적인 언어를 지향하며 율격의 변화를 준다. 그는 운율의 필요성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나는 수다스럽고 장황한 것을 혐오한다. 시는 무한한 것을 가장 작은 그릇에 담는 일이기 때문이다”.이동주 수상집 (『그 두려운 영원에서』, 태창문화사, 1982)
1. 판소리와 민요가 시에 끼친 영향
전통 시가에서는 특히 율격이 강조된다. 판소리는 창과 연희의 특성 때문에 일반 시가처럼 다양한 율격의 형태가 드러난다. 그리고 율격의 기준이 되는 음보는 4음보가 많고 또한 4음보가 중심이 될 때 율동감이 더욱 강화된다. 민요의 형식은 줄 수가 제한된 짧은 노래나 여음이 삽입되는 긴 노래 등 있는데 일반적으로 3, 4음보가 중심을 이룬다. 대표적으로 강강술래는 2음보의 민요이다.
이동주 시의 율격과 가치는 전통주의에 기반을 두는데 그의 시를 살펴보면, 판소리, 민요의 율격이 현저히 드러난다. 판소리의 율격을 사용하여 운율미를 배가시키고 반복된 민요의 기법과 병치를 사용해서 시적 구성을 이룬다. 또한 가락에 대한 그의 관심은 시집「산조」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다. 특히 그의 고향인 남도 지방의 전통 가락과 흥에 관심이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1
마른 잎/쓸어 모아/구들을/달구고
가얏고/솔바람에/제대로/울리자,
풍류야 붉은 다락
좀먹기 전일랬다.
진양조, 이글이글 달이 솟아
중머리/중중머리/춤을/추는데
휘몰이로/배꽃같은/눈이/내리네.
당! 홍……
물레로 감은 瘀血, 열두 줄이 푼들
강물에 띄운 情이 고개 숙일리야.
2
鶴도 죽지를 접지 않는
원통한 강산
울음을 얼려
허튼 가락에 녹여보다.
이웃은 가시담에 귀가 멀어
홀로 갇힌 하늘인데
밤새 내 가얏고 운다.
- 「散調1」전문
산조(허튼가락)는 남도 지방의 악곡이며 느린 장단에서 빠른 장단으로 배열된 기악 독주곡의 형태이다. 위의 시는 4음보의 율격으로 느린 진양조로 시작하다가 점점 빨라지는 중모리, 잦은모리, 휘몰이로 변화해가는 운율의 변화를 주고 있다.
우리의 전통 가락인 산조는 길고 짧고, 꺾고 굴리는 흐름이 우리 민족성과 잘 어울린다. 어찌 보면 곡선의 미학이다. 3연의“진양조, 이글이글 달이 솟아/중모리 중중모리 춤을 추는데/휘몰이로 배꽃 같은 눈이 내리네//”에 흐르는 산조 가락의 변화를 이동주는 그대로 끌어와 시 자체의 풍류를 살려낸다. 첫 연의 “마른 잎 쓸어 모아 구들을 달구고”는 산조를 연주하기 위한 준비단계로서 악기를 점검하고 “가얏고 솔바람에 제대로 울리자”라고 하는 겸허한 화자의 의식이 잘 나타나고 있다. 그러면서 밖에는 배꽃 같은 눈이 내리는 정취를 보여준다.
특히 산조 가락에 담긴 율격의 회화적 요소와 청각적 리듬을 통해 시각화하면서 남도 지방의 악곡인 산조 연주의 느낌을 남도 지방 정서와 연결하고 있다. 2의“울음을 얼려/허튼가락에 녹여본다”에서는 민족의 한을 다시금 되새겨 보게 하면서 산조를 恨의 미학으로 승화시킨다.
