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영수의 인문학 칼럼

내 귀는 밭의 귀 자연의 소리를 듣는다.

홍영수 시인(jisrak) 2023. 8. 28. 20:43

자연은 참 오묘함과 심오함으로 다가올 때가 있다. 특히, 무심코 눈동자에 맺히거나 문득 고개 들었을 때 우연히 다가오는 풍경이 그러하다. 휴가를 맞아 땅끝 고향에 갔다. 낫과 삽을 가지고 밭에 나가 참깨도 수확하고 잡풀을 베는데 햇볕이 너무 따가웠다. 잠시 그늘에 쉬는데, 여러 마리의 곤충이 팔다리를 오르내리며 울기도 하고 뒤편 숲에서는 온갖 새들의 노랫소리가 들렸다. 대자연의 가장 원초적인 음악으로 들려오고, 상상의 생각들이 뭉텡이로 다가오니 달콤하고 풍부한 휴식일 뿐이다.

 

너무 더운 날씨에 또, 다시 삽질, 낫질을 멈추고 밭두렁 나무 그늘에 앉았는데 힘찬 날갯짓의 노랑나비 한 쌍이 눈에 들어왔다. 나비 때문이었을까? 장자의 호접몽胡蝶夢이 아닌, 예전에 봤던 <엘비라 마디간>이라는 영화가 뇌리를 스쳤다. 그리고 영화를 더욱 도드라지고 생생한 모습으로 이끌어줬던 바로 그 음악,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21C장조가 동시에 떠 올랐다.

 

영화 내용은 이렇다. 귀족 출신의 장교와 곡예단원이면서 줄타기했던 여인, 그들에겐 당대 사회가 용서하지 않았고, 불륜에 대한 싸늘한 시선 때문에 마침내 죽음에 내몰리게 된다. 그렇지만, 사랑의 위대함으로 그들은 죽는 순간까지 걸림돌을 걷어차고 절박한 상황도 잊은 채 오직 둘만의 사랑을 불태운다. 때론, 나비를 뒤쫓고 강가에서 고기를 잡아 주린 배를 채우고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연인들의 러브스토리를 읽어 나가듯 잔잔히 흐르는 파토스가 영화를 보는 내내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결국 죽음을 선택한 남자 주인공 섹스틴은 사랑한 연인 마디간을 힘껏 껴안고 그녀의 관자놀이에 방아쇠를 당기려 한다. 그러나 차마 쏠 수 없어 총을 내려놓는다. 죽음도, 차가운 시선도, 신분의 차별도, 굶주림도 잊은 채 야생화가 만발한 들녘을 뛰어다니다 나비를 잡는다. 그리고 다시 놓아준다. 이 장면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천사같이 티 없고 해맑은 미소의 아름다움, 그 순간 두 발의 총성이 울리지만, 그녀는 결코, 쓰러지지 않는다. 이때 엔드 마크가 나올 때까지 합창단의 노래가 흐르는데 여전히 그녀는 웃고 있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하루하루 다양한 일들을 겪고 부딪히면서 살아간다. 20세기 신학자 칼 바르트도 그 중 한 사람인데 그가 살아생전에 했던 말이 저승에 가면 여호와를 찾기 전에 모차르트를 찾겠다.” 했다. 어쩜 모차르트의 음악을 들으면서 엑스터시를 느꼈을 것이다. 사실 고대의 소크라테스나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등은 음악을 최고의 예술이라 했고, 시인 호머도 현악기인 리라를 잘 연주했고 동양의 공자 또한 현악기인 을 잘 켰다고 한다.

 

동살 잡히는 새벽빛이 산마루로 솟아오를 때, 한낮 장독대의 곰삭은 된장이 오수에 잠길 때, 서녘의 노을빛이 사립문을 슬몃 열어젖힐 즈음 설렘 가득 안고 가슴에 스며드는 한 다발의 음악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눈 뜨면 티브이를 켜는 것보다 때론, 상큼한 음악 한 잔 마시면서 하루를 시작하는 것도 좋지 않은가. 그 어떤 음악 장르를 초월해서 말이다. 밖에서 들려오는 음악의 소리보다 마음에서 샘솟는 소리일 때 더 음악답다고 할 때 맘속에 흐르는 소리의 샘이 말라버린다면 어떨까? 밖에서 들려오는 좋은 음악인들 귀에 들리겠는가. 마르지 않는 소리의 샘을 간직해야 할 이유다.

