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영수의 인문학 칼럼

없는가?, 향가와 속요와 시조가 흐르는 곳은

홍영수 시인(jisrak) 2023. 8. 14. 13:23

시나 음악 등의 예술 작품은 우리의 마음속에서 진정성 있게 솟아오르는 샘물일 때 감동을 준다. 그러나 지금의 현실은 생명수 같은 샘물이 마르거나 증발해 버린 시대를 살고 있지 않나 생각이 들 때가 많다. 그래서 우리가 살고 있는 21세기는 시다운 시와 음악다운 음악, 진정성 있는 예술이 절실하게 요구되는 시대이다.

 

이른 아침을 먹고 출근해서 저녁에 집으로 돌아와 잠들기 전까지 수없는 장소와 매체를 통해 정작 본인과는 상관없이 눈과 귀, 한마디로 소음공해 속에서 오감은 피곤하다. 이와 같은 생활패턴에서 서정적인 정서나 낭만적인 꿈은 말 그대로 꿈에 불과한지 모른다. 이러한 도돌이표 같은 생활을 카뮈는 시지포스의 신화속 그 형벌을 통해 신랄하게 고발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일상성을 헤쳐 나가는 길은 없을까?

 

며칠 전, 경기도 연천지역 몇 군데를 답사하고 왔다. 옭아매는 현실의 밧줄을 풀어놓고 잠시 탈출한 것이다. 돌아오면 또다시 현실이라는 밧줄이 옭아매겠지만 늘 잃고 놓치는 것들을 향한 쉼 없는 탈출은 기존의 갈망이나 욕망하는 것들을 잠시 내려놓은 또 다른 새로움을 추구하며 희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잘난 척하고, 거만하고 건방질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여유와 행복을 느끼면서 안전하고 위협적이지 않다고 느끼는 것, 그러나 거대한 자연 앞에 자신이 노출되었을 때 비로소 난 아무것도, 티끌 같은 존재라는 것을 느낀다. 몇 겁의 세월 말없이 유유히 흐르는 저 큰 여울인 한탄강과, 거대한 용암의 분출로 생긴 주상절리, 엄청난 물보라를 일으키는 재인폭포 앞에서 새삼 느끼는 바가 있었다.

 

이러한 변화를 찾지 않고 현실에 안주하며 틀을 깨지도 벗어나지도 못할 때 타올라야 할 문학, 예술 분야의 불꽃은 서서히 사그라져질 수밖에 없다. 왜냐면, 창의력과 창조성이 생명인 예술 분야는 새롭고 두려움에 대한 모험에 몸을 던져야 하기 때문이다. 무한한 가능성과 미개척지의 여백을 찾아 자신만의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 마음껏 내 달려야 한다. 그래서 도형화된 상자를 찢고 나와야 한다.

 

임진강을 따라 잠시 걸을 때 분단이라는 철조망이 떠 올랐다. 저렇게 북녘의 물과 남녘의 물끼리 만나 몸을 섞어 통정하듯 흐르는 강물은 폭우 때문인지 포효하듯 거친 물살로 흐르고 있었다. 그 순간에도 강물은 남북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새들을 올려다보면서 한반도 근현대사의 아픈 상처를 안고 흐르는 것처럼 보였다.

 

이때 아폴리네르의 시구가 생각났다.

열어주시오. 열어주시오.

울면서 두드리는 이 을 열어주시오.

 

말없이, 세차게 흐르는 강물도 분단의 현실 앞에 문제점을 찾듯이, 나 또한, 무엇을, 어떤 것을, 어디서 찾고 있는지 모른 채 비절하게 하나의 비상구를 찾아 문을 두드리고 있는지도 모르는 것이다. 톨스토이는 예술이란 체험된 여러 감정의 전달이라고 했다. 그렇다. 한탄강을 바라보며 실향민의 아픈 사연들을 되새김질을 할 수 있었고, 분단의 상처와 통일에 대한 염원을 몸소 체험할 수 있었다.

 

이처럼 직간접적인 체험에서 창조된 예술 작품은 독자들에게 좀 더 감동을 줄 것이고 영감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또한, 예술 작품을 수용할 때, 예를 들어 책을 읽는 행위는 그 책 속에서 자신이 경험하지 못했던 것들을 간접적으로 따라 해보는 추체험을 거치는 것이다. 비단 독서뿐만 아니라 어느 나라, 어느 지역에서나 볼 수 있는 많은 문인의 초상이나, 예술가들의 동상 등을 보면서도 추체험의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장 콕토는 빈에서는 우리들이 호흡하는 공기도 음악적이다라고 했고, “침묵까지도 음악적이다라고 했다. 며칠 전 광화문과 서울 시청 앞 광장엘 갔다. 거기엔 세종대왕이순신 장군의 동상이 있다. 그러나 이곳에서 호흡하는 것은 문학도 음악도 그 어느 예술적인 감흥도 없이 오직 확성기와 시위대의 외침만 아니, 소음만 있을 뿐이었다. 잠시 생각에 잠겼다. ‘왜 우린 독자적인 우리만의 예술문화의 영역을 갖지 못한 것일까. 그것도 서울 도심의 가장 번화한 거리에서 말이다. 영국에서는 인도를 내줄지언정 셰익스피어는 잃지 않겠다고 했고, 독일에서는 괴테나 쉴러의 동상이 신격화되고 프랑스 파리의 중심은 루브르 박물관과 곳곳에 문화의 소상塑像들이 버티고 서 있다고 한다.

 

우린 애국자나 영웅들의 내용이 교과서를 채우고 정신을 지배하고 있다. 전국 어디서든 문화 예술 거리가 조성되어 있다고 들었다. 그러나 시민들의 들숨과 날숨에서 한 편의 시와 한 소절의 음악으로 숨 쉴 수 있는 진정한 거리인지는 좁은 시야와 안목의 필자는 잘 알 수 없다. 가끔은 향가와 속요와 시조, 더 나아가 황진이나 이매창의 시 한 수 읊조릴 수 있는 그러한 광장이나 거리를 걷고 싶다. 악다구니의 소음이 아닌 풀피리의 여운으로 다가오는 거리나 광장 말이다.

 

예술은 인간에게 한 차원 높은 세계를 갈망케 하고 그 갈망을 싣고 가는 꿈의 수레이다. 그 수레바퀴 소리를 희미하게나마 듣고 볼 수 있는 곳이 많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메말라가는 마음 밭에 한줄기 빗물 같은 문학 작품이 쏟아져 내리고 텅 빈 가슴의 논을 적시는 도랑물의 음악이 흘렀으면 좋겠다

------------------------------------------

홍영수

시인. 문학평론가

제7회 보령해변시인학교 금상 수상

제7회 매일신문 시니어 문학상 수상

제3회 코스미안상 대상(칼럼)

제1회 황토현 문학상 수상

제5회 순암 안정복 문학상 수상

제6회 아산문학상 금상 수상

제6회 최충 문학상 수상

시집 『흔적의 꽃』, 시산맥사, 2017.

이메일 jisrak@hanmail.net

경기도 연천 '재인폭포' 사진/홍영수 2023/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