이동주는「해녀」 등의 작품을 위해 제주도를 몇 번 다녀올 정도로 시적 대상을 탐구하기 위해 노력을 많이 했다. 「산조」의 작품도 전북 이리시에 살 때 가야금을 사놓고 어떤 분을 모셔와 恨을 산조 가락으로 연주하라고 했다 한다. 이렇듯 그는 한 편의 시를 꾸미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 체험을 통해 시인의 삶과 세계관과 예술의 일치를 위해 노력하면서 감각적인 측면에 의식의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①
고향, 고향,/ 고향이랬자
거덜난/쑥대밭.//
(…중략…)
꽃처럼/무더기로/져버린/우리 청춘이
다박솔/陰地에서/피를 쏟으면//
(뻐꾹, 뻐꾹, 뻐뻐꾹)
滿醉한/진달래가
귀막고/잔다
- 「散調2」 부분
②
나 사는/마을은
구름 강강,/산 술래
한겨울/내내
길이/막힌다//
얽혀진/칡넝쿨에
눈이/쌓인다//
- 「散調3」 부분
산조를 연작하리만큼 이동주는 산조 가락에 지대한 관심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인용한 시의 대부분은 2음보와 4음보가 병행되었다. 행의 구분은 2음보로 연의 구분은 4음보로 이루어진 것은 판소리 운율과 관계가 깊다.
이 같은 판소리나 남도 민요의 율격에는‘恨’이 담겨 있다. 恨은 우리의 고전 작품과 다양한 분야에서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소재이며, 판소리나 남도 민요의 율격에 흐르고 고향이 해남인 이동주 시의 심연에도‘恨’이 자리 잡고 있다.
인용한 시① “거덜난/쑥대밭//”과 인용한 시② “한겨울/내내/길이/막힌다”//의 구절은 고향의 상실감에서 오는 비극적 인식이 애수성을 띤 산조 가락에 얹혀 있다. 집 떠난 타향살이에서 돌이켜본 고향, 그곳의 밭은 이미 잡초 우거져 황폐한‘쑥대밭’이고 조금만 오는 눈에도 길이 막히고 “얽혀진 칡넝쿨”만 보이는 곳은 전후 문명을 상실한 이동주의 고향이다. 또한“뻐꾹, 뻐꾹 뻐뻐꾹”의 반복적인 음성의 음성률로 恨의 감정을 이입시켜 구슬픈 울음의 청각적 이미지로 구성하고 “만취한 진달래가”의 시각적 이미지를 통해 선명하고 恨스러운 존재를 그리고 있다.
①은 인간과 자연의 가락을 통해 율동감 있게 대비시키고,“거덜난 쑥대밭”과 “꽃처럼 무더기로 져버린 우리 청춘이”에서는 전후의 시대적 상황 속에 외형적. 정신적 피폐화된 모습을 을 엿볼 수 있다. 여기에 뻐꾸기의 울음은 비애감을 더욱 고조시키고 있는데 이러한 시적 표현은 그가 태어나 자랐던 고향을 자주 오가며 평소에 익숙했던 애상적인 남도 가락에 맺힌 恨이 몸과 마음에 유전인자로 남아 있기 때문이며, 그의 다른 시에도 자주 등장한다.
2. 남도 가락에 실은 전통과 민족의 정한(情恨)
닭아,
硫黃빛 눈으로 알을 낳은 닭아,
너도 아픈 몸짓으로 六子배기를 뽑는지
턱을 떠는구나
가이내야 가이내야
엊그제 겨울을 넘긴 야들야들 동배추야
술상을 들기에도 숨이 가쁜 가이내야,
가는 목에 힘을 주면 자지러진다
(…중략…)
하늘로 치솟았다 땅으로 내리꽂히는
물줄기가,
굽이굽이 끝없이 꺾여 돌아간다.
- 「南道가락」 부분
육자배기는 전형적인 남도 민요로서 남도의 정서뿐만 아니라 고장 특유의 흙내음 물 내음까지 잘 드러내는 노래이다. 시의 문맥으로 보아 힘겨운 듯 떨면서 알을 낳은 닭의 모습처럼 깊숙한 호흡에 턱이 떨리는 가락으로 어린 여인네가 한 곡조 뽑고 있다. 육자배기는 판소리처럼 투박하고 특유의 꺾는 목을 섞어서 진한 감정을 싣는 게 특징이다. 위에서 보듯 술상도 들기 힘들 정도인데도 불구하고 여염집의 가녀린 여인이 자지러질 정도로 목에 힘을 주어 목청껏 한의 소리를 토해낼 때 애절한 곡조는 육자배기토리의 애상적 가락에 실려 한과 멋이 되어 흐른다. 이렇듯 흥과 멋의 비애감을 이질적인 대칭미와 음과 양으로 대비시켜 한층 더 恨을 고조시킨다.
