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인문학 칼럼

영국의 장미, 자클린 뒤 프레 - 신들린 듯한 미친 연주

홍영수 시인(jisrak) 2024. 5. 27. 2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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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난 첼리시트 자클린 뒤 프레, 16살에 데뷔하여 명성을 쌓아가다 가족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유대인 출신인 다니엘 바렌보임과 결혼한다. 다발성 경화증으로 인해 말하기도, 읽기도, 연주하기도 힘든 만년의 자클린 뒤프레는 자신이 연주한 엘가의 협주곡을 틀어놓고 멍하게 있는 일이 많았다고 한다. 쓸쓸하게 죽어간 그녀의 묘소에는 지금은 많은 이들이 찾지만 정작 그녀의 남편 보임은 단 한 번도 찾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녀의 연주를 오늘도 들을 수 있고 그녀의 첼로는 다행히 요요마의 손에 전해져 아직도 울리고 있다

 

그녀의 연주는 첼로의 숨겨놓은 음을 찾아 연주하듯 현이 끊어질 듯한 박력이 넘치면서 첼로 악기의 음색을 가장 잘 표현하는 감성을 소유한 현외지음(弦外之音)을 터득한 연주자인듯하다. 그녀가 연주하는 영상을 보면 자기몰입과 악기와 음악의 감정이입으로 인해 뭔가에 홀린 듯한 모습으로, 아니면 신들린 듯한 연주자의 몸놀림을 볼 수 있는데 어찌 보면, 엑스터시에 상태에서 접신한 듯한 연주자의 모습처럼 보인다. 이러한 결과물이 당대 최고의 첼리스트로 군림할 수 있지 않았을까. 앳된 모습의 아름다운 자클린 뒤 프레의 패기 넘친 생상스의 <알레그로 아파시오나토> 곡을 다시 듣고 싶다.

 

또한, 첼로의 최고 협주곡라 불리는 드보르작의 첼로 협주고 B단조(Cello Concerto in B minor)”를 뒤 프레가 바렌보임과 결혼하고 이듬해인 1968년에 함께 공연한 모습을 보자. 그의 연주는 악기의 뛰어난 구사에 있고 또한, 남성적인 힘과 선율악기의 특성을 잘 살려 연주한다. 공연 영상을 보면 웅장하게 시작되는 3악장의 시작 바로 전에 그녀의 첼로 현이 끊어진다. 그 순간에도 당황하지 않는다. 필자가 자세히 체크 해 보니 2938초에 현이 끊어질 때 그녀는 2분만 달라고 한다. 그리고 3130초에 공연장을 들어서서 다시금 연주를 시작하는데 3230초에 3악장을 연주한다. 신내림을 받는 듯한 몰입, 무아지경, 그리고 미쳐버림, 그 자체이다. 다행히 지휘자는 그녀의 남편이었다.

 

영국의 장미라 불렸던 그녀는 고립무원의 외톨이 천재가 되었다. 점점 병이 악화하여 힘없는 손가락으로, 움직임도 부자연스러운 데도 끝까지 연주를 놓치지 않은 전문가다움을 보여줬다. 그래서일까 그녀의 신들린 듯, 격정적인 연주는 음악에 취하지 않고서는 연주할 수 없는 엘가의 첼로 협주곡을 다시 찾아 듣는다

 

플라톤의 대화편 이온(Ion)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무릇 시인들은 그들의 아름다운 시를 기술로써 벼려내는 것이 아니라, 어떤 열광된 상태에 홀려있기 때문에 창조가 가능해진다.”고 했다. 시인의 영혼 또한 그러하리라. 예를 들어 뮤즈의 앞마당에 있는 샘에서 계속 치솟는 꿀의 시를 퍼내듯이, 벌들이 많은 꽃들을 찾아 날갯짓하며 꿀을 모으듯이 나 자신마저 잊고 몰입해서 시상이 머문 샘에서 시혼을 건져 내어 창작하는 것이다.

 

이러한 미친 듯한 열정과 열광의 연주가들이 없다면 작곡가가 빚어놓은 꿀을 따서 청중들에게 달콤한 꿀을 주지 못할 것이다. 그들이 진정으로 음악에 미치고 취해서 연주할 때는 쓰러지기도 하고 미칠 때도 있다. 시인 또한, 마찬가지로 미친 듯이 시어를 줍고, 따서 시문을 짓다 보면 위와 같은 경험을 한다. 이러한 창의성은 반드시 없음의 에서 도약하는 것도, 의미하는 것도 결코 아니다. 그것은 반드시 전통과 그 분야의 기본 바탕 위에서 도약하고 비상해야 한다. 시를 읊조리는 낭송가나 예술인들 그러하다. 옛 얘기에 법고이창신(法鼓而創新)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한다.

 

고흐의 드로잉을 보자. 그의 드로잉 자체가 그의 생활의 전부인 것처럼 느껴진다. 기껏해야 화가로서 본격적인 활동은 10년이 채 되지 않는다. 그러함에도 수준 높은 작품을 그릴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몰입에 의한 대상에의 감정이입이 아닐까 한다. 그는 자기가 표현코자 하는 대상에 완전히 몰입되어 마치 자신이 그 대상이 되어버린다. 그의 드로잉을 보면 그러한 감정이 느껴진다.

 

문학과 예술, 창조와 새로움을 추구하는 이들은 이렇듯 미칠 수 있어야 그 분야의 어느 단계까지 미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불광불급(不狂不及)이다. 화가든 시인이든 시선에 잡히는 사물에 감정을 이입시켜 작품화한다. 다만, 눈에 보이는, 누구든 알 수 있는 사물과의 관계가 아닌, 작가 자신이 그 사물 속으로 들어가거나 보이는 사물을 넘어서는 시선으로 작품화하는 심미적 체험을 하는 고도의 미학적 장치가 돼야 한다. 그렇기 위해서는 무아지경의 경지에서 예술창조를 해야 한다.

 

예를 들면, “동쪽 울 아래 국화를 따다가 문득 남쪽의 산을 바라본다.(採菊東籬下 悠然見南山)”, 이 만고절창(萬古絶唱)에서 문득이 바로 무아지경의 경지이다. 이렇듯 작가는 고요와 적요의 정적인 진공의 상태에서 일체의 표백된 생각으로 바라보아야 존재의 를 표현할 수 있다.

 

세상에 미치지 않고서 그 어떤 지점에 도달하며 위치에 설 수 있단 말인가, 불광불급의 몰아지경沒我之境이나 무아지경에 이르는 미치광이가 되어야 한다. 미쳐야만 미칠 수 있고 미칠 수 있으려면 미쳐야 한다. 미치자() 그래서 미쳐보자() 그러한 자클린 뒤 프레를 그리며 자클린의 눈물Jacqueline's Tears’을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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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영수

시인. 문학평론가

7회 보령해변시인학교 금상 수상

7회 매일신문 시니어 문학상 수상

3회 코스미안상 대상(칼럼)

1회 황토현 문학상 수상

5회 순암 안정복 문학상 수상

6회 아산문학상 금상 수상

6회 최충 문학상 수상

시집 흔적의 꽃, 시산맥사, 2017.

이메일 jisra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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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난 첼리시트 자클린 뒤 프레, 16살에 데뷔하여 명성을 쌓아가다 가족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유대인 출신인 다니엘 바렌보임과 결혼한다. 다발성 경화증으로 인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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