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양을 막론하고 문학과 예술은 그 분야의 고유한 언어와 다양한 표현 수단을 통해 독자적으로 존재한다. 그러면서도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상호관계 속에 넓이와 깊이의 가능성을 확대 및 재생산해 왔다. 최근엔 학문과 예술간 경계를 융복합하고 해체하는 일이 하나의 현상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사실 상호 관계망을 확대하고 시각을 넓혀가야 하는 것은, 어찌 보면 시대적 과제이고 요청인지도 모른다.
문학과 음악, 디오니소스 축제에서 보듯이 오랜 역사 역사만큼이나 전통적으로 계승 발전해 왔다. 문학의 상상력은 작곡가에게 무한한 영감을 준다. 베토벤 교향곡 9번에 ‘쉴러의 시 ‘환희에 붙여’를 삽입했고, 빌 헬름 뮐러의 ‘겨울 나그네’ 시를 슈베르트가 노래하듯이. 좀 다른 방향이지만, 백제 시대 가요인 ‘정읍사’와 체코 출신 드보르자크의 오페라 ‘루살카’를 통해 동서양의 두 작품에서 노래하는 ‘달’의 의미와 상징성에 대해서 알아보자.
ᄃᆞᆯ하 노피곰 도ᄃᆞ샤/어긔야 머리곰 비취오시라
어긔야 어강됴리/아으 다롱디리
져재 녀러신고요/어긔야 즌 ᄃᆡᄅᆞᆯ 드ᄃᆡ욜셰라/어긔야 어강됴리
어느ᅌᅵ다노코시라/어긔야 내 가논 ᄃᆡ 졈그ᄅᆞᆯ셰라
어긔야 어강됴리/아으 다롱디리 _<井邑詞> 전문
정읍사는 현전하는 백제 유일의 가요이다. 남편의 음행에 대한 걱정과 의심의 노래로 보는 견해와 행상 나간 남편에 대한 간절한 기다림의 지고지순한 아내의 노래로 보는 견해로 나뉜다. 이처럼 아내의 질투와 분노, 음란지사(淫亂之事)로 보지만, 한편으로 행상 나가서 오지 않은 남편의 안위를 바라는 아내의 수동적 여성상으로 보기도 한다.
또한, 정읍사는 우리글로 표기된 유일한 백제의 현전 노래이다. 집단 가무의 성격 짙은 시대에 이토록 개성적인 작품은 문학사적으로 의미가 있다. 구전이나 원형으로 전해진 작품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고려와 조선조에 궁중음악으로 전승되어 현재까지 이르렀고, 지금의‘수제천’은 ‘정읍사’의 또 다른 이름이다.
당신은 이 넓은 세상 비추면서/사람들의 삶을 내려다보죠.
달님이시여, 잠시만 멈추시어/사랑하는 내 님이 어디 있는지
말해주소서. _오페라 ‘루살카’중 <달에 부치는 노래> 일부
이 작품은 체코 작곡가인 안토닌 드보르자크(Antonin Dvorak)가 슬라브 신화에 나오는 오래된 전설 <운디네 (물의 요정, Unadine)>에,Unadine)> 기초한 내용인데 푸케의 동화와 안데르센의 동화 ‘인어공주(The Little Mermaid)’를 대본 삼아 달을 노래했다.
오페라 루살카는 인간인 왕자와 사랑에 빠진 호수와 물의 요정 루살카 이야기다. 그는 왕자와 결혼하기 위해 영혼을 얻은 인간이 되지만 말을 못 하게 된다. 그렇지만 왕자는 다른 나라의 공주와 사랑을 하게 된다. 그로 인해 루살카는 호숫가에서 떠돌며 살아가는데 그의 진실한 사랑을 알게 된 왕자는 다시 루살카를 찾아와 용서를 구하고 루살카의 저주받은 영혼을 구하며 자신의 생을 마감한다. 그리고 루살카 또한 자신의 운명을 저주하며 왕자와 함께 호수의 심연으로 사라진다.
이 오페라에서 가장 유명한 요정 루살카가 달님에게 인간의 인연을 만나게 해 달라고 간청하는 아름다운 아리아라면, 정읍사는 행상 나간 장돌림의 남편에 대한 무사귀환과 또는 저잣거리의 여성들과 음행하지 않을까, 하는 노파심 등으로 달님께 기원하며 부른 노래이다.
어느 시대와 지역을 막론하고 ‘달’을 소재로 한 문학과 예술작품은 매우 많다. 이는 어둠을 밝혀주는 달의 상징성과 작가의 상상력을 자극하게 하는, 그래서 인간이 갈 수 없는 곳이기에(지금은 아니지만) 동서양을 떠나 많은 주제로 삼고 있다.
궁중음악의 대표 격인 "빗가락정읍(橫指井邑)"이라고도 하는 수제천은 아름다움이 뛰어나서 선비들의 수양을 위한 아악곡의 백미로 일컬어진다. 대금, 아쟁, 해금, 피리 같은 악기로 약 15분 정도 연주하는데 악기의 선율에서 신비함을 자아낸다. 이러한 정읍사가 전래되면서 고려와 조선의 궁중음악으로 사용했다는 것과 체코의 전통 설화를 차용해 오페라 루살카를 만들었다는 점, 그리고 주제가 ‘달’에 대한 기원과 소망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동서양에서 ‘달’에 대한 관점이 일맥상통함을 알 수 있다.
‘달’이라는 주제는 상징성과 더불어 모든 예술 분야에서 많이 다뤄졌다. 클로드 드뷔시의 피아노곡 ‘달빛’이 대표적이다. 드뷔시는 ‘인상주의’라는 스타일의 음악을 처음 만들었고, 폴 베를렌의 시에 가브리엘 포레가 붙인 가곡 ‘달빛(Clair de lune)’도 유명하다. 또한, 인상파 미술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주제로 다룬다.
인간인 왕자와 사랑을 맺게 해 달라며 달님에게 기원하고 소망하는 오페라 루살카, 가슴에 파고드는 서정적인 선율이 강렬하게 다가오는 곡‘달에 부치는 노래’와 백제의 혼으로 천년 세월을 달려온 궁중음악의 절정인 수제천,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으면서 선에서 선으로 이어지는 음악, 서양에서도 ‘하늘의 음악이 지구에 남은 유일한 곡’이라고 극찬했다는 우리 고유의 문화유산인 ‘수제천’과 ‘루살카’를 2023년 계묘년(癸卯年), 토끼 해에 정월 보름달을 눈으로 들어보고 귀로 바라보면서 하고자 하는 일 소원을 빌어보면 어떨까.
홍영수
시인. 문학평론가
제7회 보령해변시인학교 금상 수상
제7회 매일신문 시니어 문학상 수상
제3회 코스미안상 대상(칼럼)
제1회 황토현 문학상 수상
제5회 순암 안정복 문학상 수상
제6회 아산문학상 금상 수상
시집 『흔적의 꽃』, 시산맥사, 2017.
이메일 jisrak@hanmail.net
[홍영수 칼럼] 문학과 음악에서의 달, 정읍사井邑詞와 루살카Rusalka - 코스미안뉴스
동서양을 막론하고 문학과 예술은 그 분야의 고유한 언어와 다양한 표현 수단을 통해 독자적으로 존재한다. 그러면서도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상호관계 속에 넓이와 깊이의 가능성을 확대 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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