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소리에도 정각이 있습니다
정오의 햇살은 물 도리에서 가끔
물의 보폭을 맞추느라 연착할 때 있습니다
온갖 지류에서 탑승한 물 색깔들은
쉼 없이 덜컹거립니다
덜컹거린다는 것,
그건 물이 달린다는 뜻입니다
속도를 조절하는 물의 바퀴가 있다는 뜻입니다
샛강 속도로 달리는
이 완행, 그래서 늘 적자랍니다
때론 어느 집 마당 옆을 민망하게 지나치기도 하고
군불을 때는 저녁연기나
애호박 달린 호박 줄기와 잠깐
그 속도를 다투기도 하지만
완행은 저의 소리를 세면서 달립니다
한때는 나름 근사치의 시계 역할을 하기도 했었습니다
완행이 지나가면 마을은 아침상을 차리기도 하고
저녁상을 물리기도 했었습니다
학교 종소리보다 먼저 아이들을
운동장으로 부르곤 했었습니다
용궁역 지나 큰 바위에 직선을 양보하고
옥산역 비탈진 경사면에 주춤거리다 보면
완행은 물소리 가변을 얻어 달리는 것입니다
영주 소백산에서 김천 황악산 사이,
더디고 질기게 무궁화꽃이 피었다 집니다
물이 흐르다 착해지면
둥글게 소를 이루어 논밭을 거느리듯
완행도 달리다 잠깐 멈추는 곳이
바로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입니다
저녁 무렵의 노을빛을 가득 담고
두근거리는 붉은 차창들,
텅 빈 만석으로 흑자를 찍는 순간입니다
힘겹게 산을 오르고 또 넘고
철교를 타고 물을 건너는 완행,
무궁화꽃 벙그는 속도로
가만히 들어보면 물소리에도 한때는
삐딱하게 베레모를 쓰고 푸른 물빛 단복을 입은
차장이 있었다고 합니다
어등역이나 고평역을 지날 때는
습관적으로 속도를 줄입니다
내성천에서 잔업을 마친 바람의 뭉치들이
물때를 놓치지 않고 슬쩍, 무임 승차합니다
잠시 덜컹, 저녁의 짐들이 밥 냄새 그리운
집 쪽으로 우르르 쏠립니다
물소리 배차 시간표엔
잠깐의 연착이 표시됩니다
*제1회_경상북도_문예현상공모전 최우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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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주현 시인, 시낭송가
2019 시마을 토마토 전국시낭송페스티벌 대상
2020 <시인시대>신인상 등단
2020 한국시인협회 재능 시낭송가
2020 심연수전국시낭송대회 대상
2021 신석정선양시낭송대회 퍼포먼스부분 대상
2021 상화문학제 전국시낭송대회 상화대상
2022 조명희전국시낭송대회 대상
2022 보령전국자작시낭송대회 대상
2023 제1회 홍사용전국시낭송대회 대상
2023 제1회 경북문예공모전 최우수상
2023 제5회 예천내성천문예공모전 대상
'예천 회룡포 뿅뿅다리' 사진/홍영수 2022/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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