누런 눈빛으로 알을 낳은 닭을 인고의 세월로 한이 맺힌 곡조를 뽑고 있는 여인네와 치환시키면서 동배추처럼 “야들야들”한 어린 여인을 통해 “굽이굽이” 꺾인 강물처럼 절정에 이른 남도 가락의 한을 표출하고 있다. 이와 비슷한 구조의「남도창」에서도 恨의 가락이 내면에 흐르고 있다.
발을 구르는
황토길
떴다 잠긴
눈썹달아
가락은
구비 꺾인 강물
손뼉을 치면
하늘과 땅이 맷돌을 가는데
머리 풀고
재 넘어가네
피를 吐한
허허벌판에
앞을 막는
눈보라.
- 「南道唱」 전문
5, 6, 7연의 “머리 풀고/재 넘어가네”와 “피를 토한/허허벌판에”, “앞을 막는/눈보라”에서는 눈보라 휘날리듯 막막하고 암울한 삶 앞에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인생살이의 비극을 노래하고 있다.
호격(呼格)의 「남도 가락」과 명사형 종결어미의「남도창」은 3, 4음보의 운율로 구성되어 있고 특히 이러한 3음보의 리듬은 판소리의 전통적인 율격이라 할 수 있다. 율격은 시의 중요한 요소 중 하나로써 이동주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고 그의 시작 활동의 중심을 이루고 있으며, 축약된 시어와 행과 연의 구분 등은 전통적 율격에 바탕을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동주의 시에는 누이, 새댁, 아내, 어머니 등의 시어를 가지고 여성이 겪어야 했던 恨의 정서가 많은 작품에 구체적으로 나타난다.
3. 전통적 여성의 정서에 흐르는 한(恨)
琴瑟은 구구 비둘기……
열두 屛風
疊疊山谷인데
七寶 황홀히 오롯한 나의 방석.
오오 어느 나라 公主오니까?
다소곳 내 앞에 받들었소이다.
어른일사 圓衫 입혔는데
수실 단 부전 香囊이 애릿해라.
黃燭 갈고 갈아 첫닭이 우는데
깨알같은 情話가 스스로워.
눈으로 당기면 고즈너기 끌려와 혀끝에 멀어지는 이름
사르르 온몸에 휘감기는 비단이라
내사 스스로 義의 장검(長劍)을 찬 王子
어느새 늙어 버린 누님같은 아내여
쇠갈퀴 손을 잡고 歲月이 원통해 눈을 감으면
살포시 찾아오는 그대 아직 新婦고녀.
琴瑟은 구구 비둘기.
-「婚夜」전문
‘한 쌍의 비둘기’, 평화를 상징해서일까, ‘琴瑟 좋은 부부’에 비유하고 있다.
첫 연의 행은 1행으로 되었다. 그것은 ‘금슬 좋은 부부’를 묘사한 의미 단락이다. 초례(醮禮)가 끝나고 ‘관디벗김’을 하고 난 신랑 신부는 한 방에서 몸을 합치는 합궁례를 치른다. 비로소 부부가 되는‘첫날밤’, 꽃잠을 이루는 밤이다. 첩첩의 산중에 암수의 다양한 새들의 모습과 꽃과 나무 등, 부부간의 화목을 상징한 화조도의 병풍을 배경으로 “칠보 황홀히 오롯한 나의 방석”에 앉은 이 순간부터 나의 아내가 되었음을 환기시키고 있다.
이때서야 자세히 볼 수 있는 신부, 다소곳한 공주가 되어 눈앞에 있다. 수줍고 아름다운 공주, 화자는“어느 나라 공주오니까?”하며 바로 눈앞의 새색시를 바라보니 마음이 설레고, 더욱이 비단옷 주머니 향 내음이 방안 가득하니 심장 또한 두근거릴 수밖에 없다.
4~5연에서는 이 순간의 행복과 설레는 마음을 심상의 언어로 표현하면서 첫날밤, 신부 몸치장의 분위기를 원삼(圓衫), 향낭(香囊), 황촉(黃燭) 등으로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있다. 거기에 주고받는 고소한 정담은 신혼의 꿈에 대한 기대치를 더욱 높이고 있으며, 마지막 8연은 1연의 반복인 수미상관(首尾相關)의 기법으로 안정된 시의 구조와 운율을 형성하고 이러한 의미의 강조는 변치 않는 영원한 사랑을 기약한다고 볼 수 있다.
