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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밭
아내는 묵정밭을 일구어 시심을 뿌려 놓았다.
햇볕 머금은 열매에서 시상을 따고
빗소리를 끌어안은 뿌리에서 주제를 캔다.
허술한 밭두둑의 행은 호미로 북돋우고
철 지나 시든 곁가지의 시구와
누렇게 된 잎의 시어는 잘라버리면서
불필요한 수식어는 꽃잎일지라도 따낸다.
벌레들이 잎사귀에 뚫어 놓은 자음의 구멍과
새들이 꽃다지에 쪼아놓은 모음의 흠집들은
떼 내고 다듬으면서 시 밭에 자란 문장을 다듬는다.
떨어뜨린 밭작물의 행간에서 의미를 다잡으며
참신한 시어와 새로운 시구의 알곡들을 줍는다.
때론, 설익은 품사의 꼭지들은 꺾어 버리고
주렁주렁 매단 열매의 단어들은 솎아주면서
갈마드는 퇴고를 하며 한 톨의 시를 수확한다.
각양각색이 상징이고 비유인 시의 밭, 그곳에서
아내의 손발 펜으로 쓴 됨새 좋은 시의 이삭들,
농심이 진솔하면 열매 또한 잘 여물 듯
웃음꽃 핀 표정으로 움켜쥔 손안에
농익은 시 한 다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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