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인문학 칼럼

드뷔시 ‘달빛’, 그림이 들리고 음악이 보이는

홍영수 시인(jisrak) 2023. 9. 11.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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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천의 8, 카뮈의 이방인의 주인공, 감정 변화가 심한 뫼르소가 아니어도 뜨거운 햇볕에서는 이유 없이 격한 감정이 생긴다. 그러나 자연의 섭리는 거스를 수 없는가 보다. 9월이 왔다. 조석으로는 다소 시원한 느낌이다. 오곡백과가 무르익는 중추가절, 추석 하면 보름달이 떠오른다. 땡볕이 아닌 달빛은 박목월의 시처럼 구름과 달빛에 취해 걷는 강나루 길, 그 얼마나 정겨웁고 낭만적인가.

 

10여 년 전 늦가을, 경북 양동마을 초가집에서 하룻밤 묵었다. 바뀐 잠자리 때문에 잠을 못 자고 뒤척거리는데, 어느새 달빛이 슬그머니 창호 문 틈새를 비집고 윗목의 머리맡에 누워 있었다. 낭월朗月의 은빛 가루가 서걱서걱 부서져 내리니, 낯선 이방인인 여행객의 심사는 가히 천지 공간에서 외로움의 깊이를 잴 수 있었겠는가.

 

요즘은 도시, 농촌 할 것 없이 어둠의 밤을 상실했다. 휘황찬란한 네온사인 빛으로 도시의 밤은 숨을 헐떡거리고 시골에서도 가로등 때문에 밤다운 밤을 밤에는 볼 수 없다. 이제는 밤하늘의 그 많은 별빛마저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옛적의 관솔불, 호롱불, 성냥불 등의 빛이 사라지고 어둠의 수틀에 빛으로 수놓았던 반딧불도 보기 힘들다. 그 자리에 전깃불, 폭죽의 불꽃 등이 수를 놓는다. 그런데도 다행인 것은 여전히 달빛은 우리를 비추고 있다는 것이다.

 

며칠 전 슈퍼 블루문이 밤하늘에 떠서 어둠을 밝혔다. 음악에서의 달빛하면 같으면서도 다른 베토벤의 月光(달빛) 소나타와 드뷔시의 달빛이 있다. 특히 드뷔시의 달빛은 인상주의 음악가답게 피아노 선율에 몽환적인 음색이 잔잔한 시냇물 흐르듯 하다. 인상주의 화가나 음악가들의 작품들은 보편적으로 모호하다. 뚜렷하고 정확한 것이 아닌 그 어떤 것을 떠올리게 하는 매력이 있는 것 같다.

 

뒤뷔시달빛은 원래 감성적인 프롬나드라는 제목이 붙어있었는데 느리게 표현적으로라는 지시어가 붙어있는, 피아니시모로 반복되는 화음인달빛은 제목 자체에서 알 수 있듯이 정적인 달빛을 암시하며 또한, 그윽하고 은은한 달빛의 색채를 아르페지오로 이어간다. ‘달빛은 폴 베를렌의 시집 우아한 향연의 한 구절을 차용한 것이다.

 

이러한 인상주의 음악과 미술의 특징은 순간 체험의 예술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무엇을 말하는 게 아니라, 느낌과 분위기를 보여줄 뿐이다. 마네와 모네 등은 비좁고 막힌 아틀리에를 뛰쳐나와 자연적인 빛의 움직임에 시시각각 변화하는 사물들을 그렸다. 그들은 빛에 관심을 두고 집착한 빛의 연금술사들이었다. 몇 해 전 국립박물관에 인상주의 화가 모네전시회를 갔었다. 그의 인상, 해돋이루앙 대성당연작 등 모든 작품이 무슨 형체인지 알 수 없지만 멀리서 보면 신비롭고 아름다운 순간의 모습들이 꿈속에서 보는듯 했다.

 

최초의 인상주의 음악가 드뷔시의 음악, 특히 달빛을 들으면 허공에 둥둥 떠다니는 듯, 가벼운 날갯짓을 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그것은 감각적이고 안정감을 주었던 기존의 익숙한 음악을 벗어났기 때문이다. 회화에서 시작된 인상주의처럼 음악도 순간적인 자연의 느낌을 음악으로 표현한다. 드뷔시의 음악이 바로 시각, 청각, 후각 등, 공감각적인 효과를 구현하고 추구하는 인상주의 음악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의 달빛은 피아노만으로 달빛이 흐르는 밤의 정경을 고혹적이고, 신비스러움이 어울린 시적인 음악으로 승화시킨다. 파울 클레가 달은 해가 꾸는 하나의 꿈이라고 했듯이, 몽환적인 달을 사랑했던 드뷔시에게 달은, ‘꿈속의 달, 달 속의 드뷔시가 아니었을까. 동양의 이백이 호수에 비친 달을 건지려다 물에 빠져 죽었다고 했듯이 말이다.

 

프랑스를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는 지적인 여성의 아름다움을 가꾸기 위해 시를 읊으면서 움직이는 몸동작을 훈련한다고 한다. ‘달빛’, 너무나 여성적이고 여성적인 그래서 저절로 여성스럽게 부드러워진 음악이다. 화장 따위가 무슨 필요 있겠는가. 이렇게 아름다움이 우러나는 달빛을 감상해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그래서 미국 네티즌이 뽑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음악’ 1위에 선정되었을 것이다.

 

오늘날은 각 분야에서 융합통섭이라는 말이 화두가 되고 있다. 이렇듯 통섭적 예술이란 다양한 갈래의 장르, 즉 문학, 음악, 미술, 영상 등이 어우러져 새로운 예술적 감각을 갖게 하는 것이다.

 

드뷔시는 많은 시인들과 화가들을 만나 문학과 예술을 토론하고 함께 고민했다. 예술의 생명인 창조란 작가의 고뇌와 노력도 중요하지만, 늘 새로운 감각을 위한 음의 조성이 필요했던 드뷔시에게는 이처럼 장르를 초월한 다양한 만남이 필요했을 것이다. 시는 문학적인 면과 음악적 요소가 존재하기에 음악가인 그에게는 시적인 영감이 필요했을 것이다. 피아노 시인이고 피아노 화가인 그는 수많은 여성 편력을 지녔다. 그의 사랑 속엔 악마가 존재하고 음악에는 천사가 존재했던 것일까?

 

곧 한가위가 다가온다. 풍성한 계절에 가족과 함께 모여 오순도순 얘기 꽃을 피우고 차례를 지내며 조상님들을 기억할 것이다. 정으로 오가는 대화 속에 한 알, 한 줌, 한 다발의 달빛이 함께 빛나고 달빛이 흐르는 한가위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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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영수

시인. 문학평론가

7회 보령해변시인학교 금상 수상

7회 매일신문 시니어 문학상 수상

3회 코스미안상 대상(칼럼)

1회 황토현 문학상 수상

5회 순암 안정복 문학상 수상

6회 아산문학상 금상 수상

6회 최충 문학상 수상

시집 흔적의 꽃, 시산맥사, 2017.

이메일 jisra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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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watch?v=97_VJve7UVc 

[조성진 Seong-Jin Cho] Debussy Claire de lune 드뷔시 달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