「婚夜」는 「새댁」과 더불어 미당 서정주 시인이 추천해서 <문예>지에 실린 작품으로써 우리의 전통 혼례에서 합궁례를 치르는 신방의 첫날밤 분위기를 상기시키고 있다. 「婚夜」의 구성은 과거를 현재화해서 전통적인 한국 여인상을 시의 리듬과 멋에 실려 묘사하고 있다. 이렇 듯 이동주는 고전적인 시어와 향토색 짙은 색깔로 시공간을 초월한 사랑을 구가하고 있다.
새댁은 고스란히 말을 잃었다.
친정에 가서는 자랑이 꽃처럼 피다도
돌아오면 입 封하고 나붓이 절만 하는 胡蝶
눈물은 깨물어 옷고름에 접고
웃음일랑 살며시 돌아서서 손등에 배앝는 것
큰기침 뜰에 오르면
拱手로 잘잘 치마를 끌어
문설주 반만 그림이 되며
세차게 사박스런 작은아씨 앞에도
너그러움 늘 慈母였다
愛情은 법으로 묶고
이내 돌아오지 않는 남편에게
宮體로 얌전히 상장을 쓰는……
머리가 무릇같이 端正하던 새댁
지금은 풀어진 銀실을 이고 바늘귀를 헛보이시는
어머니
아들은 뜬구름인데도
바라고 바람은 泰山이라
조용한 臨終처럼
턱없이 기다리는 새댁
-「새댁」 전문
“새댁”은 고스란히 말을 잃었다” 갓 시집온 새댁의 표정을 첫째 연에 1행으로 담았다. 설익은 시댁 식구들, 낯선 환경과 분위기에‘새댁’은 말을 잃을 수밖에 없다. 바로 얼마 전 친정에서의 꽃 같은 말로 수다의 향기를 피웠건만, 처음 맞이한 시댁에 오면 그저 나비처럼 ‘나붓이 절만 하는 호접’이 된다.
당시 시대 상황이 그러하듯 갓 결혼한 새댁은 친정집의 생각에 사로잡혀 시시때때로 그리움과 가족의 보고픔에도 흐르는 눈물 보일 수 없어 옷소매로 훔쳐야 했고 혹여 웃어야 할 상황도 웃지 못하고 뒤돌아서야 했다. 이동주의 시에는 바로 이러한 전통의 습속을 절제된 언어와 함축미로 표현하고, 긴 여운은 남도 가락에 얹혀 질박하게 울리고 있다.
새댁은 어느새 “바늘귀가 헛보이시는” 자애로운 어머니로 변해가면서도‘태산’ 같은 아들의 입신출세를 위해 몸과 마음으로 기도하면서 한편으로는 세상을 등질 때의 텅 빈 마음가짐의 여인상을 보고 있다. 이처럼 이동주의 시는 향토적이고 고전적인 것을 소재로 하면서 간결한 언어와 율동감을 바탕으로 한 균형미를 갖추고 있다. 시에 흐름 속엔 새댁의 순종적인 자태와 온화하고 인자하신 어머니의 이미지를 떠 올리게 하고 있다. 연민을 자아내는 어머니의 모습은 장시 「思母曲」에서 확실하게 드러난다.
“울 어머니 꽃은 층층탑 밑에 더디 피었다고 한다.
잔털 밀고 무거운 비녀를 꽂은 지 여러 해 지나서야 포도시 피었다고 한다.
어른이 너무 많아 기를 펴지 못해서다.”
-「사모곡1(思母曲)」 부분
여성만이 겪어야 했던 고달프고 힘든 삶의 시대적 배경을 바탕에 깔고 짙은 농도로 그리고 있는데 “층층 탑 밑에 더디 피었다고”하는 꽃의 묘사가 그러하다. 이처럼 이동주는 「혼야」에서 결혼한 여성의 삶을 소재로 삼은 것에서 알 수 있듯이「새댁」의 작품도 결혼 뒤에 오는 고난을 인내한 후 강한 어머니상을 그리고 있다. 그러나 「사모곡3」을 보게 되면 남성의 모습은 늘 “아버지는 바람……”, “머리에 기름 바르고 갈라 붙인 ”바람기 있는 아버지로 형상화해서 “법에 가까운 시집살이란 오솔길”을 침묵으로 일관하며 홀로 걷는 숭고한 어머니상과 대비시켜 묘사하고 있다.
