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영수 시인 58

도시 풍경

한겨울의 강물처럼 시린 얼굴들이 도심을 흐르고 있다 물고기는 무리 지어 이웃을 하고 새들은 떼를 지어 길을 찾는데 북적대며 걷는 저들의 표정엔 말 이음표 하나 없고 휘청 걸음에 말줄임표만 실려 있다. 카페의 유리창 밖 바람이 바람에 실려 날고 비가 비를 맞고 있는 풍경들 사이로 조울증 걸린 모습들이 내일을 잃어버린 듯 외롭게 외로움을 타고 있다 사람이 없어서 외로운 것이 아니라 소통이 없어서이다. 그곳이 언어의 사막이다. 안개는 안갯속에서 피어오르고 눈은 눈 위에 쌓이듯 언어는 언어끼리 소통해야 하는데 회색빛 언어의 강물은 꽁꽁 얼어붙었다. ------------------------------------------------------ 홍영수 시인. 문학평론가 제7회 보령해변시인학교 금상 수상 제7회 ..

나의 시 2023.03.29

백제의 미소 -서산마애삼존불/홍영수

어느 석공의 혼의 흔적일까 얼로서 쪼아 다듬어 곧추선 암벽에 벋지르고서 하고픈 말 하마 미소로 던지는 것일까. 뒤 울리는 바람살에도 일천오백의 귀를 열어 서해 개펄의 조갯살 찌우는 소리 들으며 다소곳한 수인手印과 자비의 입시울로 바위인 듯 바위처럼 서 있는 백제의 혼 사위어가는 세월 속 해와 달빛에 젖어 한 움큼의 은은한 미소로 창공을 이고 중생을 바라보는 침묵의 미소, 어느 깨달음이 저보다 더 깊을까. --------------------------------- 홍영수 시인. 문학평론가 제7회 보령해변시인학교 금상 수상 제7회 매일신문 시니어 문학상 수상 제3회 코스미안상 대상(칼럼) 제1회 황토현 문학상 수상 제5회 순암 안정복 문학상 수상 제6회 아산문학상 금상 수상 시집 『흔적의 꽃』, 시산맥사,..

나의 시 2023.03.11

못다 핀 꽃 한 송이/홍영수

그날의 함성 아우내의 아우성이 지금도 감도는데 못다 핀 한 송이 꽃 어디에 잠들었나. 잘린 코 혈흔 머금은 멍울진 서대문 형무소 빠져나간 손톱 위엔 핏빛 지문 선명하고 심장은 분노로 부풀어 불꽃으로 타오르네. 치솟는 오열로 천 망울의 피를 토하며 찢긴 사지와 상처 깊은 고문에도 독립 위한 민족 앞에 한 번의 죽음 아끼지 않았네. 열일곱 갓맑은 애국의 꽃 한 송이 삼월의 하늘 아래 만세의 향으로 피어올라 코끝을 스치며 심장으로 스며드네. ------------------------------ 홍영수 시인. 문학평론가 제7회 보령해변시인학교 금상 수상 제7회 매일신문 시니어 문학상 수상 제3회 코스미안상 대상(칼럼) 제1회 황토현 문학상 수상 제5회 순암 안정복 문학상 수상 제6회 아산문학상 금상 수상 시집..

나의 시 2023.03.01

변신을 꿈꾸다

길을 걷다가 하늘대는 가로수의 나뭇잎 끝자락에 쉰 살, 초점 잃은 눈동자가 가녀리게 흔들린다. 길 위를 걷는 나와 내 안의 길을 걷는 내가 지난 시간과 지금 시간을 가로지르며 의식 없는 다양체의 세계에 섞인다. 찻집에 들어선다. 내 안의 차가 찻잔에 담긴다. 창가에 비친 젊은 연인들의 모습을 보며 찻잔에 담긴 기억의 차를 마실 때 지나간 시간 속 여행길의 옛사랑이 차향에 젖는다. 카페 창문에 비친 내 모습을 바라보는데 엿보는 햇살이 얼굴을 쓰다듬는다. 다양한 나, 그러나 무의식의 내가 되어 존재의 변신을 꿈꾼다. 아직은 싱싱한 심장 소리를 듣는 지천명, 정숙한 여인의 삶은 여전히 시끌벅적하다. ------------------------------------ 홍영수 시인. 문학평론가 제7회 보령해변시인학..

