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치놀 2

노을빛 시간 / 홍영수

노을빛에 한 뼘 한 걸음씩 이울어가는 저문 삶이 걷고 있다 수평선 끝자락에 매달린 해조음을 듣고 해독할 수 없는 파도의 문장을 넘기면서 돋보기 너머로 까치놀의 문맥을 훑어본다. 어른거린 눈은 놀 빛 글자를 읽을 수 없다. 농익은 침묵으로 망각의 시간을 반추하고 지나온 긴 시간의 발자국을 톺아보면서 평생의 파도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가루진 노을 속 고뇌에 찬 오후의 생이 황혼빛 속으로 가뭇없이 흔적을 지우고 있다. 토혈한 저녁놀을 헐거운 소맷자락에 걸치고 몇 방울 남은 젊음을 삼키면서 해변을 쓸쓸히 걷는 늙마의 머리 위로 철새들이 羽羽羽 날며 고향으로 되돌아간다. 한 오라기 해거름 길 위를 닳고 닳은 저녁놀 비켜 신고 하늘과 땅 사이 밟고 밟다 남은 이승의 길을 걷고 있다. ----------------..

나의 시 2023.10.16

땅끝 마을

꽃잠을 위해 벗어 놓은 새색시 치맛자락 같은 고운 해안가 안으로 굽은 선창가에서 비릿한 해풍을 담은 고무대야의 간재미가 벙긋벙긋하며 사자봉을 삼키고 있다. 오가는 여객선 뱃고동 소리에 잠든 전복이 깨어나 다시마로 입맛을 다시고 갈매기의 파닥거린 날갯짓에 깜짝 놀라 튀어 오른 물고기들의 시선들이 바닷가 솔방울의 짭조름한 눈짓과 마주할 때 뻘낙지는 수족관 유리 벽에 붙어 나그네의 발걸음을 빨아들인다. 동무 삼은 시린 파도의 속삭임과 바닷가 서어나무 고목에 옹이진 세월로 반도의 끝자락에 자리한 갈두리(葛頭里)* 까치놀 한 모금 머금고 진한 보랏빛 칡꽃 향에 함뿍 젖은 칡 머리. *갈두리(葛頭里): 땅끝 마을의 지명. 일명, 칡 머리 ------------------------------------ 홍영수 시인..

나의 시 2023.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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