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인문학 칼럼

생각을 울리자, 한울림의 종소리처럼

홍영수 시인(jisrak) 2023. 9. 2.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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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 자그마한 시골 동네에서 자랐다. 그리고 초, 중학교 때까지 면 소재지와 읍내로 통학했었다. 그 시절, 지금까지 유난히 기억에 남아 언뜻언뜻 떠올려지는 것이 있다. 12시 되면 높은 뒷산 너머의 읍내에서 통행금지의 사이렌 소리가 고적한 산골 동네까지 들려왔다. 그리고 새벽이면 닭의 홰치는 소리와 함께 어김없이 동네 앞 커다란 저수지 건너편에서 산사의 종소리와 교회당 종소리가 들려왔다.

 

우선 사이렌 소리는 누군가 한 잔 술에 취해 마구 큰소리로 고함지르듯 하고, 그래서인지 정감도 없을뿐더러 신화 속 매혹적인 목소리와는 전혀 다른 냉정함의 기호로 들렸다. 그것은 과학 문명을 이용한, 더구나 통행금지라는 동동걸음으로 다가오는 하나의 신호에 불과했을 뿐이었다.

 

교회당 종소리는 초등학교 때 익숙하게 들었던 시작종과 끝 종을 알리는 신호로 들려왔다. 그래서인지 구속하는 듯한, 그래서 엄격한 자세와 마음가짐을 다잡는 듯한 자국걸음의 상징으로 다가왔던 것 같았다.

 

그리고 건너편 산사에서 들려오는 종소리는 아주 느린 걸음걸이로 서서히 다가오는 듯, 그때의 느낌은 엄숙함과 경건함의 메타포이고 묵직하면서도 은은한 색깔의 소리로 다가오는 공감각의 체험이며, 느림과 여림 사이의 돋을새김이었다. 그리고 다가온 소리의 파문은 명매기걸음의 형상이었다.

 

산사의 새벽 종소리는 끊길 듯 이어지고 또 이어지면서 사리 판단이 미숙하고 엷디엷은 생각의 내면에 소위 맥놀이 현상이라고 하는 울림으로 다가왔다. 조용한 호수 위에 돌멩이 하나 던지면 커다란 파문이 일 듯, 그저 아무 생각 없이 멍때리고 있는 생각의 저수지에 동심원의 파문을 일으키며 생각의 종소리가 울리는 것이다. 세속이 시시했고 어쩌지 못하는 세상의 모순과 부조리, 허무와 패배 의식에 사로잡혀 있을 때 어둑새벽, 산사의 종소리는 누군가에게 생각의 종소리가 되어 울린다.

 

교회당의 종소리든 사찰의 종소리든 심신을 단련하고 수행하는 곳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왜일까? 그것은 수행하는 자의 내면의 소리를 종소리로 승화시키기 위한 것은 아닐까. 종 자체는 말이 없지만, 그 안에는 수많은 소리를 가지고 있다. 그 소리에 의해 좀 더 진폭이 큰 생각으로 울리지 않을까 한다. 이렇듯 산사의 종소리가 멀리 퍼져 아둔한 뭇 중생들을 제도하듯, 타성과 관습과 익숙함에 젖은 생각이 울림의 종소리가 되면 좀 더 확장된 생각의 탄생이 되지 않을까.

 

지금은 디지털 시대이다. 나날이, 순간순간 변화하고 바뀌어 가는 세상에 속세의 범부로 살아가는 가슴 속에 범종루를 세워 일승(一乘)의 원음(圓音)으로 울림을 주는 생각의 종을 때리고 싶다. 그리고 그 한울림의 종소리를 안아보고 싶다.

 

종은 흔들거나 때리면 울린다. 사찰의 범종은 당좌(撞座)에 당목(撞木)으로 칠 때 울린다. 그 울림은 때리는 자의 힘만큼 울린다. 얼마나 더 때려야 못난 중생의 생각에 커다란 울림의 파문을 일으킬까. 파문을 일으키는 물결이 하나의 동그란 원에서부터 시작하듯, 수없이 많은 천체가 하나의 천공을 이루고 있듯이, 내 생각의 파문도 은은한 맥놀이의 동심원에서부터 울려왔으면 한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는 헤밍웨이의 소설 제목이다. 그렇지만 이 제목은 인간은 외딴 섬이 아니다를 썼던 존 던의 누굴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묻지 마라의 유명한 설교문에서 가져온 것이다. 그의 명 설교문의 의미를 떠나 어느 누군가가 내 생각의 종을 안에서 흔들어 주거나 밖에서 때려준다면 고이 잠들어 침묵하고 있는 생각이 종소리처럼 울려 퍼질 것이다. 그것은생각의 종소리는 나를 위해 울리고 있다.”는 것이다.

 

기하급수적으로 팽창해 가는 정보와 다양한 분야의 지식이 급변한 가운데 넋을 놓고 있는 생각에 뺨을 때리자. 그래서 벌떡 깨어나 눈 뜬 생각의 종소리가 울림으로 퍼져서 몸과 마음에 스며들게 하자.

 

얼마나 커다란 아픔으로 종이 울어야 내 안의 생각에 울림을 줄 수 있을까. 파문을 일으키는 물결이 하나의 동그란 원에서부터 시작하듯, 수없이 많은 천체가 하나의 천공을 이루고 있듯이, 내 생각의 파문도 은은한 맥놀이의 동심원으로부터 울리게 하자. 생각을 종소리처럼 울리게 하자

 

산사의 종소리

 

하루가 일어나기 전

제 몸 풀어 들려주는 둥근 소리는

진리의 세상을 품고

온누리에 퍼지며

만산 가득

정적을 풀어헤치면서

동심원의 파문을 긋는다.

 

속세 앞에 벗어 던진

티 없는 소리 공양

귀로 들으면 들리지 않고

마음으로 들어야 들리는

저 울림의 소리

그 울림의 숲에서

온몸 비우는 법을 배우며

진리 한 자락 휘감고 싶다.

 

치는 자의 마음만큼 울리는

경계 너머에 있는 소리의 은유

얼마만큼 더 쳐야

내 안에 한울림 되어 울릴까.

 

졸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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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량산 청량사', 사진/홍영수, 2009,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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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cosmiannews.com/news/151659

 

[홍영수 칼럼] 생각을 울리자, 한울림의 종소리처럼 - 코스미안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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