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쳐 온 곳 치고는
적당히 안전했다
사시사철 비가 내리는 날이 많았다
강을 따라 내려가던 철길이
물이 불어 잠깐 멈칫하는 곳
슬레이트 지붕이 머리를 맞대고 두런거리는 모양을
흉내 내어 코스모스들이 철로 변에서 연애하는 곳
빗물 고인 길바닥을 돌아
햇볕도 비켜 가는 곳
나는 서울로 돌아가지 않고
녹슨 철길처럼 길게 누워 여름을 보냈다
기차를 타고 싶지 않았으므로
기차가 지나가는 걸 본 적이 없다
고평 2리 마을회관 담벼락 아래
기적소리가 괭이밥 풀꽃의 목을 끊었다
빨랫줄은 자주 젖어 있었고
마를 새도 없이
저녁이 왔다
때로 역 대합실이 심심할 것 같아
으아, 하고 벽에 대고 소리를 질렀다
나 혼자 아프고, 아프다고
나 혼자 작아져도 좋다고 생각했다
오래된 빈집의 서까래 아래서
젖은 생각을 말리는 밤
강 건너 불빛은 여전히 안전했으므로
나는 더 이상 도망치지 않았다
*제5회 예천내성천 문예현상공모전 대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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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주현 시인, 시낭송가
2019 시마을 토마토 전국시낭송페스티벌 대상
2020 <시인시대>신인상 등단
2020 한국시인협회 재능 시낭송가
2020 심연수전국시낭송대회 대상
2021 신석정선양시낭송대회 퍼포먼스부분 대상
2021 상화문학제 전국시낭송대회 상화대상
2022 조명희전국시낭송대회 대상
2022보령전국자작시낭송대회 대상
2023 제1회 홍사용전국시낭송대회 대상
2023 제1회 경북문예공모전 최우수상
2023 제5회 예천내성천문예공모전 대상
※고평역(高坪驛)은 경북선, 예천역과 마산역 사이에 위치.
2001년 7월 1일 폐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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