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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생하는 자의 마지막 언어는 침묵이다.

뿌리가 뽑힐 것 같은 태풍을 안고 살아야 하는 바닷가에, 염분을 머금은 소나무 한 그루. 죽음의 가지 끝에 수많은 솔방울을 매달고 있다. 절망의 끝에 선 몸부림으로 주렁주렁 매단 방울들. 희망 없는 예감이 들 때 생명력은 더욱 강해지는 것일까, 자기 죽음을 예고하듯 저토록 많이 매달고 있기까지 침묵의 고통은 상처 난 곳에 스며든 바닷물처럼 쓰라렸으리라. 가지가 찢길 듯 많은 방울을 매달고 서서히 죽어가고 있다. 아니, 죽는 것이 아니라 죽어가기에 더 많이 매달아야 하는 슬픈 생존의 역설이다. 지금도 잿빛 주검의 침묵으로 서 있다. 바로 곁에는 갓 자란 소나무 한그루 하느작거린다. (어불도(於佛島) 바닷가에서 본 풍경) 가끔은 낯선 곳으로의 여행을 꿈꾼다. 생소하고 이색적인 풍경이 다소 두렵기도 하지만 그..

조각보, 대동의 미학

동양에서는 일반적으로 도가(道家)는 노장(老莊), 유가(儒家)는 공맹(孔孟) 등으로 일반화시킨다. 이 말인즉슨, 그 틀 안에서만 접근하고 이해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틀 안에 사상과 이념, 철학적 사고를 가둔다면, 그 순간 억압적 수단에 얽매여 창조의 생명력을 잃게 된다. 왜냐하면, 다양성의 차이에서 오는 독창성과 독자성, 그리고 확장성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일반적 관점이 아닌 다른 시각과 시선으로 필자는 조각보를 바라보았다. 어렸을 적 보았던 조각보 ― 인사동 가게에 걸려 있는, 판화처럼 찍어내는 듯한 조각보가 아닌 ― 에서 가위질에 잘리고 버려져서 ‘천(賤)하게 된 천 쪼가리’에 유난히 촉수가 닿았다. 그 이유는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구성원 중에 밑바탕을 이루고 있는 하층민, ..

돌담에서 배운 소통의 방법

바닷가 시골에 살면서 주의 깊게 봤던‘돌담’을 다시 생각한다. 어떠한 비바람과 태풍이 몰아쳐도 태연한 척 늘 제자리에 있었다. 당시 돌담을 쌓으신 아버지는 돌을 이리저리 굴려보고 들어 올려 보기도 하면서 서로가 맞지 않으면 다시 이쪽저쪽을 바꿔가면서 쌓으셨다. 그렇게 하기를 수없이 반복했다. 지금까지 돌담이 돌담으로 서 있는 것은 바로 돌을 돌 자체로 볼 수 있는 안목과 특별함을 지닌 돌들의 개성 자체를 돌담 쌓는 아버지가 인정했기 때문이다. 각기 다른 장소의 돌들이 담을 위해 한 곳에서 모여있다. 돌의 각진 쪽은 비슷한 각으로 맞추고, 둥글납작 한 것은 그 둥긂을 안을 수 있는 깊게 파인 곳과 맞물리고, 뾰쪽한 곳은 넓은 틈새에 끼워 맞춘다. 각자의 위치에서 주어진 몫에 충실하기 위해 둥근 돌은 모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