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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부르튼 피부의 대들보를 안고 누웠다가
아흔 굽잇길을 돌아 검은 그림자가 되었다는 것을,
누구의 관심과 눈길 없이
이승의 삶을 해체하고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난
오두막 같은 한 여인이 그녀였다는 것을,
늘그막의 모습을 감추기 위해 이목구비를 지우고
헐거운 짐이 무거운 짐이 될까, 걱정하다가
생의 앞편으로 이어갈 끈을 놓아버렸다는 것을,
베갯잇 적시는 몇 방울의 고독을 삼키면서
사립문 여는 소리는 차마 닫지 못하고
검은 천사에 둘러싸인 주검이 그녀였다는 것을,
이젠, 휑한 방 안의 공기마저 납작 엎드린 곳에
그동안 방치된 자투리의 삶이 압류된 채
다문 입에 못다 한 말들이 시체처럼 붙어있는
초점 잃은 눈동자의 여체가 그녀였다는 것을,
그녀가 켜 놓은 촛불에는 빛이 있었으나
꺼진 뒤의 촛농 속에는 그녀가 있었다는 것을,
떠나기 전에는 혼자였던 그녀가
떠난 뒤에는 누군가의 전부였다는 것을,
깨물어 아픈 손가락들은 몰랐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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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영수
시인. 문학평론가
제7회 보령해변시인학교 금상 수상
제7회 매일신문 시니어 문학상 수상
제3회 코스미안상 대상(칼럼)
제1회 황토현 문학상 수상
제5회 순암 안정복 문학상 수상
제6회 아산문학상 금상 수상
제6회 최충 문학상 수상
시집 『흔적의 꽃』, 시산맥사, 2017.
이메일 jisra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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