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시

라면의 일생 / 홍영수

홍영수 시인(jisrak) 2023. 8. 9.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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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손으로 당겨보지만

바스락거리고 구겨지면서도

매끈한 생은 좀처럼 열리지 않는다.

빗장을 걸어 놓은 순결

함부로 드러낼 일 아니라는 듯

 

다시 한번 양 끝을 잡고

팔에 힘을 실으니

어쩔 수 없다는 듯 감춘 샅을 연다.

찢기는 고통 잘리는 아픔 없이

어찌 한 세계를 만나랴만

그 세계 또한 새로운 세상인 것을

 

포장된 생의 한 겹을 벗겨내니

석류 알이 껍데기를 벌리고 나오듯

붉은 봉지의 사이와 사이에서

평생을 감추고 싶었던

수줍은 속살이

세상과 처음으로 소통한다.

 

생을 두고 풀지 않으려 했던

실타래처럼 얽히고설킨

점화되지 못했던 은밀한 욕망이

조각조각 부스러지면서

끓는 열정 속에 풀리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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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영수

시인. 문학평론가

7회 보령해변시인학교 금상 수상

7회 매일신문 시니어 문학상 수상

3회 코스미안상 대상(칼럼)

1회 황토현 문학상 수상

5회 순암 안정복 문학상 수상

6회 아산문학상 금상 수상

6회 최충 문학상 수상

시집 흔적의 꽃, 시산맥사, 2017.

이메일 jisra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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