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중무진 2

하나가 모든 것이고, 모든 것이 하나다(一卽多, 多卽一)

보슬보슬 봄비가 잎을 떨구고 난 가녀린 나뭇가지 끝에 맺혀있는 무언가를 볼 수 있다. ‘비꽃’이다. 칼릴 지브란이 ‘이슬방울’에서 바다의 비밀을 알아내듯, 비꽃 방울은 다른 방울과 주변의 나뭇가지를 안고 있고, 또 다른 비꽃의 방울 속에도 마찬가지로 서로에게 안기고, 서로를 품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비슷한 예로, 백화점이나 때론 엘리베이터 같은 곳에 사방이 유리로 된 것을 볼 수 있는데 그 가운데 서 있는 나를 볼 때 사방으로 반사되어 비치는 내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러한 경험 속에서 화엄 세계를 상징하는 相卽, 相入을 떠올리고 또한, ‘화엄경’에 나오는 ‘인드라망(帝釋網)’의 비유를 함께 생각하게 한다. 하나의 보석이 모든 보석에, 모든 보석은 하나의 보석에 있다는 ‘일중다, 다중일.( 一卽多, 多..

거미줄에 맺힌 물방울에서 인드라망을 보다.

어느 해 지리산 둘레길을 천천히 걷는데 비가 조금씩 내리기 시작했다. 서둘러 비옷을 꺼내 갈아입고, 늦가을 빗소리를 동무 삼아 속세에서 말라버리고 잠든 언어를 깨우고 땟자국 낀 숨결을 빗물로 씻으면서 소요음영했다. 얼마쯤 걸었을까 잠시 숨을 고르면서 비에 젖은 낙엽과 아직도 가지에 매달린 잎들의 향기에 젖는 순간 눈앞에 거미줄이 보였다. 거미줄이 아니라 빗방울이 모여 꽃을 피우는 듯한, 나뭇가지에 걸친 수백 개의 물방울 꽃이었다. 그리고 치솟는 욕망을 내려놓으니 숲 향이 다가왔다. 그리고 목표했던 지점까지 걷고, 다시금 차를 타고 되돌아오는 길에 들린 곳이 실상사였다. 평지사찰로써 구산선문의 탯자리다. 그동안 수 없는 답사의 경험을 살려 실상사에 대한 다양한 참고자료와 책들을 통해 많은 준비를 했기에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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