이상에서 살펴본 이동주 시의 특징은 개인적인 체험을 바탕으로 남도 가락의 운율 속에 시각적, 청각적, 회화적 이미지를 살려 ‘恨’의 정서를 드러내고 리듬감을 통해서는‘恨’을 멋과 흥으로 구현하고 있다‘恨’을 바탕으로 시를 형상화한 작품을 보자
나의 길은
저승보다 머언 눈물
나의 기다림은 또,
어리석은 영원?!
서리먹은 하늘에
달이 영글어
泰山이 풀리는
외기러기 실울음.
어둠에서 다져지는
나의 신명은
바다가 아니면
얼음 밑의 미나리순
이 빠진 웃음으로 손을 잡으면
꿈결 같을라, 스쳐 간 바람
-「恨1」전문
이동주는 항상 고향 해남을 그리워했고 또한 자주 찾았다. 이러한 점은 그의 시를 통해서 엿볼 수 있다. 그는 恨의 실체를 “나의 길은/저승보다 머언 눈물//”로 시공간을 넘어 한을 표출하고 있는데 사실은 “태산이/풀리는/외기러기 실울음//”에서 보듯, 홀로 나는 기러기의 실울음에서도 태산 같은 恨이 풀리기도 한다.
또한 한풀이는 얼음 밑에서도 파릇파릇 기운이 도는 미나리순처럼 생동감 있게 돋아나는 것이라고 한다. 이처럼 이동주는 한을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이나 설움에서 묻어나는 비애(悲哀)가 아니라 恨 풀이는 삶의 원동력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있으며 한을 등진 것이 아니라 흥과 시적 결합을 통해 한국적인 정서와 그의 시 정신의 근본을 찾고 있다.
이러한 그의 서정시 바탕에는 한과 멋과 그리고 진한 여운을 통해 울림을 주고 있다. 2연“나의 기다림은 또,/어리석은 영원?!”에서 보듯 “영원?!”을 함께 표시해서 뜻하는 바가 무엇일까. 절제된 언어의 시학을 추구하는 작가이기에 뜻하는 바가 있을 것이다. 끊임없는 물음표에서 묻어 나온‘恨’의 의문과 그 의문 끝에 얻는 느낌, 두 부호(?!) 앞에 ‘영원’이라는 단어가 상징하듯 ‘恨의 영원성’을 나타낸 시적 표징이 아닐까 한다.
사실 한국인의 대표적인 정서로 ‘恨’을 들 수 있다. 한은 원한, 정한, 긍정과 부정을 함께 담고 있기에 단편적으로 이해하기보다는 복합성을 지진 넓은 정서의 단면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한은 슬픔의 감정에만 머문 것이 아니라 우리 민족의 전통으로 내려왔듯이 슬픔을 긍정으로 변이시켜 한의 미학으로 승화시킨다. 이러한 恨을 이동주는 남도 지방 한의 정서와 맥을 같이한 판소리와 남도 민요인 육자배기 등에 내재 된 한’과 ‘멋’의 심미적 가치를 시적으로 발화시키고 있다.
이동주는“우리네 고전 문학의 바탕이 내용은 한이요, 형식은 여운에 있다.”(『그 어려운 永遠에서. p233~231』) 라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한풀이에 대해서는 “한을 푼다는 것은 곧 인생을 해명한다는 것과 같다”라고 말했는데 자신의 시 세계를 함축적으로 표현한 것이리라. 그렇기에 그의 전통적인 시론은‘恨’을 내적 구조로 삼아 시작(詩作)을 지향하면서 자신의 삶 자체를 아우른다.
여울에 몰린 銀魚떼
가응 가응 수워얼래에
목을 빼면 서름이 솟고
白薔微 밭에
孔雀이 취했다
뛰자 뛰자 뛰어나보자
강강술래
뉘누리에 테프가 감긴다
열두발 상모가 마구 돈다
달빛에 배이면
술보다 독한 것
갈대가 스러진다
旗幅이 찢어진다
강강술래
강강술래
-「강강술래」전문
이 시는 남도 지방의 전통의 민속춤인 강강술래이다. 향토성이 짙으며 고전적인 이 노래다. 이동주의 고향인 해남 지방은 전통적으로 8월 한가위나 정월 대보름날이면 동네마다 여인들이 모여서 집단적 원무인 이 놀이를 즐기는 풍습이 있다.
