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시 평론

마당을 쓸며/박미현

홍영수 시인(jisrak) 2022. 11. 28.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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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이 타고 있는 새벽 산사

빈 마당에 비질을 한다

 

젊은 스님이 다가와

무얼 쓸고 있느냐고 묻는다

 

나는 무엇을 쓸고 있는 것이 아니라

쓸고 있는 행위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고

멋쩍게 대답을 한다

 

비질을 할 때마다

잔돌이거나 박힌 잎이거나 흙먼지거나가

벌떡, 벌떡 일어선다

 

백팔번뇌가 십팔번 뇌로 떠오르던 법당!

 

비질이 지나간 자리마다

죽비를 맞은 것 같다

 

 

 

시집  <일상에 대한 모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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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가 성불하고 맨 처음 가르친 것이 바로 네 가지 진리와 여덟 겹의 길이다. ‘苦集滅道八正道이다. 고집멸도의 네 가지 진리란 우리의 삶은 괴롭고. 그 괴로움은 집착에서 오고, 그 집착을 끊어야 할 길, 그게 바로 팔정도이다.

 

어쩜 시인은 속애(俗埃)에 지친 삶의 괴로움과 번뇌의 일상탈출을 하고파 서슴거리다 힐링 한 모금 마시기 위해 산사를 찾았는지 모른다. 본래의 마음은 밝고 깨끗함에도 불구하고 소유와, 육신 등의 욕망이란 끈에 매달려 뜨락 잠기락 하는 게 우리들의 삶이기에 더욱더 그러하리라.

 

절간의 새벽녘이면 산천 대천의 작은 생명이 頓悟頓修, 아님 頓悟漸修로 깨어나는 때다. 시인은 촛불이 타고 있는 새벽의 산속 절간에서 빗자루를 잡고 마당에 서 있다. 방엔 소지(掃地)를 둘 정도로 청소는 절간의 일과이고 입산을 하게 되면 가장 먼저 하게 되는 일이다.

 

절 마당에서 비질하는 사이 새벽 찬 공기에 실려 들려오는 화두 같은 스님의 물음에 시인은지금 마당 쓸고 있습니다.’라고 보통은 답을 할 텐데 ‘쓸고‘ 있는 행위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 멋쩍어하고 있다. 그 대답 속에 시인은 이미 범부 보살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아인슈타인이내가 더 알면 알수록 나는 내가 모른다는 것을 더욱 절감하게 된다.’고 말했듯이 시인은 마당을 쓸다 말고 쓰는 것보다는 쓸고 있는 행위에 대해 진지하게 물음표를 던진다.

 

먼지나 나뭇잎 등 어지럽혀진 것들을 쓸 때마다 박힌 돌멩이, , 먼지 등이 벌떡, 벌떡 일어선다. 쓸어도 쓸어도 다시 일어서는 그 무엇들, 삼독(三毒)인 탐진치(貪嗔癡)의 다름 아니다. 탐욕과 지나친 욕구, 증오와 노여움 등에 의해서 사리 분별에 어둡고 어리석음 등에 의해 삼독이 쌓여 헛된 망상과 번뇌에 마음이 물든 것이다.

 

마음의 먼지와 때를 지혜의 비로 쓸어 없애듯이 그 물든 마음을 쓸고 닦는 행위 자체가 수행의 한 방편이다. 그래서 마당을 비질하는 행위를 보면 스님은 마음 수행과 공부의 깊이를 알 수 있다고 한다.

 

이렇게 쓸고 나니 법당엔 백팔 번뇌가 십팔 번뇌로 떠오른다고 한다. 六根六塵에 관한 불교식 셈법을 하지 않더라도 시인은 이미 많은 번뇌의 사라짐을 경험하고 있다. 청소라는 수행을 통해서.

그러나 아직도 미망에 사로잡혀서인지 비질이 지나간 자리마다 죽비를 맞고 있단다. 그럴 수밖에 없지 않은가. 온전히 비울 수 없어 오욕과 칠정에 지르숙해서 실오라기라 하나라도 걸쳐 있다면 죽비를 맞을 수밖에. 아니, 시인 내면의 의식 속엔 죄임성의 죽비를 필요로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고승대덕의 悟道頌을 입시울로 읊조리면서.

 

그리고 움켜쥔 화두 하나,‘얼마나 더 많은 죽비를 맞아야 결 고운 비질을 할 수 있고, 새벽 달빛을 쓸 때 온전한 자취를 없앨 수 있을까?’

 

홍영수 시인, 문학평론가, 칼럼리스트(인문학)

 

 

마당을 쓸며/박미현

마당을 쓸며/박미현 / 부천시, 경기도 와 국회의 뉴스 그리고 삶을 전하는 지방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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