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의 고백과 삶의 진정성에서 피운 시혼
홍영수(시인, 문학평론가)
사람은 각자의 개성이 있다. 문학에서도 그렇다. 시에서 개성은 상상력 방식이나 표현기법, 문체의 표현형식, 어조나 어투 등을 통해 드러난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자기만의 개성을 통해 전달함으로써 깊은 인상을 남길 수 있기 때문이다. 시인은 의미 없는 언어에 자기만의 색깔과 특출한 개성으로 생명력을 불어넣기 위해 노력한다. 생전에 두 권의 시집 『아무 일 없는 날』과 『말하지 않아도』을 출간했던 구정혜 시인의 유고 시집 『하늘이 그러하였을까』」의 원고를 읽었다.
시인은 숙고한 시어를 통해서 감성을 고르고 소재에 상념을 통한 자신의 삶을 구상화한다. 너무 수사적 기교에 치우치면 시의 진정성이 미진해지고 문학적 여운이 사라진다. 좋은 시는 조화의 시편들이 모양을 갖출 때 나름 시의 격을 높일 수 있다고 할 때, 구 시인의 시가 그렇다. 투병 중, 무의식적으로 돌아올 수 없는 길을 향해 걸어가는 시간의 발자국 소리를 들었을 시편들이 가슴 아린다.
산길을
한 시간쯤 걷다 보니
나무 의자 하나
별생각 없이 그냥 누웠다.
걷는 동안 따라오던 잡다한
생각들 온데간데없다
허공과 하나되어 누운 몸에
하늘과 나무와 숲이
모두 들어온다
내가 있는데 내가 없고
만물이 가득한데
만물이 없는 듯
세상과 내가 둘이 아닌
알 수 없는 그 말의 경계를 헤맨다
오래전 와불이 누워서 바라본
하늘이 이러하였을까
생각에 생각을 포개고 있다
-「여여(如如)」 전문
위의 시는 시제 자체가 이미 불교적이다. ‘여여(如如)’는 분별과 차별이 없는 그대로의 마음 상태와 속되지 않은 마음을 의미한다. 모든 형식이나 격식을 벗어나 궁극의 깨달음을 추구하는 선적 사유를 담은 시이다.
화자는 산길을 걷다가 우연히 만난 나무 의자에 누웠다가 순간적 깨달음을 얻는다. 그것은 불교의 핵심 교리라고 할 수 있는 ‘제행무상(諸行無常)’이다. 3연의 “내가 있는데 내가 없고/만물이 가득한데/만물이 없는 듯”에서 알 수 있듯이 모든 것들은 순간순간 변하기 때문에 무상(無常)하다. 불변함이 없다는 것이다. 지금의 나는 1초 뒤엔 지금의 내가 아니듯, 그리고 “세상과 내가 둘이 아닌/알 수 없는 그 말의 경계를 헤맨다.” 에서는 ‘불일불이(不一不二)’의 경지를 얘기한다.
그러면서 마지막 연에서 “오래전 와불이 누워서 바라본/하늘이 이러하였을까”, 와“절도 내 안에 있고/부처도 내 안에 있음을!”(「직지直指-자기를 바로 보며」)에서 ‘범아일여(梵我一如)’의 세계관을 발견하고 있다. 이처럼 화자는 자연의 일부인 숲과 허공, 나무 의자, 그리고 와불에서 심오한 불교적 세계관을 발견하면서 한 편의 시 자체를 불교의 상징적 이미지로 형상화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시인이 ‘다큐 3일’에 나올 정도의 불심이 깊다는 의미이다. 참고로 「여여(如如)」는 2019년 제3회‘선시(禪詩) 공모전’ 대상 작품이다.
- 구정혜 유고 시집 『하늘이 그러하였을까』, 시산맥사, 2024
*위의 시집 해설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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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영수
시인. 문학평론가
제7회 보령해변시인학교 금상 수상
제7회 매일신문 시니어 문학상 수상
제3회 코스미안상 대상(칼럼)
제1회 황토현 문학상 수상
제5회 순암 안정복 문학상 수상
제6회 아산문학상 금상 수상
제6회 최충 문학상 수상
시집 『흔적의 꽃』, 시산맥사, 2017.
이메일 jisra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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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jisrak.tistory.com/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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