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시 85

한겨울의 사마귀 / 홍영수

문설주의 돌쩌귀를 기억하는 시골 폐가에서 가져온 나무문짝 귀퉁이에 작은 움직임 있다. 어미를 기다릴까, 한겨울인데 십여 마리 새끼다. 탄생은 본능을 점지한 것일까 어미 닮은 자세이다 거실 온도가 알집의 알에 스며든, 따스함은 탄생의 비극을 낳고 계절의 착각임을 모른 채 어미를 봄 마중하듯 서로 엉켜 앞발을 비비며 들어 올린다. 앙글앙글한 모습들 어린 것들의 울부짖음일까? 아비의 사체를 삼킨 제의일까? 창밖으로 차마 보내지 못하고 베란다의 시든 꽃잎 위에 가만히 앉혔다. 다음 날 아침 자세히 살펴보니 움직임이 없이 없다. 아뿔싸! 올해 들어 첫 한파주의보란다 즘생같은 행동에 가슴 미어지며 내 심장도 동상 걸렸다. ------------------------------------- 홍영수 시인. 문학평론가 ..

나의 시 2023.12.03

달마산 도솔암 / 홍영수

도솔암에 와서는 묵언의 수행자가 아니면 한 걸음도 나아 갈 수 없다. 암자를 둘러싼 바위는 말이 없다. 말이 없으니, 고요가 귀를 씻는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바위 틈새를 메운 돌멩이에 귀 기울여본다. 울력했던 보살들 땀방울 흘러내린 소리와 한 칸의 절간, 스님의 염불 소리를 풍경風磬이 주워 모아 소리 꽃을 피운다. 처마와 닿을 듯한 늠연한 고목 한 그루가 낡삭은 절집을 안고 소리 없이 툭 던지는 이파리 하나 의상대사의 화두가 되어 불전 앞에 툭 떨어져 앉는다. 말 없는 달마산의 바위너설에서 오묘한 진리 한 자락 휘감지 못했지만 암자를 에워싼 바위 결에 흐르는 노승의 목탁 소리에 몽매한 귀가 확 뜨이며 맥맥한 속내를 확 트이게 한다. 침묵이 숨죽이며 침묵하는 도솔암 미망의 중생에게 내리친 무언의 죽..

나의 시 2023.11.10

노을빛 시간 / 홍영수

노을빛에 한 뼘 한 걸음씩 이울어가는 저문 삶이 걷고 있다 수평선 끝자락에 매달린 해조음을 듣고 해독할 수 없는 파도의 문장을 넘기면서 돋보기 너머로 까치놀의 문맥을 훑어본다. 어른거린 눈은 놀 빛 글자를 읽을 수 없다. 농익은 침묵으로 망각의 시간을 반추하고 지나온 긴 시간의 발자국을 톺아보면서 평생의 파도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가루진 노을 속 고뇌에 찬 오후의 생이 황혼빛 속으로 가뭇없이 흔적을 지우고 있다. 토혈한 저녁놀을 헐거운 소맷자락에 걸치고 몇 방울 남은 젊음을 삼키면서 해변을 쓸쓸히 걷는 늙마의 머리 위로 철새들이 羽羽羽 날며 고향으로 되돌아간다. 한 오라기 해거름 길 위를 닳고 닳은 저녁놀 비켜 신고 하늘과 땅 사이 밟고 밟다 남은 이승의 길을 걷고 있다. ----------------..

나의 시 2023.10.16

낮추니 / 홍영수

담을 낮추니 갇힌 세상이 슬금슬금 나가고 열린 세상이 살금살금 다가온다. 보이지 않는 밖의 풍경이 보이고 내 안의 풍경이 밖에서 보인다. 자세를 낮추니 작고 낮은 것들이 눈망울에 맺히고 크고 높은 것들이 눈 밖에 매달린다. 차별을 지우니 편견이 없고 다름을 건너니 시비가 없다. 내 안의 울타리를 밀치고 마음의 문을 여니 내 안에 네가 들어오고 네 안에 내가 들어간다. ----------------------------- 홍영수 시인. 문학평론가 제7회 보령해변시인학교 금상 수상 제7회 매일신문 시니어 문학상 수상 제3회 코스미안상 대상(칼럼) 제1회 황토현 문학상 수상 제5회 순암 안정복 문학상 수상 제6회 아산문학상 금상 수상 제6회 최충 문학상 수상 시집 『흔적의 꽃』, 시산맥사, 2017. 이메일 ..

