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가을 물가에
늦은 수련 한 송이
그 옆 빈 배
누굴 기다리고 있을까.
_박수호 시인
晩秋의 계절, 滿山紅葉에 두리번거리는 낭만객의 시선이 아닌 제목이 말해주듯 얼혼이 흔들리는 현실을 초탈한 시선으로 오감의 솜털을 세워 시인은 물끄러미 강가를 바라보고 있다.
강가에는 7~8월에 피어 이미 시들었을, 그렇지만 무슨 연유로 수련 한 송이는 가을 찬 이슬 감겨든 자세로 피어있을까. 꽃말처럼 ‘당신의 사랑은 알 수 없습니다.’의 뜻을 새기고 있는 것일까. 늦가을 차가운 서리에 꽃잎을 여는 수련 한 송이에서 가슴에 고요의 울림으로 다가선 물음표를 매단 시인의 視. 다소 禪적이고 하이쿠 같은 시다.
소멸의 계절, 늦가을의 스산함과 누굴 위해서가 아닌 무념무상의 자태로 강가에 홀로 핀 수련, 또한 그 곁에는 詩眼이라 할 수 있는 한 척의 빈 배(虛舟)라니, 절묘한 분위기와 언어의 배열 속에 독자의 상상력을 소환하면서 시인은 결국 하고픈 말을 한다. 빈 배는‘누굴 기다리고 있을까’
시인은 허난설헌이 ‘採蓮曲’에서 읊조렸듯 ‘연꽃 수북한 곳에 작은 배를 매어두고(花 深 處 繫 蘭 舟)‘ 연인을 기다리는 풍경으로 보았을까. 아님, 누굴 기다리고 있는 빈 배가 아닌 이미 강을 건너고 난 뒤 과감히 버린 배를 가리키는 패러독스가 아닐까. 강을 건너면 뗏목을 버리라는 부처의 말처럼 참나로 거듭나기 위해 그 어떤 것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얽매임에서 벗어나야 하는 진리 앞에서 빈 배에 시선이 얹혔을 것이다. 그리고 시인은 욕망이 욕망을 낳은 속세의 질병들을 망각하고파 레테의 강을 이미 건너가지는 않았을까.
시를 읽는 독자는 자신이 미처 인식하지 못했던 한 송이의 꽃 앞에서, 마음속에 매어둔 빈 배에 스며든 시혼 앞에 언제든 떨 준비가 되어있는 존재이다. 그래서 시를 읽는 독자는 행복하다
홍영수 시인,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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