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시 평론

하늘 다리 -중증 치매 요양원에서/박혜숙

홍영수 시인(jisrak) 2023. 12. 6.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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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걸음씩 다리를 절룩이며

하늘로 이어지는 빛의 다리를 놓고 있다

내 입김을 불어 넣은 그림자

가느다란 숨소리 따뜻하다

모든 것을 내어 준다는 건

또 하나의 빛이 아닐까

너풀거리며 길 한가운데서

춤추는 당신 춤사위

아무 거리낌 없이 나를 실어 본다는 건

행인의 눈초리에 마음의 다리 뚝 끊긴다

아무것도 몰라

부끄러울 것 없는 삶은 없는가

마음이 엇갈리는 길목에서

서성거리던 적은 없는가

하늘로 가는 마지막 다리 끝에 주저앉아

눈꺼풀이 내려 감긴

당신을 만진다, 쓰다듬는다

내 등을 밟혀 당신을 하늘에 올리고 싶다.

 

 

시집 바람의 뼈, 기픈구지,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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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간의 山門 앞에 서면 한 발짝 너머가 이고 한 발짝 이전은 이다. 어쩜 저승과 이승의 경계에도 산문이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가 살아가면서 생사를 초월한 자연의 섭리도, 삶 속의 희로애락도 그 경계를 넘어서고자 하는 바람이 있다. 생의 저물녘에 찾아드는 황혼 녘, 죽살이의 살핏점을 넘나드는 생의 뒤안길에서 바라본 노을빛, 누군가는 그 노을빛 한 잔 따라 마시겠지만, 누군가는 차마 입술을 대고 싶지 않을 것이다.

 

당나라 시인 한산(寒山) 시구에 흰머리 생기면 마음이 급해져 헤매는 사람들(鬢白心惶惶 백발심황황)”이라 하는데 화자는 하늘로 이어지는 빛의 다리를 놓고 있다/내 입김을 불어 넣은 그림자/가느다란 숨소리 따뜻하다한다. 그렇다. 저승길로 이어지는 하늘 다리, 판소리 단가 <公道難離(공도난리)>에도 나오듯이 백발이 되어 죽음을 맞이하는 자연의 섭리는 거슬리지는 못한 것이다. 그렇기에 화자는 생자필멸이라는 순응의 죽음 앞에서 차라리 따스한 입김과 온기를 느꼈는지 모른다.

 

화자는 중증의 치매 환자를 바라보면서 아니, 돌보면서 화자의 노모 또는, 자신의 미래를 반추한 것은 아닐까. 이건 신이 아닌 인간이기에 겪고, 겪을 수밖에 없는 생로병사의 과정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땅거미가 깔린 이승의 끝자락에 어쩜 깃을 잃은 새가 되어가는 모습에서 화자는 노모를 돌보듯, 자기 일처럼 다가서며 보살피고 동반자가 되는 것이 훗승으로 가는 치매 환자에게 또 하나의 다리가 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러면서 모든 것을 내어 준다는 건/또 하나의 빛이 아닐까한다. 박경리 선생님께서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했고, 장자가 아내의 죽음을 바라보는 죽음의 관점또한, 같은 생각이었으리라.

 

예술가 아니, 시인의 핵심은 비워짐이다. 세파에 오염된 심신을 해체하여 맑은 거울처럼 비움으로써 마주치는 대상을 사심과 편견 없이 수용하는 것이다. 마음을 비우니 세상이 왜곡되고 편견이 개입할 여지가 없다. 이게 시적 관점이고 자세이다.

 

화자는 그러하기에 치매, 그것도 이승과 이별의 순간을 어루만지고 곁에서 살피고 지켜보는 중이다. 화자는 세상을 아집과 편견을 가지고 멋대로 해석하고 결과 짓지 않는다. 예술가에 의해 탄생 된 예술작품이나 시인의 한 편의 시는 자아의 반영이고 자기 자신이다. 장자 철학의 핵심인 심재좌망(心齋坐忘)을 화자는 익히 몸소 터득하고 있다.

 

시라는 언어는 타인들의 고통을 나의 아픔으로 느껴야 한다. 이게 바로 시가 독자들에게 심어주는 공감이요 한없는 사랑의 확산이다. 이럴 땐 행인의 눈초리에 뚝 끊긴 다리가 아프지도, 부끄럽지도 않은 것이다.

 

시인은 자기 시대의 사람들을 숨 막히게 하는 산소 결핍의 현상을 남보다 먼저 인지하고 모든 이들이 침묵할 때도 침묵해서는 안 된다. 또한, 아무도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해야 한다. 고통받고 소외된 사람들의 마음을 노래해야 한다. 그것이 시인의 소임이다.

 

이백의 시 구절처럼 우린 잠시 이 세상을 빌려 살다가 돌아갈 뿐이다. 인간은 숨을 쉬는 순간까지 희망을 품는다. 이젠 그 희망이 올라설 수 없는 절벽의 끝에 섰다. 눈꺼풀이 내려앉으며 이승의 문을 닫고 저승의 문을 연다. 시인은 저 깊은 강의 밑바닥에서 최후의 희미한 맥박 소리를 듣는다. 그리고 하늘 다리에 올라설 수 있게끔 자신의 등으로 천국의 계단을 만든다. 죽음은 구름이 다시 흩어지는 것과 같다(사야일편부운멸死也一片浮雲滅)’, 그 구름 위를 향하는 길 위에 자신의 등을 굽혀 디딤돌이 되어주는 시인의 마음, 그 얼마나 인간적이고 아름다운 배려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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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영수

시인. 문학평론가

7회 보령해변시인학교 금상 수상

7회 매일신문 시니어 문학상 수상

3회 코스미안상 대상(칼럼)

1회 황토현 문학상 수상

5회 순암 안정복 문학상 수상

6회 아산문학상 금상 수상

6회 최충 문학상 수상

시집 흔적의 꽃, 시산맥사, 2017.

이메일 jisra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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