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인문학 칼럼

겨울 강가의 ‘빈 배(虛舟)’를 바라보며

홍영수 시인(jisrak) 2022. 10. 8.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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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노자와 장자의 사상을 묶어 老莊사상이라 일컫는다. 그 둘과의 거리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노자가 그토록 무위자연(無爲自然)’을 강조한 현실주의자라면, 장자는 호접몽(胡蝶夢)’에서 보듯 만물일원론(萬物一元論)’을 주장했다. 얼핏 보면 장자를 읽다 보면 현실을 초월해서 망아(忘我)의 경지에 이르게 하는 어떤 문학작품과도 같은 느낌을 받는다.

 

필자의 젊은 시절엔 양수리 두물머리에서 낚시하며 민물조개를 잡았던 기억이 있다. 지금은 물과 꽃의 정원으로 잘 가꾸어져 있다.어느 해 두물머리, 겨울 추위 속 꽁꽁 언 강둑에 자그마한 배 한 척이 있었다. 그 안에는 사람도 배 젓는 노도 없고 세찬 강바람만 스칠 뿐, 어디로 날아가는 기러기 떼 울음소리만이 간간이 들려오는 스산한 풍경 속 바로 빈 배(虛舟)’였다. 도대체 장자는 이러한 빈 배를 보고 무얼 떠올렸던 걸까? 그의 빈 배<山木> 편에 나온 내용인데 핵심은 자기 비움이다.

 

배로 강을 건너는데 빈 배 하나가 떠내려오다가 그 배에 부딪혔다. 성질이 급한 사람이었지만 화를 내지 않았다. 떠내려온 배가 사람이 타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

 

사람들이 모두 자기를 비우고 인생의 강을 흘러간다면 누가 능히 그를 해하겠습니까?”

 

우린 너무나 자기중심적인 존재이다. 이러한 자기중심적 사고방식에서 탈중심적인 존재여야 타인과의 원만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그렇기 위해서는 나를 잊고 버려야 한다. ‘無我적 자세빈 배(虛舟)가 동일성의 개념임을 알 수 있다. 사람이 타고 있는 배가 와서 나에게 부딪히면 화를 내고, 큰소리로 치며 뭐라고 하겠지만, 배에 아무도 타고 있지 않고 그야말로 노 하나 없는 빈 배가 다가와 부딪혔다는 것을 알면 그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강물 흐르듯 흘러갈 것이다.

 

이렇듯 빈 배처럼 가득 찬 나의 그릇을 비워야만 타자와 부딪치지 않고 가득 채울 수 있다. ‘텅 빔은 누구든 들어와 쉴 수 있고, 함께 할 수 있는 공간이 된다. “빈 배처럼 내 마음은 虛心(허심)’이어야 한다. , 기존의 사고와 변치 않는 고정된 마음, 판에 박힌 듯한 생각 등을 비우고 비워내야 한다. 그래야만 새로움으로 채울 수 있다. 채움은 타자와 함께 메우고 채우는 것이다.

 

나의 虛心으로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발견한다는 것은 또 다른 새로운 삶의 길을 확보한다는 것이다. 시집의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다른 책들에 비해 빈 공간이 많다. 그것은 빈 공간에 독자(타인)만의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동양화의 여백 또한 마찬가지로 그곳에 감상자의 그림을 그릴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어떤 책을 읽거나 예술작품을 감상할 때, 그리고 공연을 관람할 때는 거기에서 의미를 찾건 아님, 뚜렷한 목적의식 없이 읽고, 보고, 관람할 때도 내면의 한 자리엔 뚝사발이나 막사발 하나쯤 품고 있다. 그 사발은 비우져 있는 사발이어야 한다. 그래야만 그 무엇을 퍼 담을 수 있기 때문이다. 라캉의 말처럼 도공이 흙으로 그릇을 빚어낼 때 그가 창조하는 것은 단지 물질적인 존재로서의 그릇인 것만이 아니라 물이나 음식을 담을 수 있는 텅 빈 공간, 즉 공백이다그렇다. 그릇은 분명 텅 빈 상태로 빚어지지만 결국은 그 텅 빔은 다름 아닌, 그 무언가를 채우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로 꽉 차 있고, 얽매여 있는 생각과 경계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져야 한다. 매여있는 쇠사슬을 풀고 세상을 겸손한 눈으로 바라보며, 나의 밖에서 배울 수 있는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다양한 관점에서 사회를 바라보고 즐겨야 한다. 사회에서도 이분법적 사고와 극단적인 사고는 매우 흔하다. 이러한 관점을 벗어나야 한다. 그것은 곧 자기 비움에서 비롯된다.

 

한겨울이다. 무성했던 나뭇잎도, 숲의 짙은 외투도 벗어 던진 엄동의 설한이다. 이토록 추울 때 왜 저들은 왜 벗어던지고 비웠을까. 그런데도 춥고, 떨고 있다는 생각이 안 드는 이유는 무얼까. 인간은 더욱 싸매고 동여매고, 그것도 부족해 몇 겹의 외투를 걸치고 방 안의 온도를 높이고 있잖은가. 공원의 나목처럼 텅 빈 숲처럼 나도 속세의 모든 것 벗어던지면, 저 숲과 가로수처럼 비우고도 넉넉함처럼 서 있을 수 있을까? 아니 빈 배처럼 유유히 강물을 흘러갈 수 있을까.?

 

세상은 온통 욕심과 욕망, 혼돈 속 경쟁으로 소란으로 흘러넘친다. 이럴 때 한 번쯤 발길을 돌려 두물머리나 아님, 어느 강가에 떠 있는 빈 배를 바라보면서 스스로 虛舟가 되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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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영수

시인. 문학평론가

7회 매일신문 시니어 문학상

3회 코스미안상 대상(칼럼)

4회 한탄강문학상 대상

7회 보령해변시인학교 금상

6회 아산문학상 금상

5회 순암 안정복 문학상

6회 최충 문학상

시집 흔적의 꽃, 시산맥사, 2017.

이메일 jisrak@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