나의 시 2023.10.07

꿈속의 어머니 / 홍영수

꿈속, 바스락거림이 적막한 귓전에 들린다. 설움과 보고픔에 지친 나에게 아스라이, 보일 듯 말 듯 오신 어머니! 나는 느낍니다. 슬픈 방황의 마음을 다잡아 주신 침묵의 언어를 사루어 더더욱 따스한 손가락 마디마디의 정을 나의 심장에 찍힌 발자국의 의미를 고울사 고운 치맛자락 다소 곳 여미고 굽은 등 더욱 낮추시며 말을 잊은 듯, 정지문을 여신 무표정의 어머니! 나는 마십니다. 어둑새벽, 물 길어 장독대에 올린 정화수의 기도를 햇귀를 허리에 동여매고 정성껏 씻는 쌀뜨물을 아궁이 불 지피며 연기에 흘리는 사랑의 눈물을 번뜩이는 한순간의 모습으로 어둠 속에도 빛난 눈빛으로 순간의 나를 깨우고 일순간 흔적을 감추신 어머니! 나는 기다립니다. 그리움이 곪아 터져 사모의 꽃을 피우는 순간을 나의 꿈이 어머니의 눈망..

나의 시 2023.09.30

슬픈 노래 / 홍영수

그리움 한 송이 고이 접어 허공에 흩날려 보냈다 슬픔을 삼키면서 ‧ ‧ ‧ 그곳을 날던 나비 한 마리 날갯짓으로 너의 이름을 부른다. 언제부터 나의 꿀이었던 네 이름을 -------------------------- 홍영수 시인. 문학평론가 제7회 보령해변시인학교 금상 수상 제7회 매일신문 시니어 문학상 수상 제3회 코스미안상 대상(칼럼) 제1회 황토현 문학상 수상 제5회 순암 안정복 문학상 수상 제6회 아산문학상 금상 수상 제6회 최충 문학상 수상 시집 『흔적의 꽃』, 시산맥사, 2017. 이메일 jisrak@hanmail.net --------------------------

나의 시 2023.09.21

아! 독도여

반도 천년, 독도의 족보는 동해의 문맥으로 흐르고 백두대간의 필체로 한반도의 서사를 쓰면서 동·서도가 쓴 상처의 문장을 파도를 헤치며 읽는다. 심해에 발돋움하고서 나울나울하는 물결에 백의의 문신을 새기며 돌올한 바위너설의 볏을 곧추세우고 시답잖은 어투와 어쭙잖은 왜풍이 불어올 때는 신라적 온기를 실은 동풍으로 시큰거린 뼈마디의 삭신을 어루만진다. 사라진 강치를 기억한 큰가제바위엔 별들이 자분자분 내려와 고개를 숙이고 된비알의 슴새는 부리를 주억거리며 추모한다. 해조음을 목에 두른 외로운 독도는 새우 발 마사지로 지친 피로를 풀면서 돋을새김의 도도록한 몸피로 두 눈 치켜뜨고서 왜(倭) 새들을 쫓고 있다. 거친 파도에 얹힌 파란 숨소리와 동해의 수평선을 팽팽히 당기다 핥긴 상처를 안고서 무지몽매한 이웃 나라..

나의 시 2023.09.12

가고 싶지 않은 길*/홍영수

수많은 길 중에 가고 싶지 않은 길이 있다. 서럽고 서러운 것 중에 어린 자식 두고 가는 길. 죽었지만 살아서 지그시 두 눈 감고 눈물을 붙들어 매며 죽어가면서도 애써 태연한 척한다. 아니, 죽음의 저 너머에서도 엄마는 엄마일 뿐이다. 여자는 태어날 때부터 여자가 아닌 어머니인 것이다. *, 클로드 모네의 아내 그림 ---------------------------- 홍영수 시인. 문학평론가 제7회 보령해변시인학교 금상 수상 제7회 매일신문 시니어 문학상 수상 제3회 코스미안상 대상(칼럼) 제1회 황토현 문학상 수상 제5회 순암 안정복 문학상 수상 제6회 아산문학상 금상 수상 제6회 최충 문학상 수상 시집 『흔적의 꽃』, 시산맥사, 2017. 이메일 jisrak@hanmail.net -----------..

나의 시 2023.08.31

헛간 박물관 / 홍영수

쟁기는 워낭소리에 귀 기울이고요. 풍구는 바람피울 날을 기다린답니다. 지게는 외로움 한 짐 지고 있고요. 바지게는 입을 크게 벌리고 있어요. 덕석은 가을볕을 그리워하고요. 키는 오줌싸개가 없어 소금도 못 얻어와요. 대나무 갈퀴는 세월의 검불만 긁고 있네요. 낫은 기역 자도 모르는 주인을 찾고 있어요 호미의 잠은 이미 녹슨 잠이고요. 곡괭이는 손길과 오감이 없어 굽은 자세네요 볏단을 기다리는 경운기는 시동을 꺼놓았어요. 처마 끝은 동구 밖을 보고 있는데요 박물관은 저 먼 북망산자락을 보고 있네요. 헛간은 여전히 헛헛하다네요. ---------------------------------------------- 홍영수 시인. 문학평론가 제7회 보령해변시인학교 금상 수상 제7회 매일신문 시니어 문학상 수상 제3..

나의 시 2023.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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