 

인상파 작곡가이면서 문학, 예술에 조예가 깊은 드뷔시는 바다를 매우 좋아했다고 한다. 그는 파도 소리를 그냥 듣는 게 아니라 소라껍데기를 귀에 대고 들었다고 한다. 그때 들리는 파도 소리는 분명 다르게 들렸을 것이다. 장 콕토의 유명한 시 내 귀는 소라 껍질, 바다의 소리를 그리워하네도 혹시 드뷔시에서 영감을 얻지는 않았을까? 그렇다면 여름의 한낮에 밭 귀퉁이 나무 그늘에 앉아 참깨 터지는 소리, 들깻잎 따는 소리, 호박 뒹구는 소리, 고추 낯빛 붉어지는 소리 등에 귀 기울이는 필자는 내 귀는 밭의 귀 자연의 소리를 듣는다.’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논틀밭틀을 오가는 농부의 발자국 수만큼 농익은 속살을 보여주는 곡식들, 그러한 농부를 위해 결코, 배신하지 않고 순결의식을 치르기 위해 쉼 없이 익어가는 알곡, 그들 의식에 어울리는 음악 한 곡 헌정해야 하지 않겠는가. 밭두렁에 잠시 앉아 쉬면서 훨훨 나는 한 쌍의 나비를 보았던, 그날 밤, 와당의 미소마저 잠들고 적막이 적막을 베고 누운 한밤중, 어두운 시골 밤의 신성함을 결코, 모독하지 않으면서 오래전 시골 작은방에 가져다 놓은 잘 갖춰진 음향기기에 모차르트의 CD를 걸었다. 턴테이블 고장으로 LP로 들을 수 없어 아쉬웠지만.

 

모든 음악가가 교회나 군주 등에 종속되어 작업하고 생계를 이어갈 때 모차르트는 그러한 굴레를 벗어나 자유로운 삶을 영위하려고 노력했던 음악가였다. 세속적인 행복보다는 예술적인 삶을 위해서는 비록 불행과 맞닥뜨리더라도 예술적 만족감에 행복해하는 것이 진정한 예술가의 참다운 행복이라는 걸 알았을 것이다.

 

덧붙이며, 필자는 음악을 좋아할 뿐 그 어떤 분야의 추종자는 아니다. 특히 클래식 음악을 중앙역이고 종갓집인 것처럼 여기면서 타 장르를 간이역이고 작은집으로 취급하는, 수입품을 들여와 국내산 제품과 구별 짓기를 하는 음악의 맹신도들, 그러면서도 소위안다 박수를 치는 그러한 에피고넨이 되지 않으려고 할 뿐이다. 음악 위에 음악 없고 음악 아래 음악 없다. 음악은 음악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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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영수

시인. 문학평론가

7회 보령해변시인학교 금상 수상

7회 매일신문 시니어 문학상 수상

3회 코스미안상 대상(칼럼)

1회 황토현 문학상 수상

5회 순암 안정복 문학상 수상

6회 아산문학상 금상 수상

6회 최충 문학상 수상

시집 흔적의 꽃, 시산맥사, 2017.

이메일 jisrak@hanmail.net

 

https://www.youtube.com/watch?v=o1j5A-slXO8 

2023/08/16,

https://www.cosmiannews.com/news/235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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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은 참 오묘함과 심오함으로 다가올 때가 있다. 특히, 무심코 눈동자에 맺히거나 문득 고개 들었을 때 우연히 다가오는 풍경이 그러하다. 휴가를 맞아 땅끝 고향에 갔다. 낫과 삽을 가지고 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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