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터 벤야민의 문예이론(이데아총서9)」의 연보(p395)를 보면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은 이해 7월에 파리를 떠나 피레네산맥을 넘어 미국으로 가려고 하였으나 9월 그의 계획이 스페인 관헌들에 의해 저지되자 극약을 먹고 자살하였다”라고 되어있다. 그는 유대인이었다. 그래서 유대인의 수용소가 어떤 곳인지를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유대인 계열의 독일인 벤야민, 그렇게 그는 스페인에서 생을 마감했다.
그 후 50년, 그를 추모하기 위해 묘지 옆으로 “Passages, Hamages to Walter Bemjamim<통로, 발터 벤야민에 대한 경의>”라는 이름의 아주 작은 건축물을 로르트 부 해안가에 세웠다. 바다로 내려가는 사각형 통로이다. 그렇게 ‘통로’가 세워진 후 해안가 작은 마을에는 지금도 많은 사람이 찾아온다. 크지도 눈에 띄지도 않는 작은 작품이 명소로 바뀐 것이다. 그가 묻힌 땅의 역사성과 장소와 발터 벤야민 그리고 ‘통로’라는 작품을 통해서다. 노르웨이 건축가 노베르그 슐츠(Norberg Schulz)는 그 장소를 “게니우스 로키 (Genius Loci)”, 즉, “장소의 혼”이라 했다. 그 작은 조각품의 “통로”는 바다로 향해 있지만, 유리에 막혀서 갈 수 없다고 한다. 자유를 향한 벤야민은 바다를 볼 수 있었지만, 바다로 갈 수 없는 지점이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아니 인간이 터를 잡고 살아왔고 살아가는 그 어느 곳이든 그 터, 장소에는 혼이 살아 숨 쉰다. 특히, 역사적 인물이나, 또는 기억할 만한 사건 등과 관련된 장소의 혼에 담긴 사연들은 유난히 우리 곁에 다가온다. 비단 좋은 의미든, 기억하기 싫은 장소든, 그 장소에는 혼이 살아 있고, 건축 아님, 그 장소의 혼과 관련된 상징물에 혼이 담길 때 우린 그곳에 스민 혼의 성격에 따라 감동하기도 하고 슬픔이나 기쁨을 느끼기도 한다. 우리의 풍습에 ‘지신대감’, ‘터줏대감’ 같은 땅의 정령이 있다고 한 조상님들의 말이 떠오르는 이유이기도 하다.
벌써 세월호 침몰 8년이 다가온다. 필자도 세월호 침몰 1년 후 이곳을 여름휴가에 맞춰 방문했었다. 그때의 기억은 304명의 숨소리와 아직도 남아 있는 온기, 그리고 수학여행에 들떠서 수다 떠는 학생들의 모습들이 오버 랩 되었었다. 그리고 흐르는 눈물 또한 어찌할 수 없었다. 팽목항에 담긴 “장소에 깃든 혼”, 그곳이 바로 공동묘지 같았고 순례지처럼 느꼈다. 그리고 난 순례자였다.
팽목항은 어린 학생들을 포함해 304명의 피 울음 속에 부모와 형제자매들에 대한 그리움이 맴돌면서 머무는 곳이다. 이러한 장소에서 그들 혼의 흔적이 머물지 못하고 九泉과 항구에서 떠돌고, 또한 恨과 슬픔이 메아리처럼 울리지 않는다면‘세월호’의 목소리는 사라지고 말 것이다. 산자는 죽은 자의 아픔을 더 이상 보고 만질 수 없지만, 추모하고 기억하는 감정은 지금도 진행형이다. 그래서 더 안타깝고 고통스럽다. 맹골도에서 불어오는 바닷바람은 이곳 팽목항 기억의 공간에 스며들어 염분의 쓰라림으로 지금도 파고들고 있다.
우린 팽목항 방파제에 세워진 ‘노란 리본’과 수많은 ‘타일 작품’과 그 외 조각작품들의 이미지를 통해 맹골수도 물밑으로 가라앉은 그들의 비애에 찬 울음을 상상적으로나마 들을 수 있다. 비록, 오래되지 않은 사건의 장소일지라도 우리의 기억창고에 가득히 쌓여 있다면 훼손하지 않고 보존해서 진실한 기억의 장소로 보존해야 할 것이다. 그 장소만이 지닌, 땅의 힘과 땅의 형태에는 고유한 혼이 있다. 그래서 그러한 곳에서는 장소의 혼과 대화를 해야 한다. 그때 비로소 그 장소 너머의 혼과 그 무엇을 찾을 수 있다.
특별한 장소나 오래된 건축물이 있는 곳은 기억의 창고이기도 하다. 그 안에서 이루어진 일련의 사건이나, 또는 상징물들을 보면 그것들과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진 상황이나, 흔적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전하고 보존해야 할 이유가 있다. 비록 언젠가는 중력에 의해 무너지거나 사라질지라도.
특히 특별히 기억해야 할 사건이 일어난 장소는 그 자체가 중요한 요소이기도 하다. 그러한 역사의 현장을 직접 가서 체험하고 느끼는 것보다 더 감동을 줄 수 있는 것은 없다. 이러한 장소가 바로 노베르크 슐츠라는 건축학자가 얘기한 ‘장소의 혼(Genius Loci)’이 아닌가 싶다. 지금도 팽목항에 나부끼는 노란 리본과 등대, 수많은 사연과 기억 하고픈 짧은 아포리즘이 새겨진 타일 등이 있는 ‘팽목항’, 그곳의 팽목항은 “장소의 혼”을 담고 있다. 지금도, 앞으로도……
엄마! 보고 싶다
-세월호(世越號) 사건을 추모하며
(……)
왜 나를
차디찬 영혼으로 멈춰 서있게 하는 거야.
알잖아, 엄마는
물속보다 엄마의 품속이 그립고
물길보다 아빠의 손길이 필요하고
걸어야 할 길이 천릿길인 나를,
거침없이 꿈을 펼쳐야 할 세월歲月을,
세월世越이 더 이상의 세월을 멈추게 했어요.
(……)
엄마!
보고 싶다.
아빠! 사랑해.
「졸시」
[홍영수 칼럼] 팽목항, ‘장소의 혼’을 담다 - 코스미안뉴스
「발터 벤야민의 문예이론(이데아총서9)」의 연보(p395)를 보면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은 이해 7월에 파리를 떠나 피레네산맥을 넘어 미국으로 가려고 하였으나 9월 그의 계획이 스페인 관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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