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뭄이 길었던 해 아버지 가슴도 논바닥처럼 타고 있었다 비단실 같은 빗줄기 촉촉하니 쟁기를 지고 멍에 메워 큰 소를 앞세우고 논으로 가신다 쉬는 시간이 되면 농주 한 사발 소에게 먼저 권하며 힘들지 해 그림자에 비치는 논고랑은 예서체를 펼쳐놓은 것 같다 모를 심는 것은 내 몫이 아닌 것을 눈물이라도 찔끔 고이면 행서체로 내가 써레질해야지. 시집 『내 책상에는 옹이가 많다』, 산과들, 2018. 한 가뭄에 타는 논바닥, 갈라 터지고 흙먼지 일으키는 논밭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가슴은 타는 것이 아니라 가족이 무너지는 것이다. 엷은 홑바지를 입은 아버지와 헐렁한 몸빼를 입은 어머니가 일구는 농사철, 알바도, 시간제 근무도 없었던 시절엔 곡식 한 알, 채소 한 포기는 소중한 삶의 한 부분이었다. 예전에 산골 다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