그는 이 작품에서 각자 손에 손을 잡은 여인들을 역동적인 은어 떼로 비유했으며, ‘백장미밭의 공작(孔雀)’은 시 속에 그림이 있는 시중유화(詩中有畵) 속에 은은한 달빛 아래 여인들은 자연과 하나가 되어 춤을 춘다. 이때 춤사위 모습, “뛰자 뛰자 뛰어나 보자/강강술래”를 은어가 파닥거리며 힘차게 물길을 거슬러 오르는 유희적 모습으로 형상화했는데 이것은 작가 고향의 전통적인 풍습을 체험한 심리적 반응이 응결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리듬을 타는“가응 가응 수워얼래에”의 음악적 요소와, 시각과 청각의 대구(對句)적 기법으로 시의 표현과 기능을 더욱 확대시켜 나가면서 한편으로는 슬픈 가락에 쓸쓸하고 애잔한 삶(목을 빼면 서름이 솟고)과 땅끝 남도의 풍습, 생활상의 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7~9연, 독한 술에 취한 것보다 더한 것이 달빛에 취한 것이다. 그윽한 달빛과 고즈넉한 분위기에 진양조에서 자진모리로, 선창 후창, 메기고 받는 분위기에 술 취한 듯 감정은 최고조에 이른다. 이때 갈대가 쓰러지고 기폭이 찢어지는 듯 절정에 이른 윤무(輪舞)의 춤사위가 최고조에 이른다.
내가 춤이 되고 춤이 내가 되는, 피아(彼我)의 구분 없이 무아의 경지에 도달한다. 지나온 온갖 잡스러웠던 기억과 힘들었던 노동의 고통을 잊고 오직 하나의 춤사위로 망아(忘我)의 엑스터시에 빠진다.
남도 지방의 민속춤, 노래와 춤이 함께 어울리는 가무(歌舞)이면서 원무(圓舞)인 ‘강강술래’를 제재로, 역동적이고 공동체적 협동심을 잘 표현한 작품이다. 특히 회화성의 시각, 음악성의 청각을 융합시켜 한과 멋을 잘 표현하였고 특히 자진모리의 ‘가응 가응 수워얼래에’, 중모리, 중중모리의 ‘뛰자 뛰자 뛰어나보자’, 그리고 마지막‘강강술래/강강술래’를 자진몰이 장단으로 이어가는 긴박감과 율동감은 이 놀이를 직접 경험한 사람만이 작품화할 수 있다. 이동주가 그렇다. 그래서 작품 속에 작가가 녹아있고 작가 안에 작품이 안겨 있다.
「강강술래」의 가락은 육자배기토리와 같은 남도악의 특징인 애원성의 계면조이다. 이러한 민속놀이를 통해 집단사회의 유대감을 형성하는데 기여한 반면 「기우제(祈雨祭)」의 작품에서는 농경사회에서 가장 중요한‘비’의 갈망을 원시적 제의(祭儀)방식의 주술적 행위로 기원하고 있다.
비! 비! 비! 비! 비!
우러러 목이 잠긴 소쩍새
돌아보아야
무우젯불을 올릴 풀 한 포기 없고
靑銅 불화로가 이글대는 모래밭에
소피를 뿌려 쇠도록 징을 울립니다.
이 실날같은 사연 九天에 서리오면
미릿내(銀河)의 봇물을 트옵소서
이제 말끔히 머리를 빗고 사나운 발톱을 밀어
저마다 제자리에 들어 허물을 벗사오니
神明은 어여 노염을 거두시압
진즉 형제의 메마른 핏줄에는
눈물과 애정이 滔滔이 흐르고
초록빛 그늘에 다가앉아
흐린 窓門을 닦으게 하옵소서
-「祈雨祭」 전문
첫 행의 “비! 비! 비! 비! 비!” 는 ‘비’와 ‘!’가 어우러져 하늘에서 비가 내리는 시각적 형태의 표현 방식은 독자에게 심리적 작용을 일으키게 한다. 일종의‘상형의 그림시’이다, 1910년대 프랑스에서 일어난 문자(文字)의 속성 중 형태를 중요시했던 시 운동의 하나인데 대표적 시인 기욤 아폴리네르의 시「It’s raining」처럼 이동주는‘비!’의 단어를 반복적으로 배열해서 주룩주룩 내리는 비의 모습을 가뭄에 타고, 메말라가는 농작물에 단비가 내려주길 시각적으로 도형화해 기원한 것으로 보인다. 글자의 배열만으로도 쏟아지는 빗줄기를 이미지화 하고 있는데 이동주 시에 있어서 새로운 형태주의(formalism)의 시도가 아닌가 한다.
