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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이 되리
그리움마저 아끼고 싶을 때
황톳길 따라 걷다가
돌부리에 부딪히는 검정 고무 신발이 되리
향수가 긴 팔 벌려 안아주는 곳
구불구불 흙먼지 길 동구 밖 돌아서며
내 안을 걸어가는 길이 되리, 동무가 되리
바람 불어 찢어진 비닐우산 낮게 쓰고
어깻죽지에 책보를 가로 메고 뛰어가는
학교가 되리, 공부가 되리
나였던 나는 어디 갔을까
너였던 너는 어디 갔을까
담쟁이는 돌담에서 여전히 꿈을 꾸고
초가지붕은 지금도 하양 박꽃을 기다리는 곳
돌담을 스치는 바람의 꿈이 되리
박꽃에 물들어 반짝이는 은하수가 되리
온몸에 사리로 박힌 향수(鄕愁)가
먼발치 굴뚝에서 눈물로 피어오르는 곳
정든 그리움이 되리, 그리움의 품이 되리.
비의 숨결과 바람의 손결이 스며든 마루판이
홀로 된 할머니의 말투보다 더 느리게 표정 짓는 곳
닳고 닳은 빗자루가 되리
담고 담은 티바지가 되리
눈설레 칠 때 문풍지 소리에 이불을 잡아당기며
손에 잡힌 그리움으로 드러눕고 싶은 곳
먼발치에 신발 벗고 안방으로 뛰어가는
구들장이 되리
온돌방이 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