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본래 호모 에스테티쿠스 즉, ‘예술적 인간((homo estheticus)이면서, ‘종교적 인간((homo religiosus)’이다. 그래서일까 예술과 종교는 긴밀히 교차하고 융합하면서 긴 예술 역사의 흐름을 형성해 왔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인간은 삶의 길을 걷는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신과 우주적, 영적인 그 무엇과 교신하고 공유하기도 한다. 동물의 갇힌 세계와는 달리 열린 세계에 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편으로 동서양을 막론하고 예술의 원천은 종교적 경험과 깊은 관련이 있다. 종교의례 중에 춤과 노래, 그림 등, 그리고 주술적인 것들에 대한 이미지에 대응하는 한 방식으로 잉태된 것이 예술이기도 하다. 헤겔은 《정신현상학》에서 예술과 종교의 양태상의 차이를 밝힘과 동시에 “예술적 의식과 종교적 의식은 처음부터 불가분의 관계 속에서 발전해 왔다”고 강조했다.
이를테면 미켈란젤로의 스시틴 성당의 벽화와 또는 고대 마야문명의 미술, 그리고 우리의 석굴암도 예술적인 측면이 아닌 신앙의 목적을 위한 작품들이다. 이러한 작품들을 신앙 목적과는 달리 예술적 심미안을 가지고 보기 위해서는 신앙에 대한 이해 없이는 가치를 제대로 볼 수 없다.
자연경관을 지닌 비산비야의 내포 지방에‘서산 마애삼존불’이 있다. 높은 산도 매우 드넓은 평야도 있는 듯 없는 듯, 그래서일까 서산지방을 가게 되면 알 수 없는 포근함과 아늑함, 그리고 편함을 느낀다. 이곳 탯자리에 사는 사람의 미소 또한 바로 ‘백제의 미소’로 불리는 ‘마애삼존불의 미소’와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바위에 새겨진 이 돌부처의 높이는 2.8m이고 여래입상이 중앙에 위치하고 좌우에는 반가사유상과 보살입상이 조각되어 있다(좌우 협시보살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있는 것 같다).
‘자연의 미’는 바로 ‘한국의 미’이다. 예술 활동의 배경은 그 지역의 자연과 그 품에서 살아가는 예술적 삶의 혼의 영역이라 할 수 있다. 한국의 자연은 그랜드 캐년이나 사하라 사막이 아닌 자기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겸손과 느끼지도 않고 인식하지도 않은 무각무인(無覺無認)의 자연이다. 돌부처가 위치한 지역이 그렇다.
사실 반가사유상의 미소는 기원전 2세기경 알렉산더 대왕이 간다라 정벌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반가사유상과 더불어 석굴암의 본존불, 그리고 서산 마애삼불의 미소는 이 아르카익(archaic smile) 시대 조각상들의 미소와 닮아있다. 웃을 듯 말 듯한 미소는 아마도 불상의 한반도 전래가 실크로드를 따라 전파되었던 불교의 영향을 크게 받지 않았나 싶다.
아르카익 시대에 제작된 젊은 남자 누드 입상인 코우로스(Kouros)와 옷 입은 여자입상인 코레(kore)라고 부르는 조각이 탄생한다. 이 조각상의 미소를 아르카익 스마일(archaic smile)이라고 부른다. archaic 의 의미는 ‘구식, 고풍’이라는 뜻으로 ‘古拙의 美’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소박하면서 예스럽고, 기교를 부리지 않고 좀 어눌한 듯하면서도 매력이 있는 미소, 바로 마애 삼존불의 ‘백제의 미소’가 그러하다.
이러한 불상은 사실 미술품이나 예술작품으로 제작되거나 조각된 것은 물론 아니다. 그것은 불교에서의 예배 대상으로 만들어진 불교 이념의 조형물이다. 그래서 불상을 이해하려면 불교적 시선과 관심으로 봐야 한다. 백제에 불교가 처음 들어온 것은 침류왕(384년), 4세기 말 무렵이다. 인도에서 중국의 한나라로 들어와 삼백 년쯤 지난 뒤 백제로 전해졌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백제의 미소’로 불리는 ‘서산 마애삼존불’은 약 1,500여 년 전의 작품이 된 것이다.
바위에 새겨진 석불이 어떤 석불인지 손은 어떤 手印을 하고 있는지 등에 관심 두기보다는 이곳 삼존불이 햇빛에 따라 달리 보이는 미소에 시선을 돌려보자. 그것은 아르카익 미소와의 유사점을 떠나 보는 방향과 위치, 시선의 각도와 한편으로는 보는 이의 생각과 마음에 따라 다르게 미소를 짓고 있기 때문이다.
거친 난바다의 파도를 헤치며 살아가는 지금의 우리는 어찌 보면 정신적 실향자(失鄕者)요 파산자(破産者)가 되어 가고 있다. 그래서 어디론가 떠나든 돌아가든지 해야 한다. 세속적인 사고방식과 감정의 양식이 아닌, 가끔은 종교적 사고와 감정, 신앙적 토대 위에서 예술작품을 세우고 바라보아야 할 때가 있음을 이곳 ‘서산 마애삼존불’의 미소를 보며 느끼게 된다.
내 서재에는 수십 년 전에 인사동 골목에서 구입했던 ‘얼굴무늬 수막새’가 있다. 절반은 떠나보내고 남은 절반의 미소는 여전히 나에게 질문을 던진다. 학문적 접근이 아닌 아주 근원적 물음으로 미소지으며 다가올 때가 있다.
‘서산 마애삼존불’에서 보듯 살짝 치켜올린 입꼬리에 핀 희미한 미소 한 다발, 조각된 얼굴보다 훨씬 더 자연스러운 표정의 향기 한 송이의‘백제의 미소’를 떠 올려 본다. 그리고 우리는 매일 입꼬리가 올라가는 ‘미소’를 짓고 살아가야 한다. 속이고, 가짜 웃음인 ‘팬암의 미소’가 아닌, 진실함에서 우러나온 ‘뒤센의 미소’나 ‘백제의 미소’ 말이다.
홍영수
시인. 문학평론가
제7회 보령해변시인학교 금상 수상
제7회 매일신문 시니어 문학상 수상
제3회 코스미안상 대상
제1회 황토현 문학상 수상
제5회 순암 안정복 문학상 수상
제6회 아산문학상 금상 수상
시집 『흔적의 꽃』, 시산맥사, 2017.
이메일 jisrak@hanmail.net
서산 마애삼존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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