작가는 시가 그림처럼 다가올 때 어쩜 독자들을 더욱 사로잡을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풀 한 포기 없고” , “소피를 뿌려 쇠도록 징을 울립니다.” 는 긴 가뭄의 실상을 형상화하면서 전통적인 민간의 주술행위를 묘사하고 있다.” 청동(靑銅)의 불화로가 이글대는 모래밭“의 표현은 그 당시의 가뭄으로 인해 농민들의 피폐했던 생활상을 뒤돌아보는 시인의 경험담을 얘기한 것으로 보인다. 제례의 관습은 농경사회의 문화와 생활방식의 세계관을 보여주며 당대 사회의 삶과 생존의 방식을 담고 있다.
이동주의 시 속에 나타난 민속의 재발견이 전통 지향의 과거에 머문 것이 아니라, 지난 삶의 방식을 통해 현실 극복 의지와 공동체적인 하나 됨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점은 민족성을 고양 시키고 전후 혼란기를 이겨내는 극복과 의지가 내포된 것으로 보인다.
서정시는 자기의 사상이나 감정을 다양하게 표현하는 형식이다. 또한 일반적으로 인물들의 행위를 객관적으로 서술하는 서사시에 비해서 시인 자신의 주관적인 체험의 감정을 직접적으로 표출하는 문학 형태의 특징을 말한다. 다시 말해 내적인 경험을 통한 소재가 자신에게 흡수되고 주관화되어 거기서 솟아나는 심정을 노래한다. 이렇게 자아 중심적인 성격은 감정의 파문을 일으켜 리듬 또는 운율의 형식을 갖게 된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면 이동주의 문학은 그의 삶과 닮아있다. 음악적인 리듬과 율격의 울림이 문장과 호흡이 일치되고 전통 계승과 민속적 정서에 나타난 情恨과 향토애를 확장시켜 형상화했다.
시인 이동주는 서구적 취향과 작위적인 기교와 형식에 사로잡힌 모더니즘을 배격하고 그들과는 다른 각도에서 고전적 전통 계승의 정감으로 돌아가려고 했던 시인이었다. 또한 한국인의 정서를 바탕으로 옛것을 현실에 맞게 재해석해서 서구 지향적인 당시의 시풍에 물들지 않고 우리 민족 고유의 정서를 미학적으로 승화시켰고 한(恨)과 애상(哀傷)이라는 전통 시의 흐름을 바탕으로 간결하고 유연한 시적인 정서를 추구했던 서정시인이었음을 알 수 있다.
시인 이동주(1920-1979)
당선 소감
때론, 판소리나 허튼가락, 특히 남도 민요인 육자배기를 들을 때가 있다. 이들의 노랫말과 박자 등을 정리해서 직접 제본해 놓은 책을 보던 중 수상 소식을 접했다. 육자배기 노랫말처럼 “임을 만나 萬端情懷”를 풀었다.“
글을 쓰면서도 가끔 주제도, 스토리도 없을 때가 있다. 파편적인 조각만 던져 놓은 것이다. 이처럼 주제도 스토리도 없는 횡설수설한 글을 지향하지는 않지만, 그냥 봐줄 만할 때가 있다. 물론 나의 유한성의 한계를 절감하면서도 문학의 정형성과 표준성을 벗어나 샛길이나 골목길, 오솔길을 걸어보는 것이다.
우리의 국악, 특히 판소리에서도 이 길을 걷는 끝에 시김새가 붙고 그늘 치는 소리의 득음을 하듯, 마찬가지로 내 문학의 역량이 끝없이 펼쳐질 때는 나 또한 그 길을 벗어나 광대무변한 평론의 비아 아피아를 맞이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무작정 문학의 강에 배를 띄울 때 노를 건네준 부천작가회 회원님, 특히 평론의 동기를 부여한 원로 문인과 큰 파도를 함께 가르며 방향타가 되어준 ‘소새동인’의 以文會友님들께 고마움을 전한다. 그리고 폭풍우 속 항해에도 말없이 기다려준 옆지기와 나의 두 심장, 딸들에게 입술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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