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아프면 솔직해진다
뭐가 그리 급한지
욕심이 생겨 악다구니로 버텼는가 싶다가도
하나둘씩 내려놓기 시작해 나중에 전부 포기하게 되고
그 다음에 마음이 가벼워진다
죽지 못해 모든 걸 내려놓기보다는
하나씩 내려놓는 연습을 하면 아플 때 무게가 줄어들겠지
걱정 한 줌 꽃씨처럼 날려 버린다
시집 <눈물의 농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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千尺絲綸直下垂 천척 사륜직 하수
一波纔動萬波隨 일파 재동 만파수
夜靜水寒魚不食 야정수 한어 불식
滿船空載月明歸 만선 공재 월명 귀
천 길 물 밑에 낚시 줄을 곧게 드리우니
한 물결이 일렁이자 만 물결이 따라 이네.
밤은 고요하고 물은 차가워 물고기는 물지 않고
빈 배에 달빛 가득 싣고 돌아오네.
-冶父道川 禪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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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한 오후 시간, 낚시터에 앉아 고요를 물고 있는 찌를 바라본다. 잠자리 한 마리 연신 꼬리를 담근다. 꼬리가 담긴 순간 오수에 젖은 수면 위에 자그마한 파문이 인다. 점점 더 큰 원을 그리며 이내 수초 사이로 사라진다.
물결 하나 일렁이니 더 많은 물결이 인다. 살며, 살아가며 칠정과 오욕이 하나 둘 내 맘속을 비집고 들어와 채우지 못한 맘을 더욱 부채질하며 닦달한다. 뭐가 그렇게 급한지... 결국 지친 나머지 무게감으로 인해 아파오는 영혼과 육체. 내려놓지 못하고 하 많은 욕심을 지키려 악다구니로 버티어 보지만 다가오는 건 마음을 짓누르는 견딜 수 없는 압박뿐.
다원화된 사회에서의 다양한 가치, 이념, 종교, 문화 등과 마주치고, 획일적 체계의 직장에서 오는 피로감, 부모로서의 의무감, 무엇보다 세상을 바라보는 예리한 촉수와 감각으로 삶의 무늬를 탁본해야 하는 시인의 고뇌에 찬 시선의 무게들. 누군가의 말처럼 ‘아프니까 청춘’이 아니라 ‘아프니까 솔직해진다’며 깨닫는 시인. 그 아픔은 다름 아닌 ‘무게(채움)’일 것이고, 솔직함은 ‘덜어냄(비움) 일 것이다. 나의 모든 것인 냥 챙겨서 쌓고, 저장하고, 담아둔 것들. 어찌 한 순간 그 아픔은 다름 아닌 ‘무게(채움)’일 것이고, 솔직함은 ‘덜어냄(비움) 일 것이다. 나의 모든 것인 냥 챙겨서 쌓고, 저장하고, 담아둔 것들. 어찌 한 순간 버릴 수 있겠는가. 그래도 내려놔야 하고 비워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 시인의 뒤늦게 빠른 깨달음.
획일적이고 규격과 표준화된 일상적인 삶을 복제하지 말고 스스로 느끼고 깨달아가며 살아있는 지도를 그려나가자. 오만과, 이기심, 욕망으로 살아가는 현실 앞에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순간 난 그들의 시선이라는 끈에 묶인다.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은 나 자신이다. 봉인된 자의식을 해제하자.
에드바 뭉크의 ‘칼 요한 거리의 저녁’를 보자. 당시 최신 유행의 옷차림으로 활보한 저들, 길거리를 걷는 저들의 표정은 불안으로 가득하다. 눈동자는 초점이 흐리고 안색은 어둡고 초조함이 묻어있다. 누가 봐도 상류층인 저들, 무언가의 무게감에 억압되어 있는 듯한 모습에서 우린 불안과 초조와 어두운 그림자를 보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떠한가, 저들과는 다른가, 지금 우리가 위치한 현실을 반추해보자.
유한성인 생명 속에 무한성의 욕망을 추구하며 권력과 명성, 더 나은 삶을 추구하고픈 욕심, 갈수록 심해지는 가족과 이웃들 간의 단절에서 오는 소외감 등은 분명 마음의 무게로 우릴 짓누른다. 알랭 드 보통의 말이 생각난다.‘불안은 욕망의 하녀’라고. 욕망이 낳은 ‘불안’그 불안의 무게가 춧돌 되어 우릴 억누르고 있는 삶.
행복한 삶이란 경제적 풍요와 물질에 의존하는 것만이 아님을 기억하자. 언제든 마음을 짓누르고 억눌러서 불편하게 하는 무게들을 捨離하자, 그리고 한 발 물러서 나 자신에 沈潛하자.
삶이 가볍고 생생할 수 있는 것은 표상과 이미지에 갇히지 않고 얽매이지 않는 것이다.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던 일상이 얼마나 커다란 무게의 욕망 덩어리였는지. 무게를 무게로 느끼면 가벼워질 수 있지만 무게를 무겁다고 느끼지 못하면 짊어지고 갈 수밖에 없다. 느껴야 하고 자각해야 한다. 꽃씨 한 줌 허공에 날리듯이, 빈 배에 달빛 가득 싣고 오듯이.
시인, 문학평론가 홍영수jisra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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