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너를 지고 너는 나를 이고
너는 나를 안고 나는 너를 베고
생김새도 크기도 다른 것들이
모둠 살이 하며
담장 하나 이루었다
나보다는 너에게
너에게
나를 맞추니
숭숭한 구멍들 사이로
바람이 배시시 웃으며 길인 듯 스쳐 간다.
돌담을
담으로 지금껏 서 있게 한
사이와 사이의
기둥 같은 숨구멍들
허투루한 틈바구니
열린 마음 하나
담이 되어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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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영수
시인. 문학평론가
제7회 보령해변시인학교 금상 수상
제7회 매일신문 시니어 문학상 수상
제3회 코스미안상 대상
제1회 황토현 문학상 수상
제5회 순암 안정복 문학상 수상
제6회 아산문학상 금상 수상
제6회 최충문학상 수상
시집 『흔적의 꽃』, 시산맥사, 2017.
이메일 jisra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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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사람들이 어울려서 살아가는 공동생활 즉 더불어 살아가는 것을 일컬어 ‘모듬살이’라고 한다. 이러한 삶은 가정은 물론이요 마을, 사회나 국가처럼 태어나면서부터 저절로 속하는 곳만이 아니라 우리가 선택하게 되는 동아리, 학교나 직장 그리고 여러 단체 조직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어느 특정한 개인만이 아니라 모두가 더불어 잘 사는 삶의 자세 - 바로 모듬살이의 기본이다.
홍영수의 시 <돌담>은 바로 이 모듬살이(시인은 ‘모둠살이’라 표기했다)의 자세를 잘 그려낸다. 모듬살이의 기본은 우리 모두 태어나 자란 환경은 물론이요 얼굴 모양이나 성격이 다 다르다 하여도 한데 어우러져 서로가 서로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다. 바로 ‘나는 너를 지고 너는 나를 이고 / 너는 나를 안고 나는 너를 베’야 한다. 이런 삶을 통해 우리는 ‘담장 하나 이루’는데 이것이 바로 우리가 속한 가정, 직장, 단체 나아가 사회나 국가가 되는 것이리라.
그런데 돌담의 돌들은 자신만을 내세우지 않는다. 자신만을 위해 다른 돌들에게 희생하라거나, 자신의 생김새에 맞춰 다른 돌들의 모양을 바꾸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오히려 ‘나보다는 너에게/ 너에게 / 나를 맞’춘다. 행을 달리하며 두 번 반복된 ‘너에게’는 바로 서로를 배려하는 자세를 강조한 표현이다. 사실 돌담의 경우 벽돌담과는 달리 돌의 크기나 생김새가 다르기에 정확하게 빈공간이 없게 맞추기 힘들다. 우리네 조상들은 이를 그대로 받아들여, 어쩌면 그러한 돌의 특성을 살려 담을 만들었으리라. 그러니 아무리 강한 태풍이 불어도 벽돌담과 시멘트담은 무너져도 돌담은 웬만해서는 무너지지 않는다. 자연스레 그 ‘숭숭한 구멍들 사이로 / 바람이 배시시 웃으며 길인 듯 스쳐’ 가기 때문이다.
‘담’은 경계의 표시이자 외부로부터 침입의 방어막이다. 여기서 시인은 돌담의 돌 ‘사이와 사이의 / 기둥 같은 숨구멍들’에 주목한다. 숨구멍이 ‘기둥’이라니. 바로 돌들이 강한 바람에도 무너지지 않고 ‘담으로 지금껏 서 있게 한’ 것이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그 숨구멍들은 ‘허투루한 틈바구니’일지 모른다. 그러나 시인은 그 숨구멍들을 허튼 것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오히려 ‘열린 마음’으로 인식한다. 그렇기에 돌들이 ‘담이 되어 서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시인은 돌담을 보며 말하고 있지만 사실 우리네 인간관계를 질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서로가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고 자신에게 맞추려는 아집들 - 그것이 결국 반목과 적대감을 키워 분열하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사랑도 마찬가지이리라. 어쩌면 나는 나에게 맞추라고 상대에게 요구했는지 모른다. 아니 꼭 그렇게 말하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은근히 내게 맞춰주기를 기대했으리라. 그러지 못한 상대가 결국 포기하고 다 나를 떠나지 않았을까.
홍영수의 시 <돌담>을 읽다가 돌담에 있는 ‘숭숭한 구멍들’을 인식하게 되고 문득 나를 떠나간 여인들을 생각하며 나의 아집을 돌아본다. ♣
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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