나의 시 2023.02.25

시인이여!/홍영수

명예를 버리고 권력을 취하지 마라. 시의 언어로 불의를 꾸짖고 시적인 영혼으로 정의를 울부짖어라 세상의 눈이 이해하지 못하고 가없는 비난이 쏟아져도 늠연히 맞서서 만세의 목탁이 되고 길잃은 양을 인도하는 축복의 사제가 되어라 강한 자의 곁에 서지 말고 약한 자와 함께 걷는 시인이 되어라. 총칼 끝에 죽음의 그림자가 매달리고 시인의 혼이 찢기며 쫓기어도 그대여! 맨발 맨손으로 뛰어나가 가슴을 열고 뜨겁게 껴안아라. 부정과 악의 고통에 시달린 자에게 한 줌 햇살을 건네주고 그리하여, 자유의 광장엔 억압과 절망을 넘어선 환희와 희망의 촛불을 켜라. ---------------------------------------- 홍영수 시인. 문학평론가 제7회 보령해변시인학교 금상 수상 제7회 매일신문 시니어 문학상 ..

나의 시 2023.02.07

봄이 오는 소리/홍영수

가랑비 온 누리에 초록빛 물들이고 눈엽은 풋내 청청 꽃술은 향내 얼얼 널 위해 이는 내 마음 꽃보라로 휘날린다. 비꽃은 해토머리 여울물 일깨우고 실버들 물관부에 든바람 불어오니 쪽잠 든 늦겨울 뜨락 날빛으로 빛난다. ------------------------------------------------ 홍영수 시인. 문학평론가 제7회 보령해변시인학교 금상 수상 제7회 매일신문 시니어 문학상 수상 제3회 코스미안상 대상(칼럼) 제1회 황토현 문학상 수상 제5회 순암 안정복 문학상 수상 제6회 아산문학상 금상 수상 시집 『흔적의 꽃』, 시산맥사, 2017. 이메일 jisrak@hanmail.net

나의 시 2023.02.03

절절한 사랑의 공감체험―팰리스 곤잘레스-토레스

형형색색의 빛으로 불을 밝히는 저녁이다. 하늘을 치솟는 거대한 마천루의 위엄 앞에 짓눌린 사람들, 그들의 영혼은 넝마처럼 찢기고 흩어지기도 한다. 대한민국의 수도, 그 이름의 문명 앞에 맥없이 걷는 사람들의 눈동자는 희망을 잃고 길을 잃은 듯 방황을 하기도 한다. 어느 날 그러한 서울의 중심인 명동 중앙우체국 옆의 빌딩들 사이에 옥외광고판이 눈에 띄었다. 침대나 이불광고 같기도 하다. 그러나 그 어떤 문구나 이름이 없다. 새로 출시된 상품이라면 회사의 이름이 그리고 광고의 카피가 있을 텐데 없었다. 침대 사진에는 그 어떤 설명도 없이 베개 두 개가 놓여있고 누군지 모른 두 사람이 함께 누웠다가 방금 일어난 흔적으로 걸려있었다. 이 작품은 다름이 아닌 쿠바 태생의 미국 현대 미술가 ‘팰릭스 곤잘레스-토레스..

섬이 되다/홍영수

젊음의 언어는 산 너머로 외출해서 메아리 되어 돌아오지 않고 나이 듦의 말言은 강가에서 넋두리하며 홀로 앉아 소리 없는 곡을 하니 말과 말의 물길이 메말라 경계가 두터워진다. 오감五感은 오감 없이 허공으로 날아가고 소통은 고개 숙여 땅 밑으로 스며든다. 이웃의 눈빛은 무관심의 담장에 가로막혀 초점을 잃고 따스한 정의 손길이 없는 삶의 터전엔 냉정만이 죽은 대화를 위해 묵념을 한다. 네가 곁에 있고 내가 옆에 서서 마주 바라보는 식탁과 광장에도 쓸쓸함이 쓸쓸하게 흘러내리고 외로움은 냉혈의 옷깃을 여민다. 손과 손을 붙잡지 않고 눈과 눈이 멀어지며 섬이 되어간다. ----------------------------------- 홍영수 시인. 문학평론가 제7회 보령해변시인학교 금상 수상 제7회 매일신문 시니어..

나의 시 2023.01.21

풍경風磬/홍영수

허공에 매달려 고요 한 잎 물고 있다 바람이 분다. 고요가 깨어나며 소리 꽃을 피운다. 바람을 맞이할 생각도 없었고 바람 또한 스칠 생각이 없었는데. ------------------ 홍영수 시인. 문학평론가 제7회 보령해변시인학교 금상 수상 제7회 매일신문 시니어 문학상 수상 제3회 코스미안상 대상(칼럼) 제1회 황토현 문학상 수상 제5회 순암 안정복 문학상 수상 제6회 아산문학상 금상 수상 시집 『흔적의 꽃』, 시산맥사, 2017. 이메일 jisrak@hanmail.net 하동군 ' 禪詩' 공모전 수상작 풍경風磬 / 홍영수 바람에 매달려 고요 한 잎 물고 있다 바람이 분다. 고요가 깨어나며 소리 꽃을 피운다. 바람을 맞이할 생각... blog.naver.com

나의 시 2023.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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