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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 속, 한 문장에서 역사 한 톨 꺼낸다.
조심스럽게 눈으로 듣고 귀로 바라본다.
얼마나 긴 간난과 고난 속 역사관을 일깨워야
이십여 년 붓끝에서 완전체의 세계관이 잉태될 수 있을까.
그리고 단군조선에서 고려 말까지 내 달려올 수 있을까.
역경과 가난을 옆구리에 꿰차고서
몇십 권의 실사구시로 영글기까지 한 장 한 글자에는
이익과 친구들의 손길 발길이 돋을새김 흔적으로 남아 있다.
강綱과 목目에는 충절과 실학의 정신이 실려있고
보이지 않는 동사강목의 시원에는 반계가 어른거린다.
가만히 책의 낱장을 톺아본다.
붓끝이 일필휘지로 순암의 정신을 그려 낼 때
묵향은 책 속에 스미어 성리학의 꽃을 피운다.
‘안(按)’의 자세로 옹이진 붓을 휘어잡고
찬탈자들의 빗나간 역사관 속에서도
올곧은 얼혼은 국가와 왕과 신하의 몸에 박혀
서문 속 시대정신으로 유유히 흐른다.
한 권의 싹을 틔우기 위한 시간과 노력은
묵향으로 피어오르는 먹빛의 씨눈 속에
동사東史의 진주와 강목綱目의 보석이 되어
18세기 역사와 성리학의 사상으로 박혀있다.
*조선 후기 실학자 순암 안정복의 역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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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영수
시인. 문학평론가
제7회 매일신문 시니어 문학상
제3회 코스미안상 대상(칼럼)
제4회 한탄강문학상 대상
제7회 보령해변시인학교 금상
제6회 아산문학상 금상
제5회 순암 안정복 문학상
제6회 최충 문학상
시집 『흔적의 꽃』, 시산맥사, 2017.
이메일 jisra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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