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시 평론

일천 개의 鏡/양성수

홍영수 시인(jisrak) 2023. 1. 5.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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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스님 선문답하듯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라 말하지 말라

 

산속에 물 있고

물속에 산 있느니

 

보이는 대로 보려 하지 말고

생각되는 대로 생각하려 하지 말라

 

보여지는

생각되어지는 것들은

얼룩진 거울 속에 비친 네 마음이려니

 

산에서 물을

물에서 산을 보라

산과 물은 태초부터 하나였음을 알게 되리니

 

 

디카시집 『자네 밥은 먹고 다니시는가』, 산과들,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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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라는 말을 많이 들어왔다. 물론 성철 스님 때문에 그렇지만 이미 선불교의 화두로 백운선사나 경봉 스님이 즐겨 썼던 말이다. 물론 청원 유신(靑原 惟信)’선사가 처음 했던 말이다.

 

참선에 몰입한 그는 30년 전에는 산은 산이고 물은 물(山是山 水是水)’로 보였다. 그러던 것이 높은 스님을 만나 깨침을 얻고 나니 ’’ 산은 산이 아니고 물은 물이 아닌 것(山不是山 水不是水)‘으로 보였다. 그 후 진실한 깨침을 얻고 나니 ’’ 산은 역시 산이고 물은 역시 물이다(山祗是山 水祗是水)’라는 경지에 이르게 된다.

 

이 설법은 완전한 깨달음에 이르는 단계를 세 단계로 나누고 있다. 첫 번째는 평상시에 눈에 보인 그대로의 긍정적 순간의 태도일 것이고, 두 번째는 보인 대로가 아닌 다른 눈, 즉 부정적인 시각의 태도이다. 세 번째는 부정의 부정을 통해 대긍정을 하는 것이다.

시적 화자는 큰 스님들이 화두로 삼았던 이 말을 오히려 역설적이게 큼 다소 거칠고 단호하게 확 뒤집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선승들의 깨우쳐가는 과정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다. ‘산은 산, 물은 물의 입장은 우리들의 상식적으로 본 일상적인 세계관이다. 말하자면 실재주의에 입각한 긍정의 입장이다. 이원론적이고 나의 자의식을 중심으로 본 그대로의 실재를 받아들이는 입장이다. 나는 나고, 너는 너로 보는 것이다. 화엄사상의 事法界로 보는 단계이다. 그래서 화자는 이러한 사고의 단계를 벗어나라고 하면서 선문답 하듯 하지 말라고 한다.

 

그러면서산속에 물이 있고, 물속에 산이 있단다.’ 화자는 연기적 세계관을 피력한 것이다. 눈에 보인 일체의 현상들은 상호의존성의 원리에 따라 성립한다고 보는 것이다. 연기법은 곧 相入相卽의 연쇄관계의 구조를 말한다. 예를 들어보자. 신라시대 이차돈의 순교 당시 목에서 흰 젖이 한 길이 솟아오르고, 하늘이 어두워지며 꽃비가 내렸다고 한다. 이때 베인 목에서 흘렀을 피나 당시 하늘에서 내린 비는 다시 땅 속으로 스며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자연의 순환 고리에 따라 시냇물, 강물, 그리고 바닷물이 되어 증발되고 다시 땅에 떨어져 스며들어 지금의 우리가 식수나 생활용 수로 사용한다고 할 때, 이러한 섭리가 바로 상입상즉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윌리엄 블레이크(William Blake)의 시구절 보자

 

한 알의 모래 속에서 세계를 보며

한 송이 들꽃에서 천국을 보라.

그대 손바닥 안에 무한을 쥐고

한순간 속에 영원을 보라. ‘순수의 전조중 일부

 

우주 자연의 본질은 주관적인 것도 객관적인 것도 아닌, 서로 속에 들어가 하나 됨을 말한다. 즉 모든 사물의 이치가 하나로 융합하여 구별이 없어진다는 圓融을 일컫는다. 수많은 사물의 요소들이 인연에 의해 상호의존해서 성립되어 있고 이것, 저것을 분별하지 않는 지혜를 가리킨다. ‘산과 물, 물과 산의 상호의존적 緣起를 시인은 말하고 있다.

 

여러 조건들이 서로에게 개입하고 끊임없이 변화해 가기에 결코 영원불변함이란 없는 것이고, 개체적 동일성을 갖는 자아도 결코 없다는 것이다. 이게 불교에서 말한 無常이고 無我이다.

 

모든 법의 이치가 완전히 하나로 융합하여 구별이 없어진다는 사상. 일상의 관념이나 신념의 체계에 회의를 느끼며 2연에서는 1연의 세계관을 부정하는 것이다. 한 마디로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그 무엇도 없고, 보이는 현상의 세계가 전부가 아니고, 당연한 것으로 여기던 세계를 넘어서는 것이다. 시인의 시선은理法界의 원리를 깨닫고 있다.

 

그러면서 3, 4연에서 시인은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있다. ‘눈에 보인 사물과 현상들을 보이는 대로, 생각되는 대로 보지 말라고 한다.’ 우리가 하나의 사물과 현상들을 보는 시각과 생각들이 보는 사람에 따라 각자 다르다는 것을 얘기하고 있다. ‘얼룩진 거울의 의미는 각자의 보는 시각일 것이고, 詩題일천 개의 은 저마다 보는 시각이 다르다는 의미의 또 다른 표현일 것이다.

 

그리고 5연에서는 세 번째 단계인 산은 정말로 산이고, 물은 정말로 물이라는 현상세계의 참모습을 꿰뚫어 보고 있다. 부정의 부정, 곧 대긍정의 경지를 얘기한다. 바로 산과 물을 선악과 미추, 주객의 대립된 세계가 아닌 이것과 저것의 경계를 넘어선 횡단적 세계관을 얘기하고 있다. 시인의 표현대로라면 山水不二. “하나 속에 모두가 있고 많은 속에 하나가 있어, 하나가 곧 모두요, 모두가 곧 하나이다.(一中一切多中一, 卽一切多卽一)”라고 했던 의상스님의 법성게를 떠 올려본다.

 

한 편의 시는 때론, 세계와 인간에 대한 해석과 성찰의 기회를 제공한다. 티끌 속에 우주가 찰나 속엔 영겁이. . .

 

어둠 속 진한 고요가 내 마음을 헹구어주는 三更에 자연의 현상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고 사유하면서 그것과 하나가 되는 왕유의 시 한 수를 감상하며 펜을 접는다.

 

溪淸白石出 개울 맑아 돌이 희게 나왔고

天寒紅葉稀 하늘 추워 붉은 잎 드무네

山路元無雨 산길에는 원래 비가 없는데

空翠濕人衣 허공의 푸른 빛깔이 옷깃 적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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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영수

시인. 문학평론가

7회 보령해변시인학교 금상 수상

7회 매일신문 시니어 문학상 수상

3회 코스미안상 대상

1회 황토현 문학상 수상

5회 순암 안정복 문학상 수상

6회 아산문학상 금상 수상

시집 흔적의 꽃, 시산맥사, 2017.

이메일 jisrak@hanmail.net

 

       '주산지' _ 홍영수 사진

 

 

일천 개의 鏡/양성수

부천시, 경기도 와 국회의 뉴스 그리고 삶을